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새해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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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4년을 맞이하고 보니 또다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는 첫날을 보냈습니다. 북한에서는 신년을 설날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한국은 음력 초하루 날을 설명절로 쇱니다. 또 북한은 새해에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제사상을 올리지만 한국은 음력설에 제사를 지냅니다.

그리고 새해에 하고 싶은 일들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나도 나만의 버킷 리스트 즉, 올 한 해 동안 해보고 싶은 일을 생각해봅니다. 버킷 리스트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남은 인생 동안에 하고 싶은 일을 하나하나 목록에 적어서 해가는 것을 지우는 것을 말하는데 꼭 죽음을 앞두지 않더라도 한해 동안 해야 할일을 목록에 적어보고 해나가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나 역시 그런 목록을 작성해보자고 생각을 해보니 여적 살면서 내가 뜻한대로 된 일도 없지만 딱히 하고 싶은 일도 별로 없었던 듯합니다.

그간 살아오면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들이 앞에 닥쳐서 살아 내기에만 바빴던 날들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살 때에는 배고픈 고생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소원이었고, 간장을 찍어 먹더라도 이밥 한그릇 실컷 먹어보는 것이 꿈이었다면 중국에서 살 때에는 공안의 검거 검문에 걸릴 일이 없이 내 자식을 품에 안고 다리를 쭉 펴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소원이었지요. 내가 과연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는 막연한 꿈이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모두 나에게 주어지니 또 다른 하고 싶은 일, 가지고 싶은 것들이 늘어만 납니다.

건강하고 싶고, 더 풍족해지고 싶고, 더 많은 명예를 쌓고 싶은 것이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인 것 같습니다. 가정이 더 화목해지고 싶고, 온 가족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지만 그 중에서도 올해는 20대 중반을 넘어간 아들이 여자 친구를 만나서 데려오는 것도 바람 중에 하나입니다.

가끔 고향친구들 사진을 받아보면 70대, 80대 노인처럼 변한 얼굴을 보면서 이 사람이 걔 맞어? 하고 놀라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북한이라면 내가 이 나이에 어떤 얼굴일까? 상상을 해보려고 하면 그림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혹독한 북한 생활에 과연 우리가 살아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죠.

북송 되어 고향에 갔을 때 젊은 나이에 굶어서 죽었다든가 출산을 하다가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빨리 갈 수가 있을까 싶었는데 이제는 반백의 나이를 넘기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그리 녹록하게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가까이 사는 지인들에게 새로운 2024년에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어보니 한결같이 대답합니다. “내가 원한다고 뜻대로 되냐”고요. 그래서 나도 올해의 하고 싶은 일을 따로 만들어내지 않고 물 흐르듯이 살아 내기로 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기 위해 올해 신년을 해맞이로 문을 열기로 했지요.

찬바람을 무릅쓰고 아침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에 아침 일찍이 출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산의 한 바닷가를 정하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차를 주차했습니다. 신년에는 특히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인해 주차장이 복잡합니다.

몇년 전에는 일본의 대마도에 여행을 가서 해돋이를 보게 되었는데 한국에 살면서 처음으로 해를 보려 떠났습니다. 특별히 해를 보면서 소망을 비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떠오르는 일출의 장엄함을 보면서 새로운 마음가짐을 다지려는 의미에서였습니다.

올해는 가까이 사는 탈북민 언니가 신년이라고 찾아와주어서 함께 출발을 합니다. 새벽바람이 춥다고 옷을 두툼하게 껴입고 평시에 아끼던 장갑을 찾아서 끼고 등에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핫팩을 붙이고 나갔지요. 보온병에 따뜻한 커피도 준비해서 나가서 해를 기다리는 동안 차안에서 해뜰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행여나 차가 밀릴 걱정으로 일찍 나가서 차안에서 해뜨기를 기다리면서 준비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북한에서 보낸 설명절 이야기에 언니와 나는 지칠 줄을 모릅니다. 쌀가루를 빻느라 정미소에 가서 줄을 서던 이야기며, 떡을 만드느라 절구 공이로 내리 찧고, 떡고물을 만들던 그 어려운 과정들이 한국에서는 떡집에 가면 모두 기계로 만들어냅니다. 기계로 만든 떡들은 북한에서 먹던 고유의 떡 맛을 낼 수가 없어서 한번씩 고향의 맛이 그리워서 직접 가루를 빻아서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야기 끝에 설명절이 끝나면 우리끼리 한번 떡을 해먹어볼까? 하고 이야기하면서 웃기도 했지요.

저 멀리 수평선에 아침 해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누구라 할 것 없이 해를 향해 손을 저어가면서 야호,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우리들만의 희망과 꿈에 부풀어 가슴을 열고 마음껏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 멀리 고향에 까지 우리의 목소리가 높이높이 울려 가기를 바라면서요.

소리를 지르면서 느낀 것이 우리가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는 하루빨리 고향에 가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은 고향의 부모형제를 만나서 두손을 맞잡고 얼굴을 부비면서 어떻게 지냈냐고, 건강은 어떠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서 신년에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