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1차대전 종년 100주년과 베르사유조약의 교훈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18.11.21

지난 11 11일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1918 11 11일 파리 근교의 콩피에뉴 숲에 있는 열차의 객차 안에서 페르디낭 포슈 연합군 총사령관이 독일의 무조건 항복을 받았고, 그리하여 약 1천만 명의 전사자를 기록한 제1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렸던 것입니다. 1차 대전의 포성이 멈추었던 시간에 맞춘 오전 11시에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파리의 개선문에서 열린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을 위시한 70 여 명의 세계 지도자들이 참석하여 개선문 아래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에서 ‘꺼지지 않는 불’을 점화했습니다. 기념행사의 압권은 하루 전인 10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독일이 1차 세계대전 종전에 서명했던 콩피에뉴에서 손을 맞잡은 것입니다. 1세기 전 적국이었던 두 나라의 정상들은 손을 맞잡고 전사자들을 추모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메르켈 독일총리는 "세계가 더 평화로울 수 있다면 독일은 어떤 일이라도 할 것임을 확실하게 밝힌다"고 말했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 유럽은 독일과 프랑스가 평화를 원하기 때문에 지난 73년 동안 평화를 유지했다“는 유의미한 말을 남겼습니다.

콩피에뉴에서 기념식이 열리는 동안 프랑스와 독일의 두 정상은 많은 생각에 잠겼을 것입니다. 이곳은 독일에게는 1차대전의 패배를 상기시키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프랑스에게도 2차대전 초기 독일에게 항복했던 뼈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장소입니다. 1차 대전이 끝나면서 교전국들이 베르사유조약을 체결하고 평화를 다짐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세계를 한번 더 잿더미로 만든 2차대전이 터진 역사를 회상했을 것입니다.

베르사유 조약은 1차 대전을 마감하는 평화협정으로서 1920 1 10일 공표되었습니다. 하지만, 베르사유 조약은 그 어떤 평화조약도 흑심을 품은 일방이 존재하거나 상호간 상충적인 목표를 가진 국가들이 존재할 때에는 반드시 깨진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습니다. 베르사유 조약은 패전국인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터키 등에게 1차 대전 발발에 대한 책임을 묻고 엄청난 배상과 가혹한 조치들을 강요했습니다. 독일은 영토의 상당부분과 모든 해외 식민지를 상실했으며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 체제도 사라졌습니다. 독일은 전쟁 배상금 1,320억 마르크를 10년 안에 지불하고, 공군과 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으며, 육·해군 병력을 10만명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습니다. 징병제는 금지되었으며, 해군의 총톤수도 10만 톤 미만으로 제한되었습니다. 히틀러의 나치당은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 국민들의 수치심을 자극하여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독일의 재무장, 영토 회복, 치욕적인 패배에 대한 설욕, 강대국 명성 회복 등을 내세우는 히틀러의 선전선동이 독일 유권자들을 나치 이데올로기의 신봉자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히틀러는 재무장에 박차를 가했고, 1935 3월에는 베르사유 조약 파기를 선언했습니다. 1936년에 라인란트에 진주하고, 1938년 오스트리아를 점령했습니다. 1938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 지방을 돌려주면 더 이상 영토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뮌헨조약에 서명했지만, 1년 후인 1939년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하고 폴란드를 침공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요즘 한반도에서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 대한 언급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2018 4 27일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판문점선언을 통해 금년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추진하자고 합의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북한은 줄기차게 종전선언을 요구하고 있으며, 당연히 이는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베르사유 조약을 위시한 수많은 평화협정들이 증명하듯, 악의를 품은 일방이 있거나 상충적인 목표를 가진 나라들 사이에는 평화협정이 있어도 평화를 유지하는 수단이 되지 않습니다.

북한도 그렇습니다. 북한이 도발도 전쟁도 할 이유가 없는 나라가 된다면 그것으로 평화가 오는 것이며, 평화협정은 없어도 그만이고 있어도 무방합니다. 때문에 지금은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을 재촉하기보다는 핵을 포기하고 질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북한당국은 핵포기와 질적 변화를 진전시키지 않으면서 종전선언을 재촉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세계인의 눈에 어떻게 비쳐질 것인지를 반추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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