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여대생 시인의 시세계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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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밥이 그리운 저녁' .
시집 '밥이 그리운 저녁' .
사진-탈북시인 이가연 제공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탈북하신 분들 중 여러 부분에서 자신의 재능과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남한에 와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꽃이 필 수 있도록 기회를 찾는 것이 중요 하다는 탈북 여대생, 주변에서 재능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은 것이 용기와 희망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 시인이 된다는 것은 상상 할 수 없었어요. 북한에서는 위대한 사람만 시인 이라고 생각 했어요. 한국에서는 많은 선생님들이 재능을 찾아주잖아요 또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많아요, 그런데 북한은 그런 것이 전혀 없거든요.

탈북여대생 시인, 가명의 이가연 씨는 북한에서는 아무런 희망도 꿈도 없이 단지 먹고 사는 데 바빴지만 지금은 시인으로 등단했고 시 작업도 활발하게 한다며 자신의 바뀐 모습을 돌아봅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이가연 씨의 시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음악:

이 가연 씨의 첫 번째 시집 제목이 ‘밥이 그리운 저녁’입니다. 배고픈 시절을 거쳤으니까 이런 제목이 눈에 설지는 않지만 가연 씨가 이 제목을 통해 알리고 싶은 것은 자유라고 말합니다.

이: 시집 내용을 보면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지만 제가 한국에서 자유를 누리면서 가족이 너무 그리웠어요. 저 혼자만 자유를 누리자니까 고향의 가족들은 기본적인 이동의 자유, 언어의 자유 사람이 태어나서 자유롭게 해야 할 행동을 못하고 억압받고 사는데 이런 것을 저만 한국에서 누리고 있으니까 가족이 정말 너무 그리웠어요.

이와 함께 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가연 씨는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한 당시 탈출에 동행한 여러 사람 중 단 한사람이었기에 시간이 갈수록 그리움은 더 한데요,

이: 시집 제목을 밥이 그리운 저녁이기도 하지만 그 내면에는 사람이 그리운 저녁을 함께 포함하고 있어요. 제가 항상 학교 갔다가 일 하러 갔다 집에 들어오면 함께 밥 먹을 가족이 없잖아요. 그래서 저녁마다 가족이 더 그리웠어요. 북한에도 사실 아침에 동생들 학교가고 부모님과 저는 새벽에 약초 캐러가고 그렇게 살았어요. 그래도 저녁만은 풀죽이라도 같이 먹을 가족이 있어서 저는 항상 기다려지는 저녁이었는데...

한 가지 방법은 가족들을 만나기 전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는데요,

이: 남자 친구가 있기는 한데 좀 더 만남을 가져보면서 결정을 하려고요 (웃음)

다행이네요, 결혼을 생각하는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이요 오늘 첫 번째 시낭송을 부탁하죠.

음악:

이가연의 시 "쌀독"

옆집 연희네 가족은
온 가족이 굶어 죽었다
그들의 이름을 쌀독에 묻었다
땅에서 굶어죽어 또다시
굶주릴 까봐 쌀독에 묻었다.

이 시 또한 북한의 당시 상황을 잘 묘사했고 또 연희라는 이웃 언니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보았습니다.

이: 저희 옆집에 살았어요. 그런데 그 언니네 가족이 다 굶어 죽었어요. 저랑 나무해서 팔고 약초도 캐고 풀도 뜯고 해서 살았는데 그 언니네 가족 5식구를 언니가 혼자 먹여 살리려니까 힘들었었나 봐요. 5월이면 과수반에 복숭아가 열리기 시작 하는데 5월초에는 복숭아 새파란 것이 살구만한 복숭아인데 그 익지 않은 복숭아를 따다 먹고 얹혀서 가족이 모두 죽었어요. 혹시 농약 처리를 한 것을 먹고 죽지 않았나 그런 의심도 들었어요.

동생이 둘 있었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장애인이라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옆집 언니는 맏이로서 동생들 학교에 보내야 하고 부모님도 돌보는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돌보다 꽃 같은 나이에 그만 굶다가 세상을 떠난 거라 마음이 아파 이 시를 썼다고 하는군요.

이: 그 언니를 생각하고 가족을 생각하면서 썼어요. 그 들이 땅에서 굶어 죽어서 땅에 묻히면 또 굶을까보아 쌀독에 묻으면 배불리 먹고 지내지 않을까.......해서 쌀독에 묻는다는 표현을 썼어요.

