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농촌지원 전투 기간이라는 사실은 북한의 노동신문이 잘 보여줍니다.
농업 전선을 지키는 당원들의 정신 무장으로 농사에서 풍년을 가져오자는 ‘정론’부터 지역별 농사 상황을 선전하는 기사에, 농업 과학을 실현하자는 주장 글까지 농사에 대한 걱정이 노동신문에 가득합니다.
한두 해 짓는 농사도 아닌데 농사 때만 되면 군사용어까지 써가며 ‘알곡고지를 점령하라’느니, ‘풍요한 황금 가을을 안아오기 위한 투쟁에서 용감한 선봉 투사’가 되라는 둥 격정적으로 선동하고 있습니다. 농사일에 전 국민을 동원하기 위한 결의에 찬 기사 내용들 속 한 켠에서는 북한 당국자들의 안타까움 서린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어떻게 해도 농사 문제를 결정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갖은 수단을 동원하기 위한 안간힘을 쏟고 있는 현실이 기사 행간에 잘 읽힙니다.
또 노동신문을 통해 북한의 농업 문제에 매듭이 풀리지 않는 찜찜한 구석이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당국은 엉뚱한 곳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애쓰는 모양새입니다.
예를 들어, 26일 자 2면에 게재된 ‘사회주의 농촌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하여’라는 기사에도 사실상 ‘근본적 해결책’은 찾을 수 없었는데요. 제목만 보고 반가운 마음에 기사를 살펴봤지만, 여전히 열성을 더 내라고만 강조합니다. 농근맹(조선농업근로자동맹)이 농촌 발전을 위한 투쟁의 선봉 부대가 되자고 역설하는 내용인데, 농근맹은 이미 지난 77년간 농촌의 투쟁 전선에서 선봉 부대 역할을 해왔지 않나요? 그도 아니면 70년 이상 같은 주장을 했는데도 아직 농근맹이 농촌을 장악하지 못했나 봅니다.
그나마 농업 부문의 핵심적 문제에 접근하는 듯 보이는 기사로 ‘농업 발전에 과학기술력량을 집중하자’는 기사를 발견했는데요. 이 또한 농업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현대적 농업을 하라는 주장과 농작물과 기후 환경을 과학적으로 연구 심화해야 한다는 당부로만 가득했습니다. 농사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적이고 실질적인 정책과 방안은 쏙 빼고, 북한 당국의 목표와 방향만 주장하니 70년이 넘도록 식량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인민들만 고생시키고 있구나 싶습니다.
반면에 내부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하는 한국의 북한 전문 언론 보도에는 북한의 농업 현실이 잘 나타납니다. 4월 중하순부터 도시 노동자들 대상으로 농촌지원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돼 도시에 위치한 공장의 3분의 1 정도의 노동자들이 농사일에 투입됐다는 보도가 있었고요. 전국 고급중학교가 한 달 동안 수업을 중단하고 농촌지원 전투에 학생들을 투입한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이 같은 현실은 농업이 “밥을 먹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 벗고 나서 도와주어야 할 전인민적 사업”이라고 주장한 김정은 총비서의 말에도 잘 나타납니다. 기계화, 과학화된 농사가 아니라 인해전술을 최고 지도자가 독려한 것인데요. 그러면서도 과학자들에게는 애국적 열의와 사상적 각오만 있으면 올해 알곡 생산 목표를 점령할 수 있다고 책임 전가합니다. 북한의 똑똑한 과학자들이 농기계를 못 만들지는 않을 것이지만 대량생산과 상용화가 불가능하고, 있는 기계들도 기름 부족으로 상시적 활용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듯 보입니다. 그러니 어린 학생들의 손까지 빌려 쓰는 형편이겠지요.
상황이 이러하니 호주의 국제적 인 권단체인 ‘워크프리’라는 단체는 ‘북한 주민 10명 중 1명꼴로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보냈습니다. 이 단체는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강제노동 수준을 조사한 보고서에서 2021년 기준, 북한 인구 1천 명당 104.6명이 강제 노동에 시달린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학생들을 농사나 여러 노동에 동원하는 것은 북한도 가입해 당사국이 된 ‘아동권리협약’의 아동강제노동 금지에 대한 조항을 위반한 심각한 인권 유린입니다. 여기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엄중한 문제는 학생들이 공부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현실입니다. 게다가 교육받아도 행복하게 잘 살게 될 것이란 보장 없이 여전히 인건비도 못 버는 노동에 동원될 미래가 뻔히 보이자, 교육받을 권리를 학생들 스스로가 내려 놓게 되는 것, 이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당국이 청년들 대상 혁명사상을 더 강조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청년들이 결기 있게 배우고 일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데 사상 교육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북한의 선전선동부가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청년들이 혁신적 미래를 전망하고 노력한 만큼 보상 받는 체계가 꾸려져야 모든 게 원활하게 돌아갈 텐데요. 이런 체계를 꾸리기 위한 첫 단추로 학생 농촌지원전투 관행부터 조금씩 고쳐나가면 어떨까요. 매년 동원할 수 있는 학년을 한 학년씩 올려서 3년 안에 학생 동원을 모두 철폐하고, 그 3년에 걸쳐 농업 기계화에 매진하는 방안이 있을 겁니다. 아동 권리 보장 차원에서 본다면 인도주의 지원 일을 하는 유엔의 여러 기구들은 북한의 이런 정책을 환영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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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