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개인의 성장이 전체의 발전

권은경-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202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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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미국 하원의원인 존 루이스가 췌장암으로 80세의 일기를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30일 루이스 의원의 지역구인 조지아 주의 애틀란타 시에서 추모식이 거행 됐습니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대거 참여한 엄숙한 추모식이 진행됐는데, 전체 장면은 전 세계 여러 언론들이 방송했고 실시간으로 인터넷에도 상영되어 지구촌 사람들이 다 함께 존 루이스의 영면을 기원했습니다.

존 루이스 의원은 미국의 시민권리 운동의 상징 또는 대부라고 불리며 미국 시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입니다. 1981년에 애틀란타 시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1987년부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하원의원으로 일했습니다. 2011년에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유의 훈장’을 루이스 의원에게 수여했습니다. 이 훈장은 미국에서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수여할 수 있는 최고의 명예 훈장이랍니다. 무엇이 미국인 대다수가 존 루이스 전 의원을 이렇게 존경하게 만들었는지 그의 생을 조금 들여다 보겠습니다.

존 루이스는 1940년에 미국 남부지역의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루이스가 10대 시절 미국 남부지역은 인종차별이 심하다 못 해, 흑인과 백인이 함께 어울려 활동하는 것 조차도 금지하던 시기였습니다. 공공장소에서는 따로 떨어져 있어야 하고 흑인과 백인이 같은 공공 화장실마저 쓸 수가 없었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도 차별이 있었습니다. 두어 명이 나란히 앉게 돼 있는 버스나 기차 좌석에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앉을 수 없게 규정해 뒀습니다. 루이스는 이렇게 부당한 상황을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15세 되던 해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의 지도자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아, 루이스도 시민운동에 동참하게 됩니다.

루이스는 이렇게 흑인을 이등 국민으로 취급하며 백인과 분리해서 사회활동을 하도록 만들어 둔 관행에 크게 반발해 1961년에는 대중 선전운동을 하나 진행하는데요. ‘승차의 자유’ (Freedom Rides)운동입니다. 흑인 활동가 6명과 백인 활동가 7명이 다 함께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를 출발해서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즈까지, 1,750킬로미터 거리를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운동을 합니다. 이 활동가들은 버스에서 흑인과 백인이 함께 좌석에 앉아서 이동한 것입니다. 이를 본 백인들이 이들을 몽둥이로 패기도 하고 많은 핍박을 받고 폭력도 당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선전운동으로 흑인과 백인 분리정책과 관행에 항거한다는 의사를 표현했던 것이지요. 1965년에는 역사적인 시민운동을 진행하게 됩니다. ‘셀마-몽고메리 행진’입니다. 600명의 흑인 운동가들을 조직해서 87킬로미터 거리를 고속도로로 걸어서 행진하는 비폭력 시민운동이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흑인도 미국의 시민으로서 헌법이 정한 투표권을 행사하겠다는 당연한 권리 주장을 하는 것이었고, 또 흑인 분리정책에 대한 항거였으며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다양한 권리를 흑인들도 공정하게 누려야 한다는 주장을 행동으로 보여준 겁니다. 연방정부의 군인들이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둘러서 루이스는 두개골에 손상을 입을 정도로 다치게 됩니다. 그때를 회상하며 루이스는 “나는 죽음을 목도했다”고 말합니다. 루이스가 군대의 몽둥이에 쓰러지는 장면은 전국 텔레비젼으로 방송이 나가게 되고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드디어 그해 8월 당시 미국 대통령인 린든 존슨 대통령은 흑인들의 참정권을 인정하는 연방 투표권법에 서명하게 됩니다.

현재 전 세계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된 미국사회을 보면 인구 중 13%에 달하는 흑인계 시민들이 60년 전 과거에는 투표권이 없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또 여러 인종이 같이 어울려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못한다는 것 또한 상상하기 힘듭니다. 이렇게 되는데는 물론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만, 사회가 조금씩 공정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만들어 가는 것은 이렇게 훌륭한 개인들의 힘겨운 노력과 투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성찰과 깨우침이 사회를 바꾸고 진보시킨다는 것을 존 루이스 의원의 시민권 운동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북한 사회도 고난의 행군을 이겨 낸 뒤 점차적으로 개인적인 경제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들이 확인되고 있는데요. 지난 20여 년간 장마당을 중심으로 발견되는 활발한 변화도 북한 주민 개개인의 힘겨운 노력과 투쟁 덕분입니다. 전체를 위해서 무조건 따르는 방식이 아니라 개인적 활동 영역에서 활기를 찾아가는 것이 사회 전체의 진보와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북한당국자들이 인식하기를 바랍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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