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남한에서 하는 김장전투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한국은 지금 김장전투가 마감고비 입니다. 경기도를 비롯한 추운 지방은 11월 중순이나 말경이면 다 끝이 나지만 내가 사는 경상남도는 김치 담그는 일은 이제야 끝이 납니다. 따뜻한 남쪽 지역이라 밭에 있는 배추는 아직도 파란 빛을 띠고 무럭무럭 자라줍니다.

한국에서는 배추를 밭에서 살 수도 있고, 큰 대형 상점에서도 살 수가 있는데 싱싱한 배추 그대로 살 수도 있고, 절여서 물을 찌워서 무게로 파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배추 잎도 함께 가져와서 데쳐서 냉동실에 얼려놓으면 겨울내 시래기 된장국을 맛있게 먹을 수 있기에 엔간하면 밭에서 사오려고 합니다. 그런데 같은 탈북민 언니가 농사를 지어서 준다고 하니 그야말로 고맙기가 그지없습니다.

언니는 배추와 고추 등 여러가지 작물을 심는데 화학비료나 살충제를 쓰지 않고 돼지치는 농가에 가서 돼지 두엄을 트럭에 싣고 와서 뿌리고 벌레는 아침저녁으로 밭에 가서 손으로 직접 잡아서 농사를 짓습니다.

언니가 배추농사를 지으면서 태희 것도 함께 심는다고 해서 배추 가격을 쳐서 드리겠다고 하니 막무가내로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난해에도 그렇게 배추를 가져다가 김장김치를 맛있게 해먹었는데 올해도 공짜로 가져오는 것은 너무나도 미안한 일입니다. 그런데 밭에 통이 앉지 않은 시래기 배추가 있다고 해서 오늘 가서 모조리 캐왔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배추를 남겨놓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 가서 모조리 캐오지 않으면 저 배추는 누구도 가져가지 않고 버려질 배추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나라도 올라갔던 김에 농사지은 사람이 흐뭇하게 모두 가져다가 데쳐서 얼려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은 올해도 여기저기 기관과 단체들에서 김치를 해서 나눠주어서 수십킬로의 김치는 공짜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김치를 잘먹으니 늘 김장을 해도 수십포기씩 김치를 담그는 우리 집은 다른 집에 비하면 대가족 김장을 하는 셈입니다. 베란다에 농사지은 사람보다 더 많이 가져다놓은 배추를 보느라니 북한에서의 김장철이 생각이 납니다.

내가 살던 회령은 날씨가 추워서 늘 10월이면 김치를 해넣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여섯식구라 한사람 앞에 100킬로짜리 김칫독으로 한개씩 해서 총 여섯독을 담그고 그리고 무채김치와 북방지역에서만 인기있는 영채김치도 작은 독에 한가득 해넣고 당시에는 흔했던 동태와 무를 썰어서 버무려 넣으면 일년 식량이라고 했지요.

1980년대에는 생활이 어렵지 않아서 고춧가루도 넣고 마늘도 양념으로 넣어서 버무렸는데 90년 이후부터는 고춧가루와 마늘을 넣지 못하고 백김치를 해먹는 집이 늘어났습니다. 나의 경우는 그나마 농촌에서 일을 하고 더욱이 소달구지를 몰면서 강냉이 운반과 김장철에는 무, 배추를 운반하는 일을 했기에 내몫 외에도 배추를 가득 가져올 수가 있었지만 일반 가정들에서는 무 배추가 그리 흔한 야채는 아니었습니다.

우리 집은 돼지고기도 비계가 붙어있는 삼겹살을 사다가 약한 불에 볶다가 묵은지를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 넣고 파와 마늘 등 조미료로 맛을 내면 온 식구가 후후 불어가면서 잘 먹기에 묵은지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가까이 사는 언니들은 늘 묵은지를 우리 집에 보내옵니다. 어쩌면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한국에서는 일상으로 생깁니다.

지난해 김치냉장고를 하나 사서 김치를 해넣었는데 베란다에 가득한 배추를 보니 커다란 김치냉장고 두개가 또 꽉 차서 자리가 모자랄 듯합니다. 집안에 앉아서 먹을 만큼 꺼내먹는 김치냉장고를 바라보니 또 고향생각이 납니다.

아침저녁 식사준비를 하면서 함지박 하나를 들고 추운 날씨에 김치 움에 나가서 김칫독을 열면 상큼하고 찡한 맛이 나는 고향의 그 김치맛이 그리워집니다. 추운 날씨에도 김치의 고유한 맛을 보전할 수 있었던 조상님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김치움은 김칫독 열개가 들어가고 감자와 무 같은 야채들도 보관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저장소였지요. 생활이 어려워지자 김치움에 손바닥만한 자물쇠를 잠궜는데도 한밤중이면 김치를 도둑맞혓다고 아우성이던 생각도 새록새록 듭니다.

지난주에는 탈북민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하나센터라는 곳에서 김치 행사를 하고 몇박스씩 나눠줍니다. 김치는 이제는 한국인들만 먹는 식품이 아니라 전 세계에 수출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사는 지역의 상점들에도 사철 매대에 김치가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집에서 김치를 담기 싫으면 상점에서 사먹으면 됩니다. 하지만 김장철이면 돈도 절약할겸 내 손으로 맛있게 해먹으려고 몇일 씩 품을 팔아가면서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배추를 손질해서 초절임을 하고 모레는 배추김치를 담기 위해 맛있는 양념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북어를 삶고 무도 넣고 사과며 배도 넣고 거기에 제일 중요한 멸치 육젓과 새우젓도 사왔으니 곱게 갈아서 넣어야 하겠네요. 아참, 고추가루는 손녀딸이 매운 것을 먹지 못하기에 덜 매운 고춧가루로 우리 지역에서 나는 것으로 준비했지요.

올해는 늘 해오던 명태식해와 가자미 식해는 건너띄고 싶은데 가까이 사는 언니가 가자미 사러 가자고 또 이야기 합니다. 김장을 다 담고 나면 배에서 갓 들어온 가자미 사러 어판장이 있는 부산의 유명한 자갈치 시장에 가자미 사러 다녀와야겠군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