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식사와 탈북자를 돕는 실향민

김태희-탈북자
2021-08-03
Share
이론식사와 탈북자를 돕는 실향민 지난 2019년 추석.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실향민 가족이 임진강 이북을 향해 절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오늘은 탈북민이 살아가는 이야기와 이론 식사의 추억, 그리고 실향민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이야기해드리려고 합니다.

8월입니다. 이맘때쯤이면 고향에서는 풋 강냉이라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한국은 옥수수가 한철이고 복숭아며 사과가 과일 매대와 마트 즉 상점에 즐비하게 진열되어 고객들이 사가기를 기다립니다.

얼마 전 탈북민 친구가 복숭아 한 상자를 먹으라고 가져다 주는데 딱딱한 복숭아가 제 입에는 너무나도 맛있었습니다. 오늘도 다른 친구가 냉장고에서 복숭아가 물러져간다고 하소연을 해서 갔더니 한 상자를 넘게 줘서 가져왔답니다.

예전만큼 이웃 간에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지만 한국은 자가용차가 있으니 거리가 좀 멀어도 친한 사이에는 서로 주고받는 것이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정이라는 것이겠죠.

또 얼마 전에는 남편이 원양어선을 타면서 태평양에서 오징어를 잡아서 배에서 바닷바람에 말린 것이라고 하면서 친구가 보내왔더라구요. 혼자 먹기 아까워서 많은 양은 아니지만 얼마간 더 구매해서 친한 사람들에게 먹어보라고 보내줬거든요. 모두 북한에서 먹던 맛이라고 얼마나 좋아하던지요.

북한에서는 말린 오징어를 낙지라고 불렀는데 한국은 낙지가 따로 있고 또 오징어도 있답니다. 낙지는 보통 산 것으로도 먹고, 맑은 국인 연포탕으로도 해먹는답니다.

먹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북송 되었을 때 구류장에서 있었던 이론식사 시간 생각이 났습니다. 어쩌다 쉬는 시간이 되면 귓속말로 중국에서 해먹던 음식 이야기를 해주었지요. 계란 후라이를 만들어 먹던 이야기를 하는데 한 사람이 어머 계란 삶아먹어도 맛있는데 기름이 어데 있어서 기름에 튀겨먹소? 해서 그 당시는 강택민 밥도 얻어 못 먹고 붙들렸냐고 웃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없던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한 사람들은 이론식사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 하겠지만 북한에서 이론식사라고 하면 모두가 알만한 이야기죠. 말로 상상하는 식사, 너무나도 가슴 아픈 추억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대한민국의 남단, 거제도와 가까운 곳인데 이 곳은 6.25 전쟁시기 전쟁포로들을 수감했고 또 피난민들이 거주하던 곳이랍니다.

북한의 제가 살던 곳에도 전쟁포로로 잡혔다가 포로송환 때 북한으로 다시 돌아오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당시 거제도 수용소에 포로로 잡혀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겨울이 북한보다 덜 춥고 물이 얼어도 엄지손가락 두께만큼 이었다던 말이 떠오르네요. 2007년에 제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에도 12월의 한국은 장미꽃이 피어나서 놀라기도 했지요.

탈북민 우리가 정부의 사회정착교육시설인 하나원을 수료하고 사회에 처음으로 발을 디딜 때 도움의 손길을 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답니다. 그 중에는 6.25동란에, 또는 하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북한에서 박해를 받다가 가족 모두가 고향을 등지고 떠나오신 분들도 있지요.

녹취: 우리 학교 방학 동안에 우리교회 총각집사가 방학이니깐 책상 위 먼지가 뽀얗지 않아 그럼 먼지를 닦고 올라가면 표시가 안 났지, 그냥 올라가가지고 초상화를 찢어 버린거야. 그러니깐 이 발자국을 갖다가 전부 청년들을 잡아다가 발을 잰거야 그래서 그 분이 잡혀서 죽었잖아. 그 이후로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봤어 그때 치안대장을 우리 아버지를 시킨거야. 아버지가 열흘 동안 잠을 못 주무시는거라. 그래 왜 그런고 하면은 가마니가 차곡차곡 쌓여있는데 보니 사람을 죽여서 각을 떠가지고 쌓아놓은 거야. 소 돼지 잡아 놓은 거 같았어. 목사 장로 집사 안수집사 이런 사람들을 전부 잡아다 죽여가지고 가마니에다 그렇게 쌓아 놓은 거야. 그러는 중에 후퇴다 해가지고 남한서 빨리 오라고 밤 12시 넘으니깐 찾아서 들어와서 빨리 나오라고….

10살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부산까지 오셨다는 80세 고령의 할머니 전도사님은 늘 우리 탈북민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우리식구들이라고 불러주신답니다.

아침마다 탈북민들의 적힌 수첩을 놓고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를 해주시고 계절이면 계절마다, 철이면 철마다 선물을 한가득 가져와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하지요. 그런 분들이 눈 감기 전에 고향 땅을 한번이라도 밟아봤으면 원이 없겠다고 이야기를 하신답니다. 이렇게 고향을 그리시는 분들을 실향민 1세대라고 합니다. 그분들이 낳은 자녀 세대를 실향민 2세대라고 하지요.

가끔은 우리는 자신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눈 감기 전에 고향에 가볼 수가 있을까? 그때가 언제일까? 하고 말입니다. 실향민 세대처럼 우리도 통일전망대 앞에서 하염없이 고향 땅만 바라보다가 눈물만 흘리는 세대가 될까 두려운 마음 입니다. 어쩌면 우리 민족에게 처해진 이산의 아픔이 다음 세대에 대물림 되지 않게 우리 역할을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향민들이 고향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앞당기고 서로 돕기 위해서 세운 단체가 이북5도청입니다. 이 단체는 통일된 후를 생각하며 한국에 각 도, 시 지역장들을 세운 것처럼 북한의 각 지역을 책임질 사람들을 임명하였답니다. 그것을 관리하는 단체가 이북5도청이구요.

앞으로 통일이 되면 탈북민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하고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은 어떤 역할을 감당하게 될까요? 각자의 자리에서 통일을 위해 더 나아가 통일 후 행복한 날을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해 봅니다.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가 있는 그런 통일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탈북민들이 여러분들의 힘이 되어 응원합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자유아시아방송 RFA 김태희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