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선대지도자들이 남긴 유물
2023.03.31
중국 남서쪽에 위치한 말레이 반도 끝자락에 아주 작은 도시국가가 하나 있습니다. 싱가포르라는 나라인데요. 3월 23일은 싱가포르를 건설한 리콴유 총리의 사망 8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최근 세계인의 구설에 오르는 리콴유 총리에 관한 사건에 대해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리콴유 총리가 아동기 시절부터 생활하던 집이 있는데요. 이걸 허물 것인가 보존할 것인가를 두고 집안 다툼이 있다는 기사가 보도됐습니다. 리콴유 총리는 2015년 91세가 되던 해에 사망했습니다. 리콴유는 이미 사망 전부터 자신이 죽으면 살던 집을 철거하라고 내각에 당부했습니다. 왜냐하면, 생전에 훌륭한 업적을 세워서 국가적 존경을 받던 위인들의 생가나 살던 집을 보존하면서 개인 우상화로 활용되며 사회적 악영향을 준 사례들을 많이 목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요. 자신이 살던 집을 허물어 버리라는 요청은 리콴유가 유언으로 남길 정도로 강조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리콴유의 장남 리센룽 현 싱가포르 총리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역사적 의미를 살려 그 집을 보존하려 합니다. 반대로 둘째 아들이자 사업가인 리센양은 리콴유의 유언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싱가포르 건국자의 집을 보존할 것인가, 철거할 것인가에 대해 형제간 갈등이 발생했는데 이제는 국가적 관심거리가 됐습니다. 왜냐하면 싱가포르 정부가 둘째 아들 리센양이 리콴유의 유언에 대해 거짓 증언을 했다고 고소했고, 리센양과 그의 아들인 센규 리 하바드대학교 박사가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1819년부터 제국주의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다가 1959년에 영국이 물러나면서, 영국 군대기지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싱가포르 섬을 1965년에 독립시켜 건국한 사람이 리콴유입니다. 회고록에서 리콴유는 당시 상황에 대해 ‘몸통이 없는 심장만을 물려받았다’고 묘사할 정도로 싱가포르는 아무것도 없던 상태였습니다. 리콴유는 30년간 총리로 역임했고, 2022년에 인구 5백 60만 명을 조금 넘는 규모의 나라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은 세계 7위로 약 8만 달러에 달하는 부자 나라의 기초를 놓은 선대 지도자입니다.
싱가포르를 세계 최고로 잘 사는 나라의 반열에 올려놓은 훌륭한 정치인이자 건국자인 리콴유 총리가 살던 집을 유언에 따라 철거하느냐 아니면 역사적 유물로 보존하느냐, 청취자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리콴유의 사망 8주기였던 3월 23일 노동신문의 2면에는 싱가포르의 이야기와는 대조적인 기사가 하나 실렸습니다. “자기 고장에 깃든 수령의 령도업적을 깊이 새겨안자”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신포 원양수산 연합기업소 신포 수산사업소에 김일성 주석이 1946년, 1953년 그리고 1967년에 현지지도 했다고 설명하며 이어서 김정은 총비서도 2015년에 현지지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고기잡이배와 ‘현지지도 사적비’를 전시한 사진도 함께 기사에 내보냈습니다.
기사가 자랑했듯이, 북한은 ‘어디에 가보아도’ 선대 지도자들의 현지지도 사적비가 없는 곳이 없는 땅이지요. 심지어 백화점의 계단승강기 옆에도 현지지도 사적비가 있을 정도입니다. 지도자들이 둘러 본 모든 곳을 기념하고 숭배하니 전국이 우상화물로 뒤덮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혁명시기에는 존재하지도 않던 구호나무를 조작해서 보존하고요. 거기서 모자라, 화재가 났는데도 대피하지 않고 구호나무를 안고 죽은 청춘들을 칭송하는 비이성적인 모습까지 보입니다.
북한도 싱가포르처럼 아무 것도 없는 전쟁의 폐허에서 건국한 나라입니다. 건국의 지도자가 장기간 집권해서 나라의 틀을 만들었고 그 자녀가 세습해서 정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만 보자면 두 나라의 공통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건국의 지도자들이 각자 나라와 인민들을 위해 무엇을 성취했는가를 보면 극과 극으로 갈립니다. 한 나라는 세계로 향한 모든 문을 활짝 열어서 전 세계의 투자를 받아 나라를 일떠세웠습니다. 다른 한 나라는 그 반대방향으로 모든 문을 꽁꽁 걸어 잠그며 자력갱생의 구호 아래 핵무기만 개발했지요.
그 결과는 이렇습니다. 2020년 싱가포르가 해외에서 투자 받은 규모는 1조 6,250억 달러가 넘고요. 2022년 일인당 국내총생산이 약 8만 달러입니다. 북한은 대략 2015-2016년경에 일인당 국내총생산이 1,300-1,700달러 정도였습니다. 즉 지도자들이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싱가포르 사람들이 북한 주민들보다 평균적으로 50배 이상 더 잘 사게 된 결과가 나타난 것이지요.
한 나라의 지도자가 무엇에 관심을 두는가에 따라 이 같은 천양지차의 결과가 빚어집니다. 리콴유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집을 국가적 성역으로 만들어 우상화하는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말라고, ‘내가 살던 집을 철거하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즉 지도자 개인의 우상화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발전에 집중하기를 희망했던 것이지요. 북한의 선대 지도자들은 무엇을 남겼습니까?
그들의 생가와 거대한 동상들과, 온 땅을 뒤덮은 혁명역사 기념비들 그리고 ‘가난’만을 북한 인민들에게 남겨준 것은 아닌가 씁쓸합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은경,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