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인민반조직 운영법’의 명암

권은경-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2024.10.04
[권은경] ‘인민반조직 운영법’의 명암 강원도 원산시 외곽에서 추수하는 북한 여성들.
/AP

권은경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권은경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걷이철이 돌아왔습니다. 노동신문은짧은 기간 안에 가을걷이를 끝내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말에 따라, 농촌 지원 사업을 벌이는 북한 주민들의 열의를 칭찬하는 기사들을 연일 내보내고 있습니다.

 

농촌 지원 전투는 십대 학생들은 물론이고, 인민반 가두 여성(주부)들에게도 힘겨운 연례행사입니다.

 

노동신문은 동원된 북한 주민들은 ‘날도 채 밝지 않은 이른 아침이면 농장 포전()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늦은 저녁에도 선뜻 일터를 떠나지 않는다주민들이 스스로 내린 양심에 따라 자원한다고 설명합니다. 현실에서는자원이 아니라, 돈 있는 세대는 인민반장에게 돈을 주고 빠지고, 힘과 인맥, 돈이 없는 세대의 아이들이나 가두 여성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농촌 지원 사업에 동원되지요.

 

인민반을 통한 노력 동원과 세외부담은 심각한 인권유린으로 국제사회가 북한을 주시하는 인권 문제입니다. 또한 북한 내부적으로는 뇌물과 부정부패, 체제에 대한 불만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북한의 전반적 관리 체계를 조직하기 위한 목적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북한 당국은 지난해 말 최고인민회의에서 처음으로인민반조직운영법을 채택했습니다. ‘인민반장들의 역할을 높여 인민반을 강화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을인민반조직운영법의 사명이라고 정했는데요. 이 법이 규정한 내용들로 인해 북한 주민들의 인민반 생활에서 침해될 수 있는 인권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에 사는 많은 탈북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인민반장의 역할에는 긍정성도 있지만 부정성도 그에 못지않게 많습니다. 일반 국가들에서는 국민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보장하는 내용들인데 북한에서는 너무 쉽게 침해되는 관행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 법의 조항들에 역시나 국제적인 인권 기준에 비춰볼 때 긍정적, 부정적 성격들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우선 긍정적 법 조항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인민반조직운영법 30조와 31조에서 인민반장들을 필수 공급 대상으로 정해서 식량을 전량 공급하고 중앙재정 지도기관이 국가 기준에 맞게 생활비도 제공하도록 정했는데요. 이 제도는 인민반 일반 세대들이 책임져야 할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어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잘 사는 자본주의 나라들이 채택하는 사회 복지정책의 역할을 북한은 인민반장의 역할로 대체하고 이를 법에 명시하고 있는 점도 긍정적입니다. 10주민생활료해대책’ 조항은 인민반장이 인민반 구성 세대들의 건강, 생활 형편 등을 잘 파악하고 필요한 대책을 제때 세우라고 정했습니다. 14조는 인민반장이 년로보장자(은퇴자), 사회보장자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두고 제기되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구체화했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국가 재정이 필요한 곳에 배분될 수 있게 오랜 인민반 관행을 활용한 적절한 제도로 보입니다.

 

24조의세외부담 행위 금지조항도 주민 생활과 인권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내용인데요. 인민반장이 각종 명목으로 반원들에게 돈과 물자를 거둬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이 내용은세외부담방지법에도 있는 내용인데, 과거에는 의무적으로 바쳐야 했지만 이제는 소속된 조직에 물자나 돈을 내는 것이 불법이란 사실을 인지해야겠습니다. 또 이런 조항들을 어겼을 경우는 38무보수로동, 로동교양처벌조항에 따라 책임 있는 사람 즉 인민반장을 ‘3개월 이하의 무보수로동, 로동교양처벌을 준다고 정했습니다.

 

앞으로는 사회적 과제, 세외부담 과제를 제출하는 것이 불법행위임을 그리고 권력과 돈과 인맥이 좋더라도 돈이나 물자를 내고 인민반 사업에서 빠지는 것도 불법 행위로 처벌 대상이란 사실을 명확히 한 겁니다.

 

다만 농촌 지원사업의 경우는 북한 농업 부문의 전체적 농업기계화가 완비될 때까지 당분간 가두 여성들의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농촌 지원 전투는 없애는 것이 아동들의 건강과 교육 그리고 아동 인권 규정에도 부합됩니다.

 

다음으로 ‘인민반조직운영법이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 인권에 부정적 영향을 줄 내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9조의사회안전보장사업조항은 인민반장이 인민반 안에 군중신고체계와 자위경비체계, 숙박등록질서를 정연하게 세워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즉 주민들의 사생활을 일상적으로 감시해서 범죄를 저지를 듯 의심되는 사람이나 현상을 법 기관에 신고하라는 겁니다.

 

이 내용은 국제적인 기준과 상식을 상당히 벗어나는 인권 유린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북한도 비준해서 당사국인 유엔의 자유권 규약은 형사 범죄로 기소된 사람이 법률과 재판으로 유죄 판결 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고 정하는데 이 같은 법 상식을 따르지 않는 내용입니다. 또 단지 의심된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신고해서 체포나 구금의 위험에 빠트리는 것은자의적 체포나 구금금지 원칙에 어긋납니다. 그리고 인민반장이 한밤에 숙박 검열로 남의 집을 무단 침입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도 자유권 규약의 사생활 권리를 침해하는 인권 유린입니다.

 

북한 당국은 2019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검토받은 유엔보편적 정례 인권 검토에서 국내법을 국제적 인권 기준에 맞게 개정한다는 제안을 실행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부터 효력을 발휘한 인민반조직운영법은 일부 조항에서, 국제적 인권 규약의 사생활의 권리 침해, 무죄 추정의 원칙 위반, 자의적 체포 및 구금의 금지 위반, 이동의 자유 침해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국제인권기준에 한참 미진합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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