이번에 들려줄 시는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에 부모를 잃거나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 꽃 제비에 대한 얘기를 썼는데요,

이가연 의 시" 꽃제비의 마음"

훔쳐 온 강낭 떡 손에 쥐고 서있는 그는
태양을 손에 쥔 것처럼 밝게 웃는다
옥이며 영이 넙죽 넙죽 나누어 주는
작은 행복마저 깡그리 나누어 주는
빛을 품은 노란 해바라기 마음
꽃제비의 햇빛 마음이다.

가연 씨는 꽃제비를 통해 너무 아름답고 귀한 것을 깨닫고 배웠다고 말합니다.

이: 저는 사실 꽃제비들한테 나눔을 배운 것 같아요. 장마당에서 장사를 했어요. 밀가루 빵, 밀을 심었다 이삭이 달리면 누렇게 되는데 그 이삭의 누런 껍질을 그것마저도 북한에서는 너무 아까우니까 안 벗기고 새까만 밀가루 빵을 만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 빵을 만들 줄 모르니까 잘 만드는 사람이 만들어서 저한테 4원에 팔아요 그러면 제가 5원에 팔았거든요 그것을 1.000개 팔아야지만 옥수수 한키로를 살 수 있었어요. 빵 천개를 팔아야만 .....

장마당 통에서 천개를 팔 수 있었는지... 천개를 팔려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는지 상상이 안 되는데요,

이: 그래도 천개는 넘게 팔리더라고요 하하... 하루에, 그 천개를 팔다보면 꽃제비들이 막 주위를 도는데 저는 옷도 잘 못 입고 옷을 기어입고 있으니까 제 것은 안채어 가더라고요. 그런데 제 옆에 좀 잘사는 사람이 쌀떡을 팔았어요. 그런데 그 사람 것만 자꾸 훔치더라고요 그 꽃제비애가, 그런데 그 꽃제비애가 떡을 훔쳐 가지고 뛰는데 그 잘사는 아줌마는 쫓아가지도 않고 욕만 하더라고요. 꽃제비는 그 떡을 가지고 한참이나 뛰어가더라고요 계속 뛰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왜 그냥먹지 배고픈데 어디로 가는거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저는 너무 궁금했어요.

가연 씨는 배가 많이 고파 보이는 꽃제비가 훔친 떡을 먹지 않고 계속 달리는 아이를 뒤따라 가보고는 놀랐다는 겁니다.

이: 따라가 보니까 역전에 꽃제비들이 늘 모여 있는데 그곳에 꽃제비가 한 10 명이 더 넘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들 한데 조금씩 나누어 주는 거예요. 저는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저는 아 나눈다는 것이 행복이구나! 그때 알았어요. 그리고 나누어 주면서 막 밝게 웃는 거예요. 저는 그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비록 훔쳐온 떡이지만 정말 없는 가운데서 조그마한 것을 나누는 행복, 여유를 배웠다고 하네요.ㅡ당시 이런 일들을 모두 기억해 시로 쓸 수 있는 어떤 비결이 있었는지 궁금하군요.

이: 북한에서는 학교 갔다 오면 숙제하고 산에 가서 나무해 팔아서 식량을 사야 했고 또 빵을 팔아서 식량을 사야 했기 때문에 이런 여유를 제가 가질 수가 없었어요. 시인이 된다는 것은 상상 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한국에 입국해서 짦은 글을 많이 썼어요. 인천 공항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이런 글이 떠올랐어요.

"빛이 있어 꽃이 피고 빛이 있어 새가 날고 빛이 있어 내가 웃고 내가 산다 이 글이 갑자기 떠올랐어요. 그 후로부터 저는 국정원에서 일기처럼 짧게 써나갔어요 그런데 저희를 담당했던 국정원 선생님이 국정원에서는 아무것도 가지고 나갈 수 없데요. 그 선생님이 그 일기를 보고 너무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선생님한테 일기장을 드리고 나왔는데 사실 저는 칭찬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서 글을 계속 썼는데...

특히 살아가면서 한국의 고마움 감사함 이런 것들을 말 보다는 글로 표현 했다는군요.

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잘 몰랐어요. 그러다 점점 한국의 감사 고마움을 쓰긴 했는데 제가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까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 한국 분들에게 얘기를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모든 것을 제가 말 보다 글로 하는 것이 익숙해서 글로서 얘기를 하고 싶어서 시집도 준비했습니다.

음악: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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