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송환은 전쟁 상흔을 치유하는 과정’

서울-박성우, 고영환
201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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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북한이 미국으로 송환한 미국 유해가 신분확인절차가 완료되어 지난 2014년 12월 15일 안장되는 모습.
1990년대 초 북한이 미국으로 송환한 미국 유해가 신분확인절차가 완료되어 지난 2014년 12월 15일 안장되는 모습.
ASSOCIATED PRESS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한국전 참전 미군의 유해 송환을 위한 준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보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지냈습니다.

박성우: 요즘 한반도는 남북, 미북 정상회담 등으로 평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미군 유해 송환일 텐데요. 위원님, 어떻게 보셨습니까?

고영환: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의 공동합의문 4조에 따라 미북 양국이 북한 지역 내에 있는 미군의 유해 송환을 위해 미측이 판문점으로 가져온 나무상자들을 북한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안을 북한 측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한미군 측은 지난 23일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을 위한 100여 개의 나무로 된 임시 운송 케이스(상자)와 유엔기, 관 받침대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인근으로 이송했고, 이와 별도로 오산에서 미국으로 유해 이송에 필요한 158개의 금속관도 오산 기지에 대기시켜 놓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만일 북한 측이 미군 유해를 미군 측에 넘겨주는 경우 미군 유해는 판문점에서 오산 기지로 옮겨진 후 미군 수송기를 이용해 하와이로 가거나 혹은 일본 요코다 미군 기지를 경유해 하와이로 가는 방법 등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와이에는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 관련 분석 부서가 있으며, 여기에서 유전자 감식, 동위원소 검사 등 최신 설비로 미군 유해가 맞는지 검사한 후 예의를 갖춰 생존해 있는 미군 유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게 됩니다.

미국은 현재 북한과 베트남, 태평양 등 세계 각지에서 자유를 지키다 쓰러진 미군 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작업에 엄청난 자금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의 구호는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 한 명의 병사도 적진에 내버려두지 않는다”입니다.

서로 총부리를 대고 싸웠던 미국과 북한의 정상들이 사상 처음으로 만난 자리에서 미국 대통령이 미군 유해 문제를 의제로 올려놓고 공동합의문에 이 내용을 담는 모습을 보면, 그리고 미국이 자기 나라 병사들의 유해를 최신 설비와 전문 인력을 동원하여 찾아내는 것을 보면 왜 미국이 세계 최대 강국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성우: 미군 유해 송환이 이번에 처음 이뤄지는 건 아닙니다. 과거 사례도 설명을 좀 해 주시죠.

고영환: 북한은 7.27 정전 이후인 1954년 8월 6.25 전쟁에 참가하였다가 북한 지역에서 숨진 유엔군 전사자 4천 23구의 유해를 돌려준 적이 있었으나, 이후 이 사업을 중단하였다가 1990년부터 재개했습니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에 따르면 1990년에서 2007년까지 최소 400여 구의 미군 유해가 미국으로 보내졌습니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은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 관료들은 미군 유해 200여 구를 발굴해 보관하고 있다고 몇 차례 전한 바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공동합의문에 따라 1990년대 초 형식으로 반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단독으로 발굴한 미군 유해를 208개의 관에 담아 미군 측에 넘겼습니다. 미국은 "208개 관 안의 유해는 서로 섞여 있었다"며 "이 관에 담겨온 유해들을 400여 명의 미군 병사로 추정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전쟁 참전 미군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쟁 중 실종된 미군 병사는 7천 6백여 명입니다. 미국은 미군 병사 유해가 주로 청천강 유역 지역 그리고 함경남도 장진호반에 가장 많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평북 운산과 함남 장진호는 미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과 중국 인민지원군 사이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지역이고, 따라서 여기에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 유해들이 가장 많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박성우: 과거엔 북한이 유해를 넘겨주고 돈을 벌려고 한다는 말도 있었고요. 또 돌려받은 게 사람 뼈가 아니라 동물 뼈로 밝혀져서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이번에는 어떻게 걸로 보시나요?

고영환: 미국과 합의에 따라 북한이 6.25 전쟁 시 북한 지역에서 숨진 미군 유해를 미국으로 송환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부터입니다. 그러나 이는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북한은 미군 유해 한 구당 3만 달러의 보상금을 달라고 미국에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확인 결과 당시 신원이 확인된 미군의 유해는 6구에 불과했습니다. 송환된 미군 유해 중에는 동물의 뼈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이에 1994년 미국 국방부는 미군 유해 한 구당 보상금을 2000~3000달러만 주겠다고 북한 측에 통보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미국에만 동물 뼈를 보낸 게 아니었습니다. 주영국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하다 망명한 태영호 전 공사도 자신의 회고록에서 2011년 북한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평양 외곽에서 격추된 영국군 전투기 조종사 데스몬드 힌튼의 유해를 영국에 송환했지만, 영국 전문가들은 유해 감식 결과 죽은 동물 뼈로 결론지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태 전 공사는 당시 북한 외교관들도 영국의 결론에 당황했으며, 유해 송환을 책임진 북한군 군관들로부터는 ‘유감스럽다’는 답변만 들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반복되면서 미국은 1996년 유해발굴 미북 합동조사단을 꾸려 미국 측 주도로 유해 발굴 공동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1998년에는 합동조사단이 미군 유해 2구를 발견했으나 북한이 일방적으로 협의를 거부해 송환이 지연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미군 유해 송환 절차는 미북 정상 간 싱가포르 합의에 의하여 진행되는 사업인 만큼 과거와는 다르게 진정성 있게 진행될 것이라고 저는 전망합니다.

박성우: 미군 유해 송환 문제가 나올 때마다 북측 지역에 묻혀 있는 다른 나라 군인들의 유해는 어찌할 것인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위원님은 어떠신가요?

고영환: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의 유해 송환이 합의되자 뛰르끼예(터키) 정부도 최근 북한에 자국 전사자들의 유해 송환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뛰르끼예 일간지 하버투르크는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68주년 특집 기사를 통해 북한이 약 500명에 달하는 한국전 참전 뛰르끼예 전사자들의 유해를 반환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서울 주재 뛰르끼예 대사가 최근 북한을 방문해서 자국 전사자의 유해를 넘겨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한국 보훈처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쟁에 참여한 터키군 총 숫자는 2만 1천 212명이며 이 중 전사자가 966명, 전쟁포로가 244명이었습니다. 뛰르끼예 언론은 전사자와 전쟁포로 상당수의 유해가 아직 북한 지역에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자국 정부가 신원 확인을 위해 전사자 유가족의 유전자 자료를 북한 당국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북한 지도부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6.25 전쟁 시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유엔군 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하여 본래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낸다면 국제적인 영상을 개선하는데 크게 이바지하리라고 봅니다. 겉으로는 작아 보이는 이런 사업들이 거창한 단어나 구호보다 더 큰 효과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박성우: 올해는 6.25 한국전쟁 발발 68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이나 미북 정상회담 등 워낙 큰 일이 많다보니 올해는 6.25 전쟁 기념일이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지나갔는데요. 그 전쟁의 상흔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한반도 전역에 묻혀 있는 유해가 그 증거죠. 유해를 발굴하고 송환하는 작업은 한국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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