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회고록에 한국의 윤동주 시인이?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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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낭송을 하는 탈북여성 가명의 김시연씨
시 낭송을 하는 탈북여성 가명의 김시연씨
Photo: RFA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북한에 계신 청취자들께서 혹시 애국 시인 윤동주를 아시는지요, 아니 그 이름이라도 들어 보셨는지요? 지난 2월 중순 한국에서 이 시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동주 가 상영 되었는데요 요즘 보기 드문 흑백 영화 인데도 한국에서는 물론 미국에서 까지 상영되어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 탈북여성이 한국에서 이 영화 시사회 때 초대를 받아 일반인들에 앞서 이 영화를 보았는데요,

김: 영화를 만들면서 이준익 감독이 송몽규가 앞장서서 이끄는 대로 윤동주가 따라갔던 내용들이 윤동주 평전에 나와 있어요. 이준익 감독이 윤동주가 주인공이지만 송몽규도 거의 주인공처럼 묘사를 했어요. 그래서 유족들도 시사회에 초대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 남편하고 딸하고 같이 가서 시사회에 참가 했어요.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씨는 어린 시절부터 단짝, 동갑내기 고종사촌 이었습니다. 탈북여성 가명의 김시연 씨는 송몽규씨의 조카이기 때문에 유족으로 초대를 받아 영화를 보게 되었다는데요,

시 낭송 (별 헤는 밤의 일부) "계절이 지나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이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지금 들으신 시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의 일부입니다. 이 시와 '서 시' 라는 제목의 시는 한국의 교과서에도 실리고 많이 암송되는 시로 시대를 가리지 않고 한국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시로 꼽히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에 서울에 정착한 탈북여성 김시연 씨가 송몽규 씨의 유족으로 영화를 보게 된 사연을 전합니다.

김: 저의 큰 어머니가 윤동주 시인의 친 누이동생이에요, 저희 아버지의 사촌 누님이고요. 저희 아버지가 중국 연길 신문사에 큰어머니 그러니까 윤동주 시인의 누이동생을 찾는 다는 편지를 보냈어요. 그런데 저의 큰 어머니가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조선족 문학상 시상식을 해마다 열었는데 호주에서 중국에 오셨다가 아는 지인이, 북한의 사촌 동생이 누님을 찾는 내용을 신문에 냈더라, 그래서 큰 어머니가 보니까 우리 아버지와 외사촌 간으로 앞뒷집에서 같이 자라면서 엄청 가깝게 지냈데요, 그러다 보니 사촌 이지만 친형제 같이 지내셨기에 서로 너무 그리워하면서 저희 아버지가 중국에 계속 편지 보내고 큰어머니도 북한으로 사람 보내 연락을 했는데 북한에서 여권을 떼 주지 않아 끝내 상봉을 못하고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김시연 씨의 큰 어머니는 호주에 살면서 윤동주 시인의 중국 조선족 문학상 행사 때 마다 중국을 방문 했는데 두 분이 돌아가시기 전 당시 연락이 닿은 김시연 씨의 큰 어머니가 김시연 씨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다는군요.

김: 김일성 회고록 1권에 윤동주 시인이 나왔다면서 편지가 온 거에요 그래서 보니까 정말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아버지도 중국에 가서 큰 어머니를 만나려고 무척 애를 쓰셨죠. 그러는 중에 그 때 저희 큰 아버지 송몽규하고 윤동주 시인이 한국에서 독립 유공자로 추서가 되었다는 내용을 알았어요.

그 후 김시연 씨는 탈 북해 하나원에서 인적 사항 등을 얘기 할 때 독립유공자인 송몽규 씨의 조카라고 얘기를 했더니 아주 반가워했다는 군요.

김: 한국에 와서 제가 송몽규 조카라고 하니까 반가워하면서 집을 서울에서 배정 받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이들은 일제시대 때 부모님들이 일본의 압박을 피해 북간도로 가서 연길의 명동 촌, 지금의 지린성에 자리를 잡은 기독교인 집안으로 윤동주는 1917년 명동 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평생의 단짝인 고종 사촌 송몽규씨 와 함께 문학도의 꿈을 키웠다고 하는데요,

김: 일제시대 때 북간도로간 조선인들이잖아요 중국의 용정시 연길 명동촌 이라는 데가 옛날에 기독교가 들어가서 지식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대요. 저희 할아버지도 그곳 명동 소학교 교사였고 또 윤동주 시인의 아버지도 거기서 부농이었어요. 그래서 자녀들을 공부를 시켰는데 워낙 두 분 다 총명해서 윤동주 시인이 평양 숭실 학교로 갔을 때는 저희 큰 아버지 송몽규는 김 구 선생이 운영하는 군사 학교로 독립운동 한다며 갔다가 체포 되어 경찰서에서 겨우 풀려났어요. 그리고 나서 윤동주 시인과 같이 연희 전문학교 문과를 졸업 했어요.

