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초겨울이 다가왔습니다. 서울에는 눈도 내리고 제가 사는 따뜻한 남쪽 지방에도 이제는 겨울을 알리는 듯 찬바람이 붑니다. 가을 낙엽이 흩날리면서 찬바람이 불면 어린시절 학교에서 배우던 개미와 베짱이라는 우화가 떠오릅니다.
온 여름 땀 흘려 일한 개미는 눈이 펄펄 날리는 겨울에 따뜻한 아랫목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는데 기타를 치며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는 추운 겨울이 되자 먹을 것이 없어서 개미네 집을 찾아가 식량을 구걸한다는 이야기였죠. 하지만 북한의 우리 형제들은 여름내 땀 흘리며 일하고도 추운 겨울이 되면 먹을 걱정, 입을 걱정, 땔 걱정에 겨울은 그야말로 걱정투성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겨울나기 준비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한국도 겨울이 오면 걱정거리가 있는 데요. 다름 아니라 옷장에 넘쳐나는 옷 때문입니다. 여름에는 얇은 옷을 입어서 가지 수가 많아도 옷장이 넘쳐나지 않는데 겨울 옷은 두께도 상당하고 또 가지 수가 많아서 옷장 정리를 하는 것이 여자들에게는 일이랍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옷이 있어도 정작 일이 생겨서 나가려 하면 입을 옷이 없다고들 한답니다. 그러면 바로 백화점이나 옷가게로 달려가서 새옷을 사 입게 되죠. 그렇게 한 벌, 두벌 쌓이는 옷이 옷장 가득해도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남한생활인 듯 합니다.
저 역시도 옷장이 옷으로 넘쳐나서 새 옷 사는 것을 좀 자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정작 예쁜 옷을 보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사고 또 사서 걸어놓죠. 그리고는 유행이 지난 옷들은 싸서 옷 수거 함에 넣으면 수거를 해가시는 분들이 와서 마대에 꽉꽉 박아 담아서 가져가십니다. 그렇게 가져간 옷들은 선별작업을 거쳐서 어려운 곳들에 가서 싼 가격에 팔기도 하고 재활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답니다.
12자 장롱을 정리해서 옷을 정리하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세 칸짜리 장롱 중에 두 칸은 저 혼자 사용을 하는데도 자리가 모자란데 세 칸 중 한 칸만을 사용하는 남편의 옷장은 다 넣고도 자리가 훤하다는 사실입니다.
아들의 옷장도 자리가 시원하게 비어있는데 11살짜리 손녀도 여자 옷장이라고 늘 자리가 모자랍니다. 그래서 침대에 붙어있는 서랍장이며, 수납장을 사용하기도 한답니다. "여자는 꽃이랍니다."라고 부르는 북한과는 달리 "여자를 꽃으로도 때리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한국은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조차 여성의 지위가 더 돋보입니다.
옷 하나를 보면서도 저는 북한에서의 생활과 비교를 해보게 되는데요. 그만큼 저에게 북한에서의 삶은 그냥 살아온 것이 아니라 저의 인생에서 청춘시절에 대한 깊은 상처와 깨달음을 남기게 한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한겨울에도 동복 하나에 만족하면서 살았어야 했던 청춘시절, 겨울에 눈을 맞아 눅눅해진 솜옷을 따뜻한 가마목에 널어 말리면 다음날은 꽛꽛해진 곳을 비벼서 다시 입고 나가야만 했습니다. 북한에선 겨울에 동복을 두벌씩 가지고 있다면 그야말로 부자인셈이였죠. 그리고 군대 동복을 입는 것도 하나의 멋이었는데 지금도 군인들이 겨울 동복을 먹을 것과 바꿔가면서 파는지 싶네요. 중학교시절, 중국에 친척이 있어서 아버지가 중국에 가서 가져온 빨간 다우다(방한)동복을 입고 으스대던 철없던 시절도 생각이 납니다. 팔소매며 목덜미에 반들반들하게 때가 묻어도 빨아서 말릴 수가 없기에 비누칠을 해서 물걸레로 닦아내던 추억도 생각이 납니다.
일 년에 한 번정도 겨우 빨던 겨울 솜옷들이었는데 지금 한국의 겨울 동복은 안에 가벼운 솜을 넣기도 하고 또 거위털이며 오리털을 넣어서 굉장히 가볍습니다. 빨래는 세탁기에 넣어서 하고 젖은 옷은 건조기에서 넣어 말려내면 몇시간 만에 입고 나갈 수가 있죠. 이런 신선 같은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고향에서 생활했던 것들이 더 비참해지고 지금도 제가 살았던 그런 삶을 살아가는 북한주민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슬퍼집니다.
한겨울에도 다 헤진 운동화를 신고 눈 덮인 산을 톱아 오르던 일, 진눈까비 맞으며 하던 농사일, 공사장에서 일하고 집으로 가서는 제대로 씻을 수도 없고 말릴 수도 없는 환경에서 다음날 눅눅한 옷을 걸치고 일터로 나가야 했던 그 세월이 머리속에 한편의 영화처럼 스쳐지나갑니다. 한국에서 어쩌다 비를 맞으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 화장실에서 씻어내고 말려내고 할 때마다 북에서의 고난들이 생각나면서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함을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북한에서는 계절마다 옷 한 벌에 만족하고 살던 제가 겨울 옷이 여러벌임에 깜짝 놀랐던 것은 처음으로 중국에 왔을 때였죠. 하루 24시간을 환한 전기 불을 보고 하루종일 여러개의 채널로 돌아가는 텔레비전이며, 넘쳐나는 옷장에서 서너 벌 씩 걸려있는 겨울 동복들을 보면서 숨을 헉 하고 들이쉬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새삼스레 안방 장롱에서 가을과 여름 옷들을 꺼내서 겨울 옷으로 바꾸는데 밀어내면서 걸어도 모자라는 자리를 보면서 북한에서의 장롱을 생각해봤습니다. 아버지가 대패질하고 연마질해서 만들었던 장롱에는 옷 대신 이불로 가득 찼고, 장롱대신 벽에 기다란 옷걸이를 만들고 거기에 커다란 옷보를 드리웠던 함경도식의 옷걸이는 한국에서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지만 그 때의 옷걸이에도 계절에 따라 여러 벌의 따뜻한 옷들이 걸려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북한의 주민들도 겨울이면 단벌 옷에 미처 마르지 않아 눅눅한 옷보다는 가볍고 따뜻한 옷을 입고 마음도 가볍고 따뜻해졌으면 하는 바람 입니다. 그런 날이 언제 올까요? 하루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었습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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