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보금자리- 반역자의 땅 저자 황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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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진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삶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남한의 보금자리‘ 순서입니다. 오늘은 지난 2000년 남한에 입국해 북한 사회의 정치와 현실을 고발하는 ’반역자의 땅‘이라는 책을 펴낸바 있는 탈북자 황만유씨의 이야기입니다. 황만유씨는 지난 1998년 12월 북한을 탈출한 후 현재 남한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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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황만유 책, 반역자의 땅 -PHOTO courtesy of (주)삶과 꿈

164 과연 북한이 탈북자들보고 반역자라고 하는데 생존을 위해 탈북한 사람이 어떻게 반역자인가....

황만유씨는 10년간의 특수부대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갔다가 거기서 교시태만이라는 괴씸죄에 걸려 함경북도 추방이 됐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42살되던 지난 1998년 한겨울 폭이 400미터나 됐던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황만유씨는 살이 얼어서 터질듯한 압록강의 차가운 물살을 가르며 중국을 향하면서 북한체제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이러한 감정은 한권의 책으로 나오게 됩니다.

황만유: 95년부터 98년까지 북한이 최악의 식량 위기를 겪을 때 주민을 먹여 살릴 생각은 안하고 그때 새롭게 김정일 혁명사상 연구실을 만들었단 말입니다. 김일성이 14살 때 혁명역사에 나오는데 김일성이 ‘나는 14살 때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며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면서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라는 그 생각이 나더란말 입니다. 김일성은 나라를 찾기 위해 나라를 건넜다는데 나는 북한정권의 실상을 폭로 한다는 생각으로 건넜습니다.

이미 개혁 개방이 되어 버린 중국땅은 황만유씨에게는 놀라움이었습니다. 그러나 2년 반동안 중국에 살면서 신변안전이 보장되지 않아 늘 불안한 마음으로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황만유: 그때 한국 식품 회사를 들어가서 8개월 정도 일하다가 고기를 수출하는 회사였는데 문을 닫아서 할빈으로 가서 보일러 회사에 가서 한 6개월 일했습니다. 6개월 정도 일해서 말을 좀 알아들었는데 사람들이 중국말을 못하니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

남한에서 제 2의 인생을 맞게된 황만유씨는 압록강을 건너면서 다짐한 일을 하게 됩니다. 황만유씨는 북한에서 감옥 생활을 하면서 보고 들고 경험한 것과 굶주림으로 수없이 죽어갔던 고향 사람들의 실상을 남한정부에서 준 정착금을 털어 책으로 출판을 하게 됩니다. 거금 1500만원 미화로 대략 만5천 달러를 들여서 7천권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반역자의 땅 이라는 제목의 책에서는 굶주림에 인육을 먹는 북한 현실과 감옥에서의 인권유린 그리고 공개처형 등의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책 7천권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 책들을 어떻게 팔아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었습니다.

황만유: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책을 출판하니까 큰일 났다고 하더라고요. 책이 나가는 것을 보고 다시 찍고 해야 하는데 무작정 7천권을 출판했다고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그 책달라는 사람도 있고 하는데 우스워요. 나도 집에 한권도 없거든요.

황만유씨는 놀랍게도 6개월 만에 7천권의 책을 전부 팔았습니다.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황씨는 아는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동사무소나 도서관, 경찰청에 무조건 책을 보냈고 책을 받는 사람들이 책값을 보내온 겁니다. 그러면서 입소문이 나고 해서 책은 모두 팔렸습니다. 그 뒤 황만유씨는 북한의 교육정책과 함경북도에서 있었던 대 공개총살에 대한 내용으로 다시 책을 썼습니다. 이미 초고를 마쳤지만 출판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황만유: 글은 2년 전에 써놨는데 지금 글을 보는 시각이 2년 전에 보는 시각도 또 달라지거든요. 그러니까 책은 빨리 펴내는 것이 아니다 확고히 문구를 수정하고 교정할수록 좋은 글이 나온 다는 것을 느꼈어요.

개인적으로는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생각에 같은 북한 출신의 여성을 만나 결혼도 했습니다. 안정적인 남한 생활을 해나가면서도 왠지 허전한 마음은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었습니다. 그래서 늦은 나이지만 고려대학교에 입학을 해서 북한학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황만유: 남한 사회에서 살려면 용어도 다르고 땅도 다른 생소한 곳이거든요. 나이를 떠나서 남한에 도착하면서부터 한 살 이라고 보면 됩니다.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하나부터 차근, 차근 배우려는 노력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황만유씨는 모르는 것은 배워야 한다며 남한사회에서 접하는 것들을 하나 하나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황만유: 대한민국 사회에서 컴퓨터는 필수 아닙니까? 대한민국 사회에서 컴퓨터를 모르면 한발짝도 전진할 수 없잖아요. 물건을 사려고 해도 그래.. 핸드폰, 컴퓨터, 운전 이것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황만유씨는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는 남한의 것들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특히 자녀 교육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황만유: 부모님들이 자식을 적게 나서 그런지 아들, 딸을 공주나 왕자로 대하더라고요. 자녀문제는 너무 아이들 하자는 대로 따라 가다 보니까 중심을 잃지 않았는가 생각을 했습니다.

황만유씨는 이제 50살을 넘겼지만 남한에서는 겨우 7살이 됐다면서 마음은 급한데 시간이 빨리가서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황만유: 아직 할 일이 많죠. 대한민국에 잘먹고 잘살려고만 오진 않았잖아요. 미래를 위해 북한 정권의 붕괴를 위해 폭로할 사명도 가져야 하지 않습니까. 여러 나라에 홍보를 해서 북한이 빨리 개방이 되도록 국제사회를 유도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남한에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황만유씨는 처음 남한생활을 할 때 정부에서 지급하는 정착금을 받아 살았기에 그것을 언제나 마음의 빚으로 생각한다면서 언젠가는 자신이 받은 도움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려 줄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