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익어가는 우리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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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어려서 북한에서 살때 환갑을 지내던 할아버지 모습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동네에서 어르신들 환갑을 쇠면 축하를 하고 했지요. 그런데 한국은 환갑이나 칠순인 고희연을 안하고 팔순에나 상을 차리려는 모습입니다. 그만큼 한국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늘어났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가끔씩 고향에 전화를 했다는 친구들이 팔순이 다 된 어머니하고 통화를 했다는 말을 들어보면 이제는 북한에서도 팔순이 되는 연세까지 사시는 분들이 계시는 구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한번씩 북한에서 함께 온 친구들하고 통화를 해보면 북한에서 살다 오신 어머니들하고 한국문화를 빠르게 습득한 젊은 친구들 사이에 갈등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얼마전 태국 이민국 수용소에서부터 한 호실을 배정받아서 생활하던 십 년 어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녹취>:

우리 엄마 성격자체가 좀 까다롭고 좀 까탈스러워 , 딸인 내도 못 맞추는거야

늘 즐겨 하는 인터넷관계망에서 소통을 하는 사이긴 하지만 어쩌다 전화를 하는 것은 가정이 있는 주부들로서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래도 마음먹고 전화기를 붙들면 한시간 정도는 훌쩍 넘기는 것이 여자들의 수다이기도 합니다.

당시 그 친구는 나이차이가 별로 안 나는 쌍둥이 같은 동생과 함께 왔었는데 그후 어머니까지 한국으로 모시고 와서 저에게는 참 부러운 친구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한번씩 친정 가족이 없는 저에게 약을 올리듯이 배부른 전화를 합니다.

다름이 아닌 부모님 과의 갈등 문제인데요. 50~60세가 되도록 북한에서 살다 오신 분들은 한국문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어른들 눈에는 한국의 자본주의 바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지요. 우리가 북한에서 철없이 뛰어놀 때 어른들이 요즘 아이들이 문제라고 하던 때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서 함께 온 자녀일지라도 젊은 세대는 한국 문화에 빠르게 적응되어 갑니다. 특히 말과 노래 그리고 소비문화는 누가 배워 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듯이 적응을 해갑니다. 짧게 하는 줄임 말과 단어, 북한 창법이 아닌 한국의 발라드와 트롯 등 노래를 즐겨 불러야 친구들 사이에서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도 한자리 차지할 겁니다.

그렇게 허용이 안 되는 문화적 괴리감으로 인해 북한에서 온 엄마들과 자녀들은 늘 만나면 이것저것 안 맞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어느 웃기는 개그 프로에서 부부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고 로또라고 하던 말이 생각이 나는군요.

로또는 번호를 사서 그 번호에 당첨되면 큰 액수의 돈을 받는 것인데 한방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이 삽니다. 그런데 그런 로또가 사람마다 다 맞는다면 행운번호가 아니겠지요. 그런데 부부는 그런 로또라고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탈북민 우리에게는 부부보다는 부모 자식 간에 로또가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반세기 넘도록 북한의 교육을 받아오신 분들이 자신들이 살아온 생활방식과 관점을 바꾸기에는 살아온 시간들이 너무 아까우신 것이겠죠. 그리고 지난 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의 젊음이 사라지는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모르는 자녀는 이 좋은 곳에 와서 왜 옛날처럼 구질구질하게 사시냐고 목소리 높여 핀잔을 합니다. 어쩌면 구질구질하게 산 다기보다는 북한에서 배운 대로 황금만능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젊어서 돈을 아껴서 모으지 않으면 늙어서 살아갈 것에 대한 염려와 노파심이 함께 있는 것이겠죠.

정작 함께 살아가면서 이렇게 저렇게 부모님을 보살피는 것이 또 하나의 자기들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부담이기도 하겠지만 한 번도 친정식구를 불러본 적이 없는 저에게는 그야말로 부럽기 그지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담은 탈북민들 뿐만 있는 문제는 아니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랐어도 부모님 세대를 다 이해를 하기에는 늘 부족하고 엄마의 마음이 헤아려지지 않는 것이 자식이지요.

연로한 연세에 자식을 위한 마음만이 가득해서 전기를 아껴서 찬바람이 나오는 에어컨대신 선풍기바람도 아껴가면서 쐬시고, 추운 겨울에도 난방보다는 자신이 눕는 자리에만 전기장판 한장 달랑 깔고 쪽 잠을 주무시는 부모님 때문에 속상하다는 분들을 주변이나 사회관계망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러다가도 부모님 마음을 헤아릴 나이가 되면 그때에는 어버이 마음이 전해져 받은 사랑을 되돌려 드리려 온갖 정성을 다하시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지난날 아버지에게 모진 말을 했던 나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지요. 어쩌면 한국에서 다시금 부모님을 모신다면 모진 말 대신 최선을 다해서 모시고 싶은 것이 부모님입니다.

그래서 통화를 마치면서 동생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처럼 가슴에 늘 아프게 담아두고 있지 말고 살아 계실 때 잘해드리라고.

흐르는 시간을 잡을 둘 수 없이 하나원 시절 20대의 친구들이 이제는 40대가 되어서 함께 늙어가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쩌면 늙어가는 이야기가 아닌 익어가는 이야기가 되어가는 요즘, 익어가는 계절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루 이틀이면 끝나가는 8월의 끝자락에 청취자 여러분들께서도 하루하루 알차게 익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였습니다.

에디터 홍알벗,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