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태영호 공사 탈북사회 구심점 기대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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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5월 셋째주 교보문고 광화문점 베스트셀러에 오른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의 자서전 '3층 서기실의 암호'.
사진은 5월 셋째주 교보문고 광화문점 베스트셀러에 오른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의 자서전 '3층 서기실의 암호'.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얼마전에 미국에 왔던 자유 북한방송 김성민 대표가 워싱턴 근교 메클린에 있는 와싱턴 한인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은 태영호 전 공사의 근황과 북한의 지하교회 등에 대한 질의 응답을 들어봅니다.

먼저 미국에서 북한 망명정부가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요,

김: 망명 정부는황장엽 선생님이 계실때는 반대 했는데 황장엽 선생님은 대한민국을 발판으로 해서 북한 민주화를 하겠다고 했는데 그 때 미국에 계신 많은 분들은 황장엽 선생님이 미국에 와서 망명정부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을때 황선생님은 나는 미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하겠다고 하셨어요.

그후 탈북자들이 많이 늘어나면서 해외로 간 사람들의생각은 달랐다고 하는군요.

김: 해외에 나와 있던 사람들이 망명정부를 해야 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지금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국내에서 망명정부 얘기를 하는 것은 한국의 국정원도 안 만든다는 얘기가 있고 거기에 저도 동감하고 그래서 해외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망명정부를 하면 좋다고 저는 동의 합니다.

망명 정부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무엇보다 지도자의 문제라고 김 대표는 지적합니다.

김: 자타가 공인하는 지도자 급이 있어야 되는데 없다는 안타까움이 있는데 지금 LA 쪽에서 망명정부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꼭 지도자가 있어야 되느냐, 탈북자 여러명이 공동으로 해도 되지 않느냐고 얘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개인적으로는 해외에 있는 탈북자들이 망명정부를 하는것은 정말 바람직하다고 보고 망명정부가 만들어 지면 북한 정권이 정말 펼펼 뛰지 않을까…

아울러 영국 주재 북한공사로 재직 중 망명한 뒤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 실태를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태영호 공사의 현재 근황에 대한 질문도 나왔습니다.

김: 탈북자 중에 태 공사를 제일 많이 만난 사람이 저일겁니다. 과거 제가 황장엽 선생님도 8년 동안 모셨고 태 공사님도 제가 암 걸리기 한달 전에 티비 조선에 같이 모란봉 클럽에 출연했었어요 그때 제가 얘기 중에 그런 말을 했어요 혹시 각오는 하셔야 될것이라고 이 정권이 바뀔 수도 있는데 그때는 정권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바뀐다면 황장엽 선생님처럼 될 수도 있다고 황장엽 선생이 김영삼 대통령 정권때 와서 소위 차관급 대우를 받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정말 어려우셨다고 말씀드렸는데 태공사님이 가볍게 받아 드리신것 같았어요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고 김 대표도 그때 병원에 입원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김: 저는 암으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병원에도 오시고 또 집에서 치료 받을때 집에도 여러번 오시고 같이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도 모르게 어느날 갑자기 연구소에서 나갔어요

태 공사는 한국에서 국가 정보원 연구소 자문연구위원으로 국회인권 포럼과 아시아인권의원 연맹이 수여하는‘2017년 올해의 인권상’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이연구소를 갑자기 사직 했습니다

김: 연구소 나가시기 3일 전에 책을 내시고 기자 회견을 했고 그 자리에도 갔는데 기자들이 100명도 넘어 왔더라고요 외교관 출신으로 소신있게 자신의 책 소개도 하시고 북한 김정은 정권의 잘 잘못을 꼬집기도 하시고 소신있는 외교관이라고 생각했는데 3일 후에 연구소에서 나왔어요 많은 사람들이 왜 나왔을까 혹시 탄압 비슷한 것이 있지 않았을까 연구소에서도 그렇고 본인도 그런 일은 전혀 없었고 스스로 나왔다고 ….

자유롭게 북한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기 위해 스스로 나왔다고 해서 많은 탈북자들은 환영했다는데요, 과거 황장엽 선생님이 하지 못했던 활동을 부탁 드렸다고 전합니다.

김: 저희 탈북자들은 정말 잘 하셨다고 과거의 황장엽 선생님도 못했던 활동을 같이 하자고 했어요 과거의 황장엽 선생님이 하셨던 북한 민주화위원회 위원장, 북한인권을 위한 탈북 단체 연합의 상임고문, 황장엽 선생님이 가지고 계셨던 직책 그대로 가지시고 우리 탈북민 사회 지도자로 추앙을 한다는 내용을 태 공사께 그대로 얘기를 했어요

아직 까지 이에 대한 확실한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김 대표는 전합니다.하지만 탈북자들은 태 공사가 탈북사회의 구심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는데요

김: 본인 스스로는 지금 하는 일이 많아서 바쁜데 그일 끝나고 이 문제를 토의 하자고 했는데 아직까지 이에 대한 얘기가 없었고요, 본인도 연구소에서 나온다는 것은 고정적인 생활비로 부터 독립입니다. 그래도 탈북민 사회가 태영호를 바라보고 탈북민 집단이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원한다는 것을 신중하게 받아 드릴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탈북민 사회에 새로운 구심점이 생기고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현실화 되면 김정은이 정말 아파할 것입니다. 대한 민국 문재인 정부도 좋아할 리는 없겠지만 우리는 가야할 길을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북 회담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가 언급조차 되지 않은 점에 대해 모든 탈북자들이 실망하고 앞으로의 추가 회담에서라도 이 문제는 꼭 거론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 합니다.

