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북한 학교의 땔감을 기업소에서 보장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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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30일, 서울에서 북한 학생들이 처한 교육 환경을 짚어보는 공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교육은 개인은 물론 그 나라의 미래와 직접 연관된 문제이므로 북한 당국도 ‘교육혁명 방침관철’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연구하는 단체들이 토론한 내용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이날 중점적으로 논의한 안건은 북한 학생들의 교육 받을 기회가 학생들의 조건에 따라 차등 적용되는 현실에 관해서였습니다. 물론 세계 어느 나라나 주민들의 능력과 경제 격차와 자라난 지역에 따라서 차등적으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국가에서는 지역에 상관없이 교육의 질이 대체로 평준화되어 있고요. 고급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개인 취향과 능력에 따라 진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형편이 안 좋은 학생을 위한 장학금 제도가 갖춰져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농촌지역 학생들이나 장애가 있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제도가 마련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겠다는 열의만 있으면 가정 형편에 크게 상관없이 진학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농촌에서도 능력만 있고 본인이 원한다면 대도시에서 직업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능력만 갖춘다면 농민이나 가난한 지역의 노동자 자녀들도 정치계, 법조계, 의료계로 진출하는데 장벽은 없습니다. 교육 제도가 학생들 앞에 놓인 장벽을 없애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교육’을 ‘기회의 사다리’라고도 부릅니다. ‘기회의 사다리’를 타고 부모님 세대와는 다른 환경으로 옮겨가거나 꿈꾸던 직장으로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의미로 그렇게 부릅니다.

북한의 교육 현장을 들여다보면 북한 당국이 강조하는 것과는 다르게 교육이 ‘기회의 사다리’로 역할을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사회 진출 또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부모의 성분을 따라서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니까요. 특히 지방 농촌에서 태어나 자란 청년이 평양에서, 희망하는 직업에 종사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또한 북한 당국이 국제적으로 자랑하는 12년제 무상 의무교육 학제가 실현되고 있습니다만 ‘학교꾸리기’나 ‘꼬마과제’ 등을 위해 한 달에 서너 번은 돈이나 현물을 제출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반 중학교 학생 중 하위 10~15%에 해당하는 북한 학생들이 과제의 부담 때문에 학교 가지 않았다는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결국 돈이 없으면 학교를 포기할 수밖에 없으니 현실적으로는 ‘유상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자신이 태어나면서 처한 상황에서 더 나아질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상황이라면 청소년들은 노력하길 거부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무기력에 빠지는 건 당연하겠지요. 이미 북한의 청년 세대는 이런 경향들이 많이 보이는 듯합니다. 2021년에 채택한 ‘청년교양보장법’은 41조에 ‘청년들이 하지 말아야 할 사항’을 적시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군사복무 동원을 기피하는 행위, 군사복무를 거부하기 위해 도주하는 행위, 무직건달 부리는 행위, 조직생활에서 이탈해 떠돌아다니는 행위를 단속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미 청년들 속에 이런 행위들이 만연하기 때문에 법까지 제정한 것이지요.

하지만 교육에서 나타나는 차별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인 방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시군발전법’에는 지방 학교의 교육 자재를 후원하도록 지역의 공장, 기관, 기업소를 배치하라는 법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최소한 겨울철 화목과 학교 꾸리기를 위한 석회 제공만이라도 지역 기관 기업소가 책임진다면,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 겁니다. 지역의 기관 기업소도 재정 상태가 좋지 않으니, 학교에 후원하는 자재 항목을 꼭 필요한 화목과 석회로 한정해서 책임을 지우면 실행력이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또 북한 당국도 지방의 교사 역량 강화에 많이 고민하는 듯 보이는데요. 그런 차원에서 유엔에서 교육과 문화 분야를 담당하는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북한도 코로나 대유행병 이전 시기에는 유엔에서 파견한 평양 상주 기구들이 있었는데요. 유니세프도 상주한 바 있었고 이 기구는 교원들의 교육도 담당합니다. 즉 농촌 교사들에게 영어교육을 해주고 세계 수준의 영어와 과학 교재를 지원받을 수도 있지요.

그 외에도 우리 청년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차별 없이 실시할 수 있을 여건을 만드는 방법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문제는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와 대화하길 거부하는 것이고요. 지금 당장 국가 전체의 경제적 역량이 낙후한 것도 문제입니다. 더 중요하게는 청년들이 도시와 농촌의 구분, 부모님의 직업 종류에 상관없이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환경이 차려지는 것이 근본적 해결 방법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북한 청년들이 학교는 물론 북한 당국에 대한 신뢰도 갖지 못할 겁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