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하노이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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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이후 지금까지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매년 평균 7% 이상인 나라,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인구 1인당 국내총생산 370% 이상 성장한 나라, 1980년대 초반 식량 부족 국가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는 세계 3위의 쌀 수출국이 된 나라, 인구 중 절대빈곤율이 1990년대 70%에서 2010년대 6%로 극단적으로 줄어든 나라, 2021년 일 인당 국민총소득 1만 천 달러를 넘어선 나라, 이 나라는 어디일까요?

바로 베트남 즉 윁남입니다. 청취자분들은 베트남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노동신문은 미국과 베트남 사이의 전쟁인 ‘베트남 침략전쟁’에 대해 언급한 적 있고요. 전염병 관련 기사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제한적인 내용으로는 한 나라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노동신문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 베트남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왜냐면, 지금 저는 업무 때문에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출장 나와 있기 때문인데요.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도로 대부분은 50대 50 비율로 덩치 큰 자가용과 오토바이가 장악해 있습니다. 그래서 왕복 2차선 또는 4차선 도로들은 교통체증이 일상적입니다. 제가 처음 베트남을 방문했던 2010년대 중반에는 자동차보다 오토바이가 많았고, 그래서 ‘베트남’ 하면 오토바이로 가득한 도로의 영상을 떠올렸는데, 지금은 도로 절반이 자동차입니다. 그리고 전기 오토바이도 많이 보입니다. 베트남 교통경찰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새로 등록된 전기 오토바이 수는 약 2백만 대로 전년에 비해 30퍼센트 이상 증가했답니다.

외국인 방문객인 제 눈에 보인 베트남의 괄목할 만한 변화를 말씀드렸는데요. 베트남 대학교와 연구소 등지의 정치·경제학자들은 베트남의 발전은 ‘도이 모이’라는 개혁 정책 덕분이라고 설명합니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철수한 뒤, 사회주의 베트남은 폐허에서 모든 걸 새로 시작했는데요. 1970년대 후반 베트남은 쌀을 비롯한 농산물이 부족해 수백만의 주민들이 굶주렸고요. 국가 예산도 모자랐으며 인플레이션, 물가 상승률은 1978년 10%에서 1980년에 25% 이상 뛸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수출 매출액이 수입액의 30%밖에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적자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니 사회 전반에 상품과 물자가 부족하고 생산과 유통도 마비될 정도로 험난한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어렵던 시절, 베트남 지도부는 중국의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이 가져다준 성과를 목격했습니다. 연간 9% 대의 중국 경제성장과 중국 주민의 활기를 확인하면서 베트남도 큰 결심을 합니다. 1986년 12월, 제6차 당대회에서 특단의 대책 ‘도이모이’ 정책을 선보입니다. 가난과 쪼들림에서 국민을 해방시키고 안정과 발전의 길로 달리게 하는 것이 도이모이의 목표라고 정했습니다.

경제 정책은 중앙 계획경제에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시장경제’로 전환했고 공산당 지도부는 사회생활에서 민주화의 가치를 녹여내기 위해 국민 생활 개선에 도움이 되는 법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외교관계에서는 전 세계 국가들과 교류 협력을 추진하며 나라의 문을 열기로 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다자간 세계 경제 기구에 가입하는데요.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세계무역기구 등에 회원국이 됐습니다. 1995년 해외 기업이 베트남에 직접 투자한 사업이 410개 남짓, 약 80억 달러의 자본을 확보한 수준이었는데요. 2020년에는 2천6백 개 이상의 해외자본 투자 사업으로 3백10억 달러 이상의 자본금으로 확대됐습니다. 인적교류도 왕성해졌고요. 베트남 관광청은 2023년 올해 베트남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가 1천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도이모이 쇄신 정책 이전의 베트남은 농업 중심 국가였는데요. 지금은 국가 총생산 규모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5.7%에 그치고 공업, 건설 및 산업 분야가 55.6%, 나머지 약 28%는 편의·봉사 사업이 차지하는 경제구조로 전환됐습니다. 2021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에서 세계 39위, 총수출 규모에서 세계 19위의 강한 경제 중진국이 됐습니다.

반면, 북한 당국은 항상 한국과 미국의 영향력을 체제 위협이라고 강조하며 국경을 철저히 봉쇄하고 자력갱생만을 외치며 주민들을 가난에 내몰고 있습니다. 1986년 이전의 베트남에도 강력한 외세의 위협이 존재했습니다. 20년의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미군은 철수했지만, 공산당이 지배하게 된 베트남에 미국은 1994년까지 무역금지조치를 내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국가 경제의 절반 이상을 동유럽 국가들의 지원에 의지하던 베트남에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 붕괴는 안보와 국가체제의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베트남 국민들은 당당한 세계시민으로 베트남을 자랑하며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생활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진취적이고 혁신과 진보를 추구하고 발전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국민성을 볼 때 한반도 사람들과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유사하다고 말합니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전후 위기는 물론 90년대 대량 아사의 고난의 행군도 극복하고 스스로 살길을 찾아 헤쳐 나온 강인함이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을 세계시장에 뛰어들게만 한다면, 베트남의 도이모이가 지난 30간 이룬 성과를 북한 주민들은 10여 년 안에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칼럼내용은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