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바야흐로 가을입니다. 황금나락이 머리를 숙이고 농부의 수고가 알알이 깃든 풍요로운 들판이 펼쳐졌습니다. 가을 생각을 하면 늘 고향에서 지붕위에 빨갛게 널어놓았던 고추이삭이며 지붕 처마에 대롱대롱 달려있던 마늘태도 그려집니다. 한국에서는 고추를 널어서 말릴 만한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미리 만들어서 파는 김장용 고추가루를 열근 되게 구매를 해놓았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은 북한에서는 볼 수없는 단감이 열리는 고장이라 낮은 산기슭에 잇닿아있는 과수밭에는 단감이 한창 익어갑니다. 그리고 대형 상점이며 주변 과일 상점에는 가을에 볼 수 있는 햇배와 사과며 대추가 가득 보입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가을을 바라보면서 저는 얼마전 끝난 항저우 아시안 게임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보름동안에 걸친 체육대회였지만 이 경기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농부의 마음보다 더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을 했는가를 볼 수 있었지요. 그러면서 어린 시절 생각이 문뜩 문뜩 떠올랐습니다.
어렸을 때는 가정마다 텔레비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른들은 집에서 혼자서 보는 경기보다는 모여서 보는 것이 좋아서 늘 농장 선전실에 모여서 이기면 환호를 하고 지면 혀를 쯧쯧 차기도 하면서 즐겼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저는 어리기도 했지만 운동은 즐겨하지 않아서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마냥 어른들 손에 이끌려서 지루하게 봤던 운동 종목들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특별히 북한에서 자부하던 여자탁구와 다이빙은 어린 마음에도 멋있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운동중에 가장 환성을 자아내는 것은 축구라고 말할 수가 있지요.
북한은 일찍이 4.25 축구단을 만들었고 또 초창기에는 내 아버지도 몸 담고 있었던 곳이라 더 새롭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북한을 떠나서 한국에 살면서 북한이 아닌 한국을 응원을 합니다.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으로 와서 한국국민으로 살아가는 아들 역시도 중국이 아닌 한국을 응원합니다. 어려서 엄마가 붙들려다니는 모습을 보고 북송으로 인해 엄마와 떨어져 살았던 아들의 그런 마음을 충분히 이해를 하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을 하네요. 하지만 중국에서 낳아서 한국에 데려온 자녀 모두가 한국을 응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인으로 강하게 인식하고 있는 아이들의 경우는 몸은 엄마를 따라 한국에 왔어도 자신은 중국인이고 경기에서도 중국을 응원하는 경우가 많지요. 이렇게 탈북민 가정은 어쩌면 여러가지 형태로 수 많은 아픔과 경험을 해가면서 경기를 응원하는 것조차 만만치 않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에는 중국에 살았는데 어린 아들을 업고 위성으로 한국 텔레비젼을 볼 수 있는 남의 집에 다니면서 열심히 한국축구를 응원하기도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열리는 이런 여러가지 이름을 단 체육대회들이 있는데 나의 경우는 운동에 관한 것에는 관심이 적은지라 한번씩 헷깔리기도 합니다.
월드컵은 4년에 한번씩 열리는 세계 남자축구 대회라고 하고요. 올림픽은 4년마다 개최되는 최대 규모의 종합스포츠 국제경기대회이며 또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스포츠 대회라고 하네요. 그런 올림픽 대회를 몇년전에는 한국에서도 평창 동계올림픽이라는 이름으로 성황리에 진행을 했고 저도 그 개막식에 초대를 받아 관람하는 영광을 누렸답니다.
이런 대회가 열리면 한국의 아파트에서는 함성이 터져오르는데 특히 2002년에 열린 월드컵대회 때는 굉장했답니다. 한국에서는 응원하는 사람들이 빨간 옷을 입고 한국축구를 응원을 했는데 그때 당시 “붉은악마”라는 말로 유명했다네요. 그리고 지금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응원구호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는 지금도 누구나 다 하는 구호입니다.
그 후부터는 한국의 주류문화가 바뀌어서 이런 큰 대회를 하면 술집들이 대형 텔레비전을 밖에서도 다 볼 수 있게 걸어놓고 맥주에 닭고기를 튀긴 치킨 판매를 합니다. 그리고 가정에서도 치맥이라고 맥주와 치킨, 콜라 등을 시켜서 이때면 치킨집에서 닭고기가 없어서 못 팔 정도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우렁찬 환호와 함성 그 뒷면에는 탈북민 우리의 아픔 또한 가득합니다.
세번의 강제북송을 겪었던 나에게는 2008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올림픽이 두려워서 미리 중국을 탈출했지만 미처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대량 검거되어 북송이 되었습니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 게임도 각 나라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이 보이지만 그 뒷면에는 수많은 탈북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들이 있었을 겁니다.
이렇게 큰 대회를 앞두면 늘 중국은 대량검거선풍을 일으켜서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보내는데 코로나 시국에 붙잡힌 사람들까지 그 숫자가 2,600여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 풍요로움에 젖어 아시안의 젊은 청춘들이 누리는 이런 운동경기를 마냥 즐겁고 재미나게 볼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온 그 곳에, 내가 겪었던 아픔이 가득한 저곳에 아직도 자유를 찾아 떠난 사람들이 목적지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추워지는 가을 날 더 이상 탈북자들이 북송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