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근 열흘 동안 집을 비워두고 서울 출장을 다녀와서 여기저기 여자의 손길이 필요한 곳부터 정리하니 며칠이 훌쩍 지나갑니다. 북한은 네명 가족이어도 별로 큰 가족이 아니지만 한국에서 네명 식구면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친한 사람들은 제가 열흘씩이나 집을 비우고 출장을 다녀왔다고 하니 놀라는군요. 그래서 농담 삼아 저는 불량주부라고 합니다.
불량주부가 며칠간 집안 일에만 파묻혀 있다 보니 시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살구며, 개복숭아가 익어서 따가라고 말이지요.
녹취: 지금 (개복숭아)딸 때 됐다고, 응,응, 내일 응, 오이라 통했네
그래서 오늘 남편 쉬는 날짜를 맞춰서 시골에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려서 휴식도 취하고 휴게소 편의점에서 커피도 사고 주전부리도 사서 차안에서 기분좋게 먹고 마시면서 즐거운 여행길을 만들어갔지요.
가는 길에 지역 상점에 들러서 시골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커다란 수박도 한통 사들고 갔습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엄마라고 부르는 분의 집 마당도 한바퀴 둘러보고 한 보름동안에 부쩍 커버린 상추며 부추 그리고 우리보고 가져가라고 하신 살구나무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한국에서 상추라고 부르는 것은 북한에서의 부루이고, 북한에서 염지는 한국에서 부추라고 부릅니다. 이름은 조금씩 달라도 먹는 야채와 먹는 방법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점심에는 두 내외분을 모시고 그 동네의 횟집으로 갔습니다. 한국에서는 살아있는 바닷물고기를 수족관에서 바로 잡아서 회로 떠먹습니다. 수족관과 유통시설이 원만하지 못한 북한에서는 바닷가에 살았던 사람들은 누려볼 수가 있었겠지만 바다가 먼 곳에서는 엄두도 낼 수가 없는 음식이지요.
바닷물고기로 회를 떠먹는 경우도 있지만 민물고기 중에서 숭어도 회로 떠 먹을 수 있답니다. 회를 가지고 초밥도 해먹는데 북한에서는 몰랐지만 한국에 와서 보니 김정일 전용 요리사였던 일본인 초밥요리사도 있었더라구요.
후지모토 겐지란 이름의 요리사가 일본에 가서 자서전으로 쓴 그 책을 읽었을 때 배신감을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찌되었던, 오늘 맛있는 회와 함께 매운탕도 곁드려 한끼 식사를 잘 하고 엄마 집으로 와서 커피 한잔을 했습니다. 구수하고 진한 향이 가득한 커피 한잔씩을 들고 마당에 앉아 한모금씩 들이키니 세상에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마당에 그동안 따지 않아 수북히 늘어난 상추잎사귀며 깻잎을 비닐봉지에 한봉지씩 담아넣었습니다. 마치 이런 것을 처음 보는 사람인양 호들갑을 떨고 있자니 옆에 있던 아버지가 넌지시 “부추도 가져갈래?” 하고 물어보십니다.
남편이 괜히 미안해하면서 괜찮다고 하는데 저는 무엇이든지 주세요. 다 가져갈게요 하고 뻔뻔스럽게 굴지요. 시골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주는 대로 가져가면 기분 좋아하십니다. 물론 가져가서도 요리를 잘 해먹어야 더 좋아하시죠.
요즘은 농약을 안치고 키운 작물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지라 시골에서 직접 따서 가져간 야채들은 정말 하나도 안남기고 잘 먹을 수 있어 욕심을 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야채도 심으면 한밤중에 다 뽑아가서 서로 나눠먹는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싶을 정도였다면 탈북해서 중국에서 시골생활을 할 때에는 친척 중에 누구든 와서 알뜰살뜰 챙겨가서 잘해먹는 것을 보면 흐뭇해 하시던 노인네들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텃밭농사를 지어서 남의 손에라도 들려줄 수 있었던 제가 이제는 도시에서 살면서 시골에 가서 야채들을 보고 그냥 올리가 없지요.
밭에 상추를 다 따서 한 두포기는 두려고 하니 없으면 우리는 동네에서 얻어먹어도 된다고 하시네요. 이말 또한 북한에서는 들어볼 수가 없는 말인데 한국이니 가능하구나 생각합니다.
살구나무에도 살구가 주렁주렁 열려서 그 밑에 커다란 풍천을 널어놓고 살구가 떨어지면 바로바로 주어서 담게 해놨네요. 힘 좋은 남편이 나무를 흔들자 살구비가 내립니다.
자루에 거의 한자루 되게 담았네요. 우리가 온다고 전날 미리 개복숭아도 커다란 자루에 한가득 따놓으셨습니다. 시골 어르신들과의 정겨운 시간을 끝내고 차로 한시간 반 길을 달려서 집에 왔습니다.
오면서 상점에 들려서 설탕도 커다란 봉지로 두봉지 샀습니다. 저녁을 해먹고 설거지 후 바로 북한에서 곰취라고 부르는 머위며 상추, 깻잎 등 야채를 씻어서 봉지에 한끼씩 먹게 담아서 냉장고에 들어갈 것은 냉장고에, 냉동실에 들어가야 할 것은 냉동실에 넣었습니다.
설탕에 1대 1비율로 담궈야 할 개복숭아는 씻어서 물기가 마르게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소쿠리에 담아 놨지요. 이렇게 해서 설탕에 넣어 백일이 되면 설탕과 개복숭아가 어우러져 진액이 만들어지는데 건더기를 건져내고 남은 물을 몇년간 그늘 진 곳에 잘 보관해두면 맛있는 개복숭아 농축액이 됩니다. 매실도 그렇게 해서 매실 진액을 만듭니다.
올해는 손녀딸에게 가게서 파는 탄산음료수가 아닌 집에서 내가 만든 맛있는 과실액에 꿀을 섞어서 차를 만들어 먹여야 하겠네요. 냉동실에 얼음을 얼려두었다가 우유분말과 꿀이며 과실액을 얼음분쇄기인 믹서기라는 기계에 갈면 맛있는 얼음음료가 됩니다.
오늘 저녁은 손녀딸이 처음 먹어보는 살구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내일은 부추 즉 염지를 손질해서 맛있는 부추전을 만들어야겠군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였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