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오늘은 여성이 아닌 남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한국에는 많은 가족들이 있지만 그 가족들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살아가는데요. 북한처럼 어르신들만 살아가는 경우도 있고, 노년에 배우자가 돌아가시고 홀로 계시는 분들도 계시고 또 남녀가 살다가 서로 예기치 못하게 갈라져서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요.
결혼을 하기 전 임신이 되어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든 자녀양육은 남자가 아이를 홀로 키우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깨고 딸 하나를 잘 키우는 탈북민 남동생이 있습니다.
딸아이가 아기 때 갈라져서 십여년이 넘도록 아이를 밝고 예쁘게 잘 키우는 것도 대견하지만 거기에다가 사회적 기업을 일으켜 탈북민을 고용하는 당당한 사업주이기도 합니다. 이런 동생에게서 얼마전 전화가 왔습니다.
" 두개 (산양유) 보낼까 하다가 지금 샘플(견품)이 몇 개밖에 없어가지구, 생산을 조금하다 보니, …
지금은 남쪽 도시인 전라남도 담양이라는 곳에서 북한의 청진이라는 이름을 본따서 청진담이라는 이름으로 전자상거래를 하는 인터넷 상점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지방에서 탈북민 행사를 하면 늘 자신이 만든 좋은 제품을 탈북민들에게 보내주고 또 이번에는 동남아로 선교를 떠나는 목사님께 선물을 하련다고 하니 좋은 단백질 제품도 선뜻 보내주는군요. 어려운 과정에서도 늘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모습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가끔씩 농담으로 그런 투지로 북한에서는 왜 잘 살지 못했냐고 합니다. 농담이지만 어쩌면 북한에서는 우리가 꿀 수 있는 꿈과 기회가 있었을까요? 손재간도 좋아서 기계를 만들어서 공장에 납품하기도 합니다. 기계를 만드는 사람을 여기서는 엔지니어라고 부릅니다. 그런 엔지니어는 어디서나 환영을 받지요.
한번씩 공장에서 로봇이 움직이면서 글을 새기고 제품을 포장하는 동영상을 보내오면 신기하기만 합니다. 복사기가 하얀 백지장에 글을 쓰는 것만도 신기했는데 이제는 탈북민 스스로가 포장될 제품에 글을 써서 완성제품을 만들어냅니다. 북한이라면 정부에서나 하게 되는줄 알았는데 한국에 오니 개인 공장을 차리고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동생은 우리가 북한에서 먹던 양배추를 환으로 만들어서 위에 좋은 제품을 만들기도 했고, 새싹보리를 길러서 그 분말로 환을 만들어 판매 합니다. 또 앞으로 대체식량으로도 지목된 애벌레며, 단백질이 풍부한 굼벵이, 북한에서 많이 잡아서 팔기만 하던 개구리 알 등 여러가지 건강식품을 가지고 불순물을 걸러내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판매 합니다.
신장에 좋은 호박을 가지고 호박즙도 만들어내는데 맛은... 음... 별로네요. 순수한 호박즙은 맛이 달콤하지 않다고 합니다. 사과나 배를 비롯한 다른 과일을 첨부해야만 달고 맛있는 호박즙이 나오는데 사람들은 그맛을 모르니 슴슴한 호박즙을 보고 맛이 왜 이래 합니다. 그래도 이젠 다른 것이 첨가되지 않은 제품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남자가 혼자 산다고 말하기 무색하게 깔끔하게 살기도 하지만 이웃나눔과 봉사를 꾸준히 합니다. 두 가정을 선정해서 매달 230달러씩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립이 될 때까지 꾸준히 하는 동생을 보면서 나 혼자 잘사는 것에 급급한 모습이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우리가 북한에서 많이 먹던 염소젖을 가지고 환을 만들어 보내왔습니다. 북한에서 풀과 고기를 바꾼다면서 산과 들에 풀을 심어서 양과 염소, 토끼를 키우라고 했지요.
한국은 풀을 따로 심지 않아도 사육장에서 염소를 키우고 소를 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양이라고 불리는 염소는 높은 곳을 타야 하고, 햇빛에 녹아붙은 소금을 핱아먹으면서 탄탄해져야만 건강한 염소라고 부를 수 있지요.
어릴 때 집에서 염소를 키워서 염소젖을 먹기도 했고 가까운 곳에 목장이 있어서 염소젖을 받아와서 물을 섞어서 끓여 밥을 말아먹었던 때가 있었답니다. 그래서인지 산양유는 입에도 맞고 또 건조를 시켜서 씹어 먹는 재미도 있습니다.
동생이 딸 하나를 키우는데 한번씩 누나 집이라고 데리고 옵니다. 저를 고모라고 부르고 싶은데 저의 집에 손녀딸이 있어서 어떻게 호칭을 정리할지 몰라서 언니뻘인 손녀를 따라서 할머니라고 할때도 있습니다. 귀여운 모습에 한번씩 어른들의 큰 웃음이 빵빵 터집니다. 저에게 한국에서 만난 가족 중 유일한 동생네 가족입니다.
예전에는 내 가족은 핏줄로만 연결되어 있는 줄만 알고 친구 어머니조차 쉽게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던 저에게 한국에서 만난 양부모님과 형제들은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로 봐야겠지요. 핏줄도 중요하지만 사회구성원은 핏줄이 아닌 인간의 따뜻함으로도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동생네 가족과 저의 가족은 비록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나눔과 베품으로 만들어진 따뜻한 친지, 가족입니다. 오늘은 그런 가족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나눔으로 만들어진 가족은 나의 크나큰 힘의 원동력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 였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