그리고 큰 아버지는 다시 독립운동을 하려고 일본의 경도제국대학으로 갔고 윤동주 시인을 일본으로 불러 릿교 대학에 입학을 하게했지만 일본 당국이 조선인 학생들을 심하게 탄압하며 조선 유학생들도 학도병으로 모집 했습니다.

김: 그때 송몽규 저희 큰 아버지가 비밀리에 학생들을 모아서 우리가 학도병으로 가서 각 중요한 일본군에 편입을 해서 특히 일제의 고급 장교들이 어디 어느 곳으로 배치되는 등의 비밀을 알아 낼 수 있어 그런 것을 탐지해서... 당시 일본이 거의 망할 징조가 보였어요, 그래서 큰 아버지가 일본 군 장교들과 지휘관들을 사살해야 된다 지휘관이 사살되면 군 의 대오가 망가지니까... 그렇게 독립운동 모의를 한 겁니다.

일본에서는 송몽규씨를 바로 요 시찰 대상으로 밀착 감시를 했기에 해방되기 2년 전 1943년 일본 유학생들의 독립운동을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경찰에 체포돼 징역 2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옥중에서 생체실험의 일환인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아 옥중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 졌습니다.

김; 유학 왔을 때부터 우리 큰 아버지에게 계속 밀정을 부친 거예요 그래 모의를 하는 것을 체포를 한 거죠, 그래서 윤동주와 저의 큰 아버지가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년간 계시다 일제가 생체 실험을 했을 때 바닷물 주사를 계속 맞다가 먼저 윤동주 시인이 돌아가셨고 며칠 있다 큰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실 때 내 뼈 조각 살 한 점도 그 나라에 남겨두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 가셨어요. 저희 할아버지가 가서 시신을 모셔 오실 때 정말 뼈 조각 하나도 안 흘리고 다 단지에 담아서 화장해서 모셔오셨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고종 사촌 단짝이었던 이들이 세상을 떠난 뒤 가족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김: 저희 할아버지가, 나라가 독립했는데 왜 남의 나라 땅에서 살겠느냐며 가족들 데리고 북한으로 나가시고 윤동주 집안은 다 한국으로 오신 겁니다. 저희 할아버지도 한국으로 오셨어야 되는데 샛별 군 경흥이 조상들이 자리를 잡았던 곳이라며 찾아 갔는데 북한에 그런 정권이 들어선 거죠.

김시연 씨는 송몽규 큰 아버지의 자료, 장서도 많았지만 북한 정권으로 인해 귀중한 것을 없애 버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군요.

김: 저희 큰 아버지도 글도 많이 쓰고 해서 그 많은 책들을 보자기에 보물처럼 궤짝 속에 숨겨져 있다 북한이 당시 정권을 세우면서 계속 가택수색하고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다 숙청해 버리니까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불똥이 튈까보아 그 자료들을 다 불 태우셨어요.

북한에서는 공산정권이 들어선 후 역사조차도 모두 말살해 일제시대 때 독립 운동가이며 민족 시인인 윤동주 같은 인물에 대해 아무런 증언이나 자료도 없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김: 아무래도 김일성이나 김정일은 당시 한국의 영화나 소설, 음악 등을 많이 접하니까 인민들은 못 보게 하지만, 그래서 윤동주가 이름난 시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신의 회고록 첫 권 19페이지에 애국시인 윤동주도 평양 숭실학교 졸업생이었다 이렇게 회고를 한 거예요 왜냐하면 김일성 아버지 김형직이 평양 숭실 학교를 다녔데요. 그래서 자기 아버지를 회고 하면서 애국시인 윤동주도 평양 숭실학교 졸업생이었다, 이렇게 같이 곁들여서 회고록에 쓴 거예요.

북한 사람들은 윤동주 시인이 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적인 시인이라는 것도 모르지만 그의 아름다운 시 조차 전혀 접 할 수도 없는 사회에서 김시연 씨도 윤동주 시인의 누이 동생인 큰 어머니가 북한으로 보낸 편지에서 겨우 시를 만날 수 있었다고 하는군요.

김: 큰 어머니가 편지에다 큰 아버지의 시를 복사해서 보내셨더라고요. 초 한 대,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이런 시가 있더라고요 그리고는 중국에 넘어와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제목의 책 을 받아서 시를 보았거든요.

김시연 씨가 받아본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에서 첫 번째 시가 바로 '서시'입니다.

김: 시 낭송 :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다.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형무소에서 29살, 이른 나이에 생을 마친 아름다운 젊은이들, 조국과 자연 그리고 삶의 목표가 뚜렷했던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민족의 저항 시인으로 강한 의지와 부드러운 서정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김: 그 아까운 청춘들이 그렇게 억울하게 돌아 가셨다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프고 그리고 그 짧은 생애에 많은 일을 하셨구나 하고 생각하니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살았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아름다운 영화 였어요.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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