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별세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2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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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8일 콜린 파월 (Colin Luther Powell) 전 미국 국무장관이 향년 84세로 별세했습니다. 군인 출신 정치인으로서 합리적이고 온건한 대외기조를 견지하면서 한 시대 동안 세계 정세를 좌우했던 또 한 명의 거물 지도자가 유명을 달리한 것입니다. 파월은 다발성 골수종과 파킨슨병으로 투병해왔는데 코로나 합병증까지 겹치면서 끝내 병마를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이에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이날 주한 미국대사관을 비롯한 전세계 미국 공관들도 조기를 게양했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그의 별세를 아쉬워 하는 데에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우선, 파월은 군인으로서 그리고 정치지도자로서 수많은 공직들을 수행하면서 미국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헌신해온 사람이었습니다. 파월은 뉴욕시립대학교 학군단 출신으로 육군 소위에서 대장에 이르기까지 군인으로서 다양한 보직을 수행했습니다. 명문사립대를 다니지도 않았고 육사를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중위 시절 동안 서독 주둔 미 제3기갑 사단에서 근무했고, 대위 시절에는 베트남에 두 차례 파견되었으며, 19731974년에는 경기도 동두천에서 주한미군 대대장으로 근무했습니다. 1979년 준장으로 진급한 후에는 캐스퍼 와인버그 국방장관의 보좌관으로 근무했고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는 육군 중장으로서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봉사했습니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는 대장으로 진급하여 합참의장으로 활약했고, 1991년 제1차 걸프전쟁을 진두지휘하여 속전속결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패퇴시킴으로써 일약 영웅이 되었습니다. 1993년 제대 후에도 파월의 행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들 부시 대통령은 파월을 제65대 국무장관으로 기용했고, 파월은 2003년 제2차 걸프전쟁과 전쟁 후 이라크 재건을 관리하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파월을 기억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군인으로서 그가 보여준 단호함 그리고 외교관으로서 보여준 온건하고 합리적인 정책기조였습니다. 1991년 제1차 걸프전쟁 시 파월은 현역 합참의장으로서국민의 지지를 얻기 전에는 가능한 한 무력개입을 피하되 무력개입을 할 때에는 압도적인 군사력을 투입하여 사상자를 최소화한다는 지침을 내렸는데, 사람들은 이를 '파월 독트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결과 미군은 사상자를 거의 내지 않으면서사막의 폭풍작전을 통해 후세인 군대를 패퇴시켰습니다. 국무장관으로서 파월은 북한에 대해서 대화와 협상의 여지를 열어 두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강경자세를 이어가는 중에도, 파월은 2003년 미·· 3자 회담을 성사시켰고 이것이 6자회담으로 확대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북한이 대화를 하면서도 뒤로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이중전략을 고수함으로써 핵대화는 좌초되고 말았지만 파월은 외교수장으로서 본분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파월의 이런 모습을 기억하는 한국인들도 많습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파월 장관과의 20여 년에 걸친 교분을 되돌아보면서대단한 외교관이자 대단한 장군, 한미동맹의 오랜 친구를 잃었다"는 내용의 조문을 보냈고, ”1970년대 주한미군 대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이 자신의 군생활 중 가장 보람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파월 장관이 한국과 한미동맹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졌다고 회상했습니다. 풍산그룹의 류진 회장도 10 19일 뉴욕에서 열린 한미 친선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의 2021년 연례만찬회에서 파월 장관과 나눈 27년 간의 인연을 공개하면서 그가 파월의 자서전 「나의 미국 여행」을 직접 번역하여 한국에서 출판했던 사연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파월의 별세가 그토록 많은 추모 물결을 일으킨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 자체가위대한 미국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흑인이자 이민자의 아들로서 슬럼가에서 공립학교 교육을 받았고 뉴욕시립대학교를 나와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파월은 미국에서 흑인으로서 처음으로 대장 계급장을 단 군인이었으며, 52세 최연소이자 유색인종 최초로 합참의장,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 등을 지냄으로써 그의 이력에는 항상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습니다. 파월은 이민, 인종문제, 빈곤 등 미국 서민 사회의 애환들을 고스란히 내포하는 삶을 살았으며, 미국이 누구든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는기회의 땅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웅변적으로 알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은 그를 국무장관으로 지명하면서 "콜린 파월은 위대한 미국의 이야기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태우,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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