김: 김정은 정권이 붕괴되기 전에는, 쉽게 말하면 김정은이 축출되기 전에는 인권문제, 수용소 문제도 해결 안됩니다. 그래도 이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야 되고 정치범 수용소에 있던 탈북자가 강철환 씨를 비롯해서 정치범 수용소를 계속 얘기하니까 북한에서 정치범 수용소를 통 폐합하는 효과가 있었어요 6개 정치범 수용소에 20-30만의 정치범이 있다고 떠드니까 북한에서 슬그머니 수용소를 축소시키고 일부에서는 통제 구역을 개방하고 개천에 있는 수용소들을 개방하는 효과도 있었어요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 문제를 김 위원장과 직접 얘기했으면 하는 간절한 희망은 무너졌지만 북한의 인권 문제는 북한의 독재가 무너지기 전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 특히 이번 미북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인권 문제를 직접 얘기 했으면 혹시 김정은이 마구 사람들을 죽이는 사람들이 줄지는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얘기를 안했어요 그래서 우리 탈북자들이 인권문제를 계속 제기해야 된다고 생각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정치범 수용소를 비롯한 사회 만연한 인권문제는 저 독재 정권이 축출되기 전까지는 해결 안됩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전혀 불가능 한지, 또 한가지 방안은 주민들의 단합된 힘으로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김: 과거에 독재자에게 햇볕을 쬐어서 옷을 벗기겠다는 이솝우화 같은 얘기인데 북한이 안하지 않습니까? 그나마 가망이 있는것은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정말 노예같은 처지를 깨닫고 주먹을 쥐는 것인데 어려운 것 같아도 지금 북한 주민들이 남한드라마를 거의 다 보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남조선 음악 다 들었다고 하고 지금 군대에 나가는 애들이 수첩에 남조선 노래를 적어가지고 나가서 김정은의 지시도 있어요 이런 놈들은 색출하라고 용서하지 말라고, 그만큼 과거에 비해서 북한 주민들이 남한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북한 사회가 변화 되지않으면 될 수 없다고 생각 합니다.

북한 선교회 많은 회원들은 북한의 지하 교회에 대한 궁금증이었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또 한편에서는 북한체제상 오래 버틸 수가 있는지에 대한 의혹도 있었습니다.

김: 저는 처음에 왔을때 인민군 장교였으니까 지하교회가 없다고 했어요 저같은 사람은 못 보았을거에요 그래서 없다고 했고 또 많은 탈북자들도 없다고 했고 그런데 지하 교인의 딸이 저희 방송국에 들어왔는데 자기 할머니가 평양에 살다가 함경북도로 추방되어왔다고 해요 추방된이유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북한에서 평양시 소개 사업을 했어요 그 사업중 핵심이 마지막 남았던 지하 교인들, 크리스찬들을 추방시키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때 당시 제 일의 유배지가 어디였느냐 하면 함경북도 였습니다.

그때 한국과 중국과의 수교가 되기 전이었으니까 가장 적합한 추방지가 국경지역이었는데요 그리고 이 지역이 전격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김:정말 철옹성 같은 추방지가 국경지역이었어요 후에 한중관계가 열리고 탈북자들이 국경지역을 통해 탈북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기독교인들에게 희망을 준겁니다.

이 당시 많은 한국의 선교사 또 중국에 있던 한국 선교사들과 신앙인들의 활동 무대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전도받고 탈북한 사람을 김 대표와 만나게 된거죠.

김: 드디어 하나님을 믿을 기회가 오지 않았느냐 라고 생각을 하고 중국에 있는 조선족 교회 그리고 한국의 혹은 미국의 선교사들이 전화를 엄청했어요 제가 탈북해서 3년동안 중국에서 살아 잘 압니다. 엄청난 선교사들이 가서 탈북자들을 현지에서 교육을 시켜 북한으로 들여보내기도 하고 조선족 교회 집사님 권사님들을 통해서 쌀이라든가 하다못해 축구공을 북한에 보내기도하면서 선교를 했는데 그때 북한의 토종 크리스챤들이 외부와의 접촉도 이루어 지고 신앙생활도 했는데 우리 방송국으로 들어온 친구 아버지는 재단사를 하면서 친척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그집에서 모여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했답니다.

아무리 비밀을 지키려고 했지만 결국 그 아버지는 끌려 갔다는군요

김: 북한에 얼마나 많은 보위부 스파이가 있고 얼마나 많은 통제 수단들이 있습니까? 비밀리에 했음에도 불구하고 은진이의 아버지는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 때문에 어디론가 끌려 갔다고 하는데 수용소로 끌려갔겠죠, 그집 자녀들은 탈북을 했어요 북한에서 이렇게 신앙을 가졌던 탈북자들이 간증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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