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새해면 떠오르는 추억

김태희-탈북자
2023.01.03
[여성시대] 새해면 떠오르는 추억 북한 주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이 2023년 새해를 뜻깊게 맞이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일 보도했다.
/연합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3년은 “검은 토끼의 해”라고 하는 계묘년이라고 한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여러분들께 “새해를 축하합니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한국은 새해 첫날은 신정이라고 부르고 구정이라는 설날을 진짜 설이라고 크게 쇱니다.

하지만 북한은 새해 첫날을 설이라고 부르고 이 날에 인사들을 다니지요. 아침이면 술 한 병을 꽁무니에 차고 온 동네를 인사 다니고, 인사를 오던 북한에서의 설날아침 풍경이 떠오릅니다.

 

어느 한해는 학교 교사를 하던 아버지의 제자들이 성인이 되어서 찾아와서 선생님 존경합니다. 라면서 가난하고 초라해진 옛 모습을 다 잃고 병상에서 앓고 계시던 아버지 앞에 주머니에 든 돈들을 다 털어놓고 그 강하던 옛 스승을 울게 하던 모습도 떠오르네요.

 

한국에서는 새해를 축하한다는 인사를 전화기를 통해서 많이들 합니다. 그래서 새해 전날이나 새해 첫 며칠은 전화기만 몇 시간씩 붙잡고 있어야 새해 인사들을 다 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그 시간이 너무 길어지자 전화기로 인사하는 것을 하지 않기로 한지 이삼 년이 되었는데 새해 전날 뜻하지 않는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지난 십 여년간 제가 어머니처럼 모시던 어르신들 중에 한 분에게서 받은 전화였습니다.

 

녹취: 새해 건강하고, 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를 이루기를 기대한다.

 

새해 첫날 부터 어르신의 마음이 따뜻해질 인사를 받으면서 그동안 게을러져서 멈추었던 새해 인사를 다시금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에게는 새해가 되면 북한에서 살았던 가장 슬펐던 기억들이 있는데 똑똑하던 오빠가 정신분열증에 걸려서 집 문들을 돌아가면서 다 부숴서 울면서 창틀을 만들다가 손을 썰어버리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바닥을 붙들고 하염없이 울던 추억 그리고 빚을 내서 염소며 돼지를 키웠는데 주변에 인민군이 훔쳐가서 울면서 염소와 돼지를 찾아다니던 추억들 밖에 남은 것이 없군요.

 

그런 슬픈 생각들이 가득하기에 한국에서의 삶은 그런 추억들을 잊기 위한 새로운 추억거리들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한답니다.

 

그래서 올해는 가까이 사는 한 고향 언니네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맛있는 회도 먹고, 노래방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실컷 목청도 뽑아봅니다. 그리고 북한 음식도 해먹었습니다. 두부밥이며, 북한에서 밴새라고 부르는 입쌀 만두도 빚었습니다.

 

입쌀만두는 안에 두부만을 넣기도 하지만 고기도 넣습니다. 만두 속도 할겸 그리고 갈비찜도 할 겸해서 돼지고기를 왕창 사왔지요.

 

한국은 일반적으로 상점이나 정육점이라 불리는 고기전문상점이 따로 있어서 쉽게 살 수가 있지만 이제는 식구수도 많아지고 고기를 먹는 수량이 늘어나면서 따로 돼지나 소를 잡는 곳에 가서 사왔습니다. 옛날에는 도축장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이름을 순화해서 “OO센터”등으로 불립니다.

 

그런 곳에 가면 일반고기 상점들보다 3분의 1가격은 더 싸게 살 수가 있답니다. 아무래도 유통되는 횟수가 줄어들수록 상품가격은 줄어들게 마련이니깐요.

 

기왕 갔던 김에 넉넉하게 샀더니 돼지 반쪽은 거의 들어왔습니다. 한국에서는 고기를 사면 구워먹을 수 있게, 삶아먹을 수 있게 다 잘라서 비닐에 싸서는 공기를 다 뺀 진공상태로 얼음가방에 넣어줍니다. 그걸 가져다가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었다가 하루 전날 냉장고로 옮겨서 해동 시키면 상점들에서 파는 것과 똑같은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가 있답니다.

 

넉넉하게 사놓은 고기를 가지고 돼지갈비찜을 했더니 손녀딸이 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은 다 맛있어요 하면서 커다란 국수그릇에 갈비찜 국물을 말아서 밥을 훌훌 잘 먹어주네요.

 

한국에서 태어나서 북한음식은 먹어보지도 못했지만 북한식으로 만드는 두부밥도 잘 먹어줍니다. 북한에서는 이해가 안 되던, 아이들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이 이럴때 하는 말인 듯 싶습니다.

 

설 전에는 지나가는 1년간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새로운 해를 맞으면서 무엇을 해놓아야 할지 생각을 해야 하겠습니다.

 

문뜩, 핸드폰을 들고 잘 접속하는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우리 탈북민이 쓴 글이 올라옵니다. 글 서두에 하늘처럼 믿고 삽니다. 라고 올린 글인데 북한에서 설을 맞이해서 음식들을 했는데 어머니가 어느 가난한 집에 음식보따리를 싸줘서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가보니 온 가족이 불도 안 땐 구들에 이불을 쓰고 누워서 노래를 부르더라고 하네요.

 

하늘처럼 믿고 삽니다. 장군님을 믿고 삽니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고난을 이겨냈던 북한 주민들이 비록 신년사는 없어졌지만 또다시 북한 독재자의 말 한마디를 방침으로 받들고 앵무새마냥 줄줄 외워가면서 새로운 한해를 또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겠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주야로 인민을 생각한다면서 쪽잠에 줴기밥을 노래 부르던 김정일의 거짓된 삶을 그대로 본딴 김정은을 하늘처럼 믿고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새해는 장군님의 건강이 아닌 자신들의 건강을 더 먼저 생각하고 비단옷에 돼지고기국 한끼를 위해서가 아니라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이 없이 한국 국민들처럼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