주간 기획 “동독 난민 이야기” - 동베를린 대학생 탈출 도왔던 미국인 켈러허

지금은 사라진 동독이란 나라는 냉전 시절 소련의 위성국으로 남아있다 지난 90년 서독에 의해 전격적으로 흡수 통일된 나라입니다. 당시 동서독 통일의 물꼬를 튼 데는 공산주의 붕괴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서독행을 감행한 동독 난민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은 60년대 초 동독 대학생들의 동베를린 탈출을 도왔던 미국인 캐서린 켈러허 씨의 얘기를 소개해드립니다. 진행에 김연호 기자입니다.

0:00 / 0:00

1945년 2차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은 동서로 나뉘어 연합군과 소련군의 분할 통치 아래 놓였습니다. 수도 베를린도 동서로 나눠 서베를린은 연합군이 동베를린은 소련이 각각 통치했습니다. 동서독 분단체제가 공식화된 1952년 이후에는 동서독간의 국경은 대부분 봉쇄됐습니다.

그러나 베를린 시에서만큼은 동서독 양측간의 왕래가 계속 허용됐는데, 이 틈을 타서 엄청난 수의 동독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그리고 직장을 찾아 서베를린으로 탈출했습니다. 이 때문에 동독과 서독, 그리고 소련과 미국의 대립이 갈수록 커져갔습니다. 결국 동독 당국은 1961년에 일방적으로 베를린 장벽을 설치해서 동독인들의 탈출을 막았습니다.

이런 급박한 시기에 미국인으로 동독 대학생들의 동베를린 탈출을 도왔던 사람이 있습니다. 캐서린 켈러허 (Catherine Kelleher) 씨가 그 주인공인데 켈러허 씨는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발돼서 1960년부터 61년까지 서베를린에 있는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Catherine Kelleher: 그 당시에 미국은 독일을 점령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저처럼 미국인들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베를린에 있는 훔볼트 대학에서도 강의를 들었는데 그러면서 동베를린 대학생들을 많이 알게 됐죠. 또 제가 머물던 서베를린의 천주교 하숙촌에서도 동서독의 사정에 관해서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동독에 1년 정도 머물면서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이나 보육원 같은데서 자원봉사를 하고 돌아온 서독 학생들로부터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자원봉사 활동은 동독정부가 양해는 하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이 학생들이 동독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넘어올 때 동독 대학생들도 함께 섞여 오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동서베를린을 왕복 운행하는 지하철이 있었는데 이 학생들이 이걸 타고 서베를린으로 넘어갈 때 저도 같이 있어줬습니다. 그리고 서베를린으로 넘어와서는 이들이 서독 당국에 난민지위를 신청하는 일을 도와줬습니다. 또 서베를린까지 이어지는 호수에 뛰어들어서 헤엄쳐 탈출한 학생들을 배를 타고 가서 건져내온 일도 있었죠.

그러나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고 나면서부터 동베를린 대학생들을 탈출시키는 일은 매우 위험하고도 힘든 일이 됐습니다. 이 때문에 서독학생들도 이전과는 달리 좀 더 조직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켈러허 씨도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Catherine Kelleher: 미국으로 돌아기 전에 자동차를 하나 샀는데 이걸로 가끔씩 동독 대학생들의 탈출을 돕기도 했습니다. 이게 지하철이나 기차로 동베를린을 빠져나오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했습니다. 외국인에게는 자동차 번호판이 특별히 따로 나왔는데 이걸 달면 외국인 전용 통로로 쉽게 베를린 장벽을 통과할 수 있었으니까요.

베를린 장벽이 건재했던 30여 년 동안 동독인들을 탈출시키는 일은 서독인들 사이에서 돈벌이 수단으로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60년대 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수한 동기에서 동독인들을 도왔다는 게 켈러허 씨의 설명입니다. 같은 독일인이면서 갈라진 땅의 동쪽에 산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공산 독재 아래 사는 동독인들을 측은히 여겼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특히 서독 대학생들 사이에서 강렬하게 일었다고 켈러허 씨는 말했습니다.

켈러허 씨와 같이 활동했던 서독 학생조직은 1960년부터 61년까지 모두 700여명의 동베를린 대학생들을 탈출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켈러허 씨도 이들 중 상당수의 학생들을 도왔습니다. 켈러허 씨는 같은 젊은 대학생으로서 동베를린 학생들을 돕는다는 생각에, 위험을 느낄 새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주간기획 “독일난민 이야기” 오늘은 60년대 초 동독 대학생들의 동베를린 탈출을 도왔던 미국인 캐서린 켈러허 씨의 얘기를 소개해드렸습니다.

김연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