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우리집 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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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3월 중순이 되고 보니 이젠 봄이구나, 겨울 날씨가 지나가기 전에 먹거리 장만을 해놔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먹거리 장만이라고 하면 겨울을 나기 위해 가을에 하는 것이 맞겠지만 사시철 신선한 야채가 넘쳐나고 상점들에 쌀이며 먹을 것이 풍부한 한국에서는 북한에서 생각할 수 있는 월동양식이 아닌 제철에 내가 즐겨 먹는 것을 장만하기 위함이었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바다가 있는 가까운 어시장으로 갔습니다.

어시장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원양어선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급냉동시켜서 건사하는 커다란 냉동창고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다양한 물고기를 많이 팔고 있지요.

냉동시킨 물고기도 마리 수나 무게로 파는 것이 아니고 냉동시킨 커다란 상자 그대로 팔기 때문에 개인이 어시장에 앉아서 판매하는 가격보다는 싼 가격에 살 수가 있답니다.

우리는 친한 언니 부부와 함께 아침 일찍 자갈치 시장을 찾았습니다. 자갈치 시장은 부산에서 유명한 곳이죠. 자갈이 많아서 자갈치 시장이라고 불렸다는 곳인데 일제강점 시기부터 있었던 자갈치 시장은 1950년대 흥남부두에서 철수하는 미군 배를 타고 부산으로 온 북쪽 피난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 국제시장, 깡통시장 등에서 장사를 한것처럼 부산에 오면 꼭 들러보고 싶은 유명한 명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유명한 자갈치 아지매라는 노래가 생각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흥남부두 돌고돌아 국제시장 돌고돌아 소리 내어 울었네 ... 엄마 엄마 엄마를 찾는 자갈치 아지매…"

여기에서는 금방 배에서 나온 가자미며 조기를 비롯한 여러가지 물고기를 공판장에서 경매를 받아서 내다가 파는 사람도 있고, 경매하는 사람들이 직접 나와서 커다란 생선상자에 담긴 채로 도매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년에 한번정도는 자갈치 시장에 가서 가자미며 명태를 사서는 북한에서 자주 해먹던 식해를 해먹습니다. 올해는 식해보다는 조기를 사러 나갔는데 남편이 좋아하는 참조기나 침조기는 없고 백조기만 나왔습니다. 물어보니 지금은 참조기가 잘 안잡히고 백조기가 잡힌다고 하네요. 가자미도 씨알이 작은 것들 뿐이라 가격이 싸도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같이 간 탈북민 언니는 갈치가 맛있다고 커다란 갈치를 샀네요. 요즘 시중에서 갈치를 사먹으려면 너무 비싸서 갈치를 금치라고 부르는데 어시장에서는 일반 시장에서 사기보다 가격이 많이 쌉니다. 갈치도 제주도에서 나오는 갈치는 은빛이 나서 은갈치라고 부르고 낚시로 잡는 것과 그물로 잡는 방법이 있어서 가격도 다양합니다. 그리고 생물도 있고, 냉동도 있는데 물론 냉동보다는 생물이 더 맛있습니다. 그럼에도 가끔은 생물보다 냉동을 선호하는 경우가 있는데 알이 크고 살이 두꺼운 경우는 생물보다는 냉동을 구매하는 경우가 있지요.

나는 사려고 마음먹었던 조기가 없어서 냉동창고로 갔습니다. 냉동창고에는 태평양, 대서양을 비롯한 드넓은 바다에 나가서 잡자마자 바로 냉동을 시켜서 가져온 물고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부세라고 부르는 조기와 오징어를 한상자씩 샀네요.

집에 와서 해동시켜보니 한상자에 20여 마리가 넘습니다. 이렇게 산 물고기를 해동시켜서 오징어는 말리고 조기는 소금에 절였다가 반건조 시켜서 냉동실에 넣었다가 먹고 싶을 때 꺼내서 기름에 노릇하니 구워먹으면 정말로 밥도둑이 따로 없습니다.

이렇게 물고기들을 박스채로 사서 말리려고 보니 우리 집 베란다는 물고기 풍년입니다. 물고기를 말릴 때에는 빨래를 널려고 천장에 설치한 빨래 건조대가 한몫 톡톡히 하네요. 남편이 세탁소에서 나오는 옷걸이를 잘라서 고리를 만들어서 물고기를 꿰서 걸어놓으니 4줄짜리 건조대 하나가 꽉 찼습니다.

오징어가 이렇게 물이 찌고 절반정도 꾸덕꾸덕해지면 북한처럼 반듯하게 꽉 눌러서 모양을 내서 한마리씩 비닐에 싸서 냉동실에 넣었다가 가스불에 구워먹어도 맛있고, 버터에 구워먹어도 맛있습니다.

이런 일을 집에서 하다보면 어렸을 때 아버지가 한트럭으로 가져다 놓으시던 동태 생각이 납니다. 온밤 자지 못하고 식구가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명태를 손질해서 집마당에 널어놓고 말려서 빨래방치로 두드려서 한드럼씩 상품을 해서는 아버지가 중국에 친척을 통해서 파느라고 제대로 된 상품은 먹어보기 힘들었지요.

중국에서는 겨울이면 명태 씻는 일, 명태껍질 벗기고 잘게 찢는 일 등을 하느라 손가락이 휘어지고 그렇게 번돈으로 아들 옷을 입히고 비싼 우유를 먹이고 남들 자식들처럼 잘 키우느라고 했지요.

그렇게 돈을 벌기 위해서 물고기를 씻고 말리던 일이 한국에 와서는 내집 식구를 먹이기 위한 즐거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얼렸다 녹기를 반복해야 되는 북어의 특성상 겨울에만 있는 물고기 덕장을 내집에서 바라보니 자신이 흐뭇하기도 하고 불량주부라고 놀려주는 사람들에게 나 이제는 불량주부가 아니고 살림꾼이라고 자랑을 해야 되겠네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