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중국 천안문 민주화운동 29주년을 기념하며

권은경-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201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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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29년 전 6월 4일은 중국의 천안문광장 민주화 운동이 중국 공산당 정부의 탱크를 동원한 유혈진압으로 끝이 난 날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지만 이 사태로 희생된 민간인은 적게는 218명에서 많게는 만 명에 달한다고 알려졌습니다.

천안문 민주화운동 29주년이 되던 날, 중국당국의 철저한 통제로 인해 베이징에서는 아무일 없었던 듯 지나갔지만 홍콩에서는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가한 대규모 추모집회가 있었습니다. 희생자들의 유족으로 구성된 ‘천안문 어머니회’는 중국의 시진핑 즉 습근평 국가주석에게 공개편지를 보내서 6월 4일 천안문 사태를 재평가하고 진상을 규명해서 배상할 것은 배상하고 민간인 희생에 책임이 있는 당국자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당국의 유혈진압으로 민간인이 희생된지 29년이나 지나서 이미 역사가 됐지만 중국에서는 관련된 토론 자체가 금지 됐고 인터넷에서는 6월 4일을 의미하는 ‘64’라는 숫자조차 검색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29년 전 6월 4일, 피로써 끝이 날 수 밖에 없었던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 민주화 투쟁은 무엇일까요. 같은 해 4월 17일에 중국 공산당 총서기였던 후야오방이 사망합니다. 학생들은 후야오방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후 전 총서기는 1987년 1월에 베이징에서 수천 명의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과 충돌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총서기직에서 사퇴했습니다. 이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그 날부터 학생들은 후야오방 전 총서기를 추모하며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후야오방은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끈 덩샤오핑 즉 등소평의 인도로 정계에 입문한 정치인으로 총서기가 된 이후에도 덩샤오핑의 ‘4대 현대화’를 강화하는 정책을 펴서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한 인물입니다.

후 전 총서기가 사망한 후 베이징대학교 학생들이 시위를 조직했고 시위는 점차 다른 대학교로 번져가서 더 많은 학생들이 천안문 광장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후야오방의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견해를 공정하게 인정할 것과 국가 관료들의 수입을 투명하게 할 것, 민간 신문을 허락하고 국가 검열을 중단할 것, 교육 분야에 재정을 늘리고 지식인들을 지원할 것, 베이징에서 벌어지는 집회에 대한 억압을 중단할 것 등을 포함한 7개 제안사항을 당국에게 요청했습니다. 4월 22일 후야오방의 장례식을 전후로 10만 명의 학생들이 천안문 광장에 집결했습니다. 5월 중순부터는 학생과 노동자들 3천 명이 천안문광장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시위가 장기화 되자 중국 당국은 5월 20일 베이징 시 천안문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30만 명의 군병력을 동원해 시위를 제압했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시위가 발발했던 것은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에 있었던 사회적 불안 요소가 큰 원인이었습니다. 개혁개방 초기에 사회적 부가 늘어나자 일당독재 제도의 수혜자인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심각해지고 빈부격차도 어마어마하게 커졌습니다. 그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이완현상을 통제하기 위해 형사처벌 및 재판 과정이 심하게 폭압적으로 진행되면서 일반지식인들 사이에 공산당에 대한 불만이 커져 갔습니다. 6월 4일 천안문광장에서 울려 퍼졌던 학생들과 지식인들의 민주화와 부정부패 척결 요구는 계엄령 하에 동원된 탱크 밑에 무자비하게 짓밟혔습니다.

인민대중의 피를 불렀던 현대 역사를 거친 지금 중국은 여전히 국제적 인권단체들의 우려의 대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권의 현실은 개혁개방 정책 실행 이후 지난 40년간 꾸준히 발전해 온 것도 인정해야 할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서 예전에는 중국 일반 교도소의 죄수들에게는 변호사 접견이 허용되지 않았는데 2012년경에는 변호사 접견이 가능하게 됐다는 사례도 있습니다. 또한 불법구금 사건에 대한 경각심이 상당히 높아졌고 중국의 관료들도 인권과 법치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개선의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향후 북한도 경제적인 개혁과 개방을 통해 국가정상화의 길을 도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요. 부디 중국과 같은 억압의 역사나 북한당국이 저지른 반인도범죄와 같은 비극의 역사가 재현되지 않고 주민들의 안녕과 인권실현의 새 역사가 써지기를 기대합니다. 인권수준에서 정상화가 되는 것은 그 어떠한 영역의 발전보다 더 높은 국제적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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