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대동강 물이 녹는다는 우수 경칩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한국은 벌써 홍매화가 활짝 피었고, 잎도 없는 나무가지에 종이로 오려 붙인듯이 목련이 하얗게 피어나고 여기저기 동백꽃이 봉오리를 틔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면 즐겁고 힘이나고 생기발랄해져야 하는데 생각과는 달리 사람들은 춘곤증을 느끼기도 하지요. 병든 닭처럼 앉아 꾸벅꾸벅 조는 겁니다. 그래서 보통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보약을 지어먹기도 하지요. 한국은 사람들이 늘 건강식품을 달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한약 같은 경우는 대개 가을이나 봄철에 먹습니다.
그리고 봄에 40대 이상 여성의 경우는 영양제를 맞는 것도 빼놓지 않는 행사인 듯도 합니다. 특히 우리 탈북민의 경우는 북한에서 영양실조에 걸렸던 경험이 한번씩은 모두 있기에 일하면서 여기저기 탈이 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일하면서 계절마다, 분기마다 영양제 수액을 맞게 됩니다.
한국에 와서부터 힘든 일을 하지 않은 나 역시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환절기에는 영양제를 맞은 것과 맞지 않은 것의 체력의 한계를 많이 느낍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함께 사는 남편에게도 신경이 많이 쓰이게 되지요.
봄도 되고 이제는 환갑의 나이에 가까운 남편이 힘들어보여서 한약을 잘짓는다고 소문난 산청이라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우리나라의 동의보감을 처음으로 작성하어 내놓은 한의사 허준 선생을 그린 드라마가 제작이 되었던 곳입니다.
지리산 끝자락에 자리 잡은 산청은 약재들로 음식을 해서 파는 식당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꽃피는 봄이 되면 약초축제도 열리는 곳이지요. 그래서인가 한적한 시골동네라고 하기에는 무색할 정도로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한의원, 한의사 등으로 불리지만 북한에서는 동의원, 동의사 등으로 불렀지요.
북한에서 동의사를 하던 분들이 한국에 와서 다시 시험을 보고 한의원을 차린 사람도 꽤 있습니다.
어쨌던, 나는 남편과 함께 한의원을 찾아서 진맥을 하고 약을 지어서 돌아왔습니다. 한국의 한의원에서는 진맥을 하고 당일에는 한약을 지을 수가 없기에 진료비와 약재 비를 계산하고 집주소를 남기고 돌아오면 이삼일 안으로 달여서 짜놓은 약을 한번에 먹을 양만큼씩 비닐 봉투에 넣어 포장을 해서 집으로 보내줍니다. 내가 한국으로 갓 왔을 때에는 기력이 없는 나를 위해 남편이 한의원에 가서 약을 지어주었는데 오늘은 나도 한번 아내노릇을 해보는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력을 보해주는 한약을 먹는 남편을 보니 북한에서 살던 생각, 중국에서 살던 생각들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중국에서는 40대 이웃 아주머니들이 남편들의 허한 몸을 보해준다고 팥과 찹쌀, 꿀 등을 함께 섞어서 푹 고아서 먹이는 것을 보았지요.
북한에서는 광복거리 건설을 나갔던 오빠가 휴가를 받고 나오면 염소를 잡아서 물엿을 달여서 섞어서 염소 엿을 만들어서 하루에 한숟가락씩 먹이는 것이 영양보충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씩이나 대수술을 한 아버지에게 드릴 영양제가 없어서 농장에서 낙태한 염소새끼며 농촌지원 나온 학생들의 밥을 해주는 식당에 가서 소뼈를 얻어서는 망치로 두드려서 가마에 안쳐서 골수까지 우려내 밥을 해서 드리기도 했네요.
또 북한에서는 피부가 벗겨지는 영양실조에 걸리면 개병이라고 불렀죠. 전문용어는 펠라그라라는 이름인데 개병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개 한 마리를 먹으면 낫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었습니다.
처음으로 아내에게 이끌려 가서 한약을 지어먹은 남편이 요즘은 또 나를 걱정을 합니다.
출근을 해서는 집에 있는 내게 전화를 해서는 몸에 좋은 것들을 함께 먹자고 합니다.
" 그거 있잖아. 그 저 뭐고 손바닥 선인장열매 백년초, 멸치의 열배란다. 열 배, 칼슘이 그 염증 다스리는데 최고네, 그 진액이 나오네. 당신하고 같이 먹을 수 있는 거…"
한국에서는 백년초라고 하더군요. 다 익어서 한알 떨어진 것을 씻어서 껍질을 벗겨서 남편을 먹였는데 아마 인터넷에 검색을 했나봅니다. 그리고는 팔과 허리가 아파서 고생인 나에게 뼈와 관절 염증에 좋다고 제주도에서 직접 나온 것으로 구매해서 먹으라고 성화입니다.
한약도 지어주면 잘먹지 않아서 나머지는 남편이 먹어주고 무슨 약이던 시작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마지막에는 할 수 없이 자기가 먹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입이 짧고 약도 잘 안먹는 데 오늘도 또 무슨 약이요, 건강식품이요? 챙기는 것을 보면서 남편이 아니고 내편이구나 하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오글오글 하고 낯간지러운 이야기를 하지만 이 사람이 아니면 한국에 올 수도 없었고, 살아가면서도 늘 자신이 넉넉하게 밀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내 남편을 이런 자리에서나마 자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올 길을 찾으면서 전전긍긍하던 나에게 내가 탈북자여서 도와주고 싶다는 그 사람을 언젠가는 여러분들에게 꼭 자랑하고 싶었답니다.
고향의 친구들은 이 나이에 할머니 얼굴이 되어 가슴이 아팠는데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네는 더 예뻐지고 더 건강하게 살려고 좋은 것만을 찾아서 사는 듯해서 또 한켠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함께 듭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이경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