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6.25 격전지 철의 삼각지대에 대한 회상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19-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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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25 전쟁 격전지인 철의 삼각지대(Iron Triangle)를 회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철의 삼각지대란 한반도의 중심부에 있는 북쪽의 평강을 정점으로 남쪽의 철원과 금화를 잇는 삼각모양의 지역을 말합니다. 경원선이 통과하고 왼쪽의 서울과 남북 여러 지역으로 가는 길들이 나 있는 교통의 요충지여서 6.25 전쟁 동안 북한군과 중공군이 병력과 군수물자를 집결시켜 남쪽으로 전개시키는 중간기지로 사용했고, 유엔군 역시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습니다. 이런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개성에서 첫 휴전회담이 열린 1951년 7월부터 1953년 7월 정전이 될 때까지 이 지역에서 백마고지전투, 화살머리고지 전투, 저격능선 전투, 금성전투 등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철의 삼각지대 전투의 개막을 알린 것은 유엔군의 파일드라이버(Pile Driver) 작전이었습니다. 1951년 5월 말에서 6월 중순까지 전개된 이 작전은 미군과 한국군이 남쪽으로 밀고 내려온 중공군을 다시 북쪽으로 밀어내고 철원-금화-양구-간성을 동서로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전개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군 3사단과 9사단은 철원을 그리고 미 25사단은 금화를 점령하고 평강까지 진입했지만, 이후 뺏고 뺏기는 혈전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백마고지 전투입니다. 전투는 1952년 10월 중공군 3개 사단이 백마고지를 지키고 있던 한국군 제9사단에 대해 인해전술을 펼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후 10일 간의 혈투에서 한국군은 엄청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미 포병과 미 공군의 필사적인 지원을 받으며 중공군을 물리칩니다. 백마고지 전투는 10일 동안 고지의 주인이 12번이나 바뀐 것으로 유명하지만, 단일 전투에서 한국군 3,400여 명과 중공군 14,000여 명이라는 사상자 기록으로도 유명합니다.

백마고지의 왼쪽에 위치한 화살머리고지 역시 중공군의 남하를 저지할 수 있는 철의 삼각지대의 요충지로서 해발 281m의 나지막한 고지가 화살촉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곳에서는 프랑스군과 중공군 간 그리고 한국군과 중공군 간 두 차례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제1차 전투는 1952년 10월 프랑스 대대가 중공군 제113사단을 맞아 싸운 전투였습니다. 프랑스 대대는 수적 열세로 한때 고지를 빼앗기지만 긴급 투입된 한국군과 미군의 지원을 받으면서 사투 끝에 고지를 탈환합니다. 제2차 화살머리고지 전투는 휴전을 앞둔 1953년 6월 중공군의 대공세로 시작됩니다. 중공군은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를 동시에 점령하고자 파상공격을 퍼부었고 화살머리고지를 지키던 한국군 2사단은 일시 후퇴했지만 역습 작전을 통해 7월 11일 고지를 탈환했는데, 이로부터 16일 후 정전협정이 체결됩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벌어진 최후의 전투는 금성지구 전투였습니다. 1953년 3월 5일 스탈린 사망으로 휴전이 더욱 임박해진 상태에서 중공군은 유리한 휴전조건을 얻기 위해 중부전선 모든 곳에서 최후의 공세를 펼쳤는데, 특히 가장 강력한 공세를 펼친 곳이 철의 삼각지대 한복판에서 북쪽으로 돌출한 금성지구였습니다. 중공군의 입장에서 보면 한미군이 이 지역을 차지함으로써 동서로 이어지는 병참선이 차단당하는 형세였습니다. 중공군은 6월과 7월에 걸쳐 두 차례에 걸쳐 대공세를 펼치는데, 6월 전투에서 한국군과 중공군은 각 7천여 명의 전상자를 냈고, 7월 전투는 더욱 치열했습니다. 6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 2만 7천명을 석방함으로써 모택동이 크게 분노한 가운데 전개된 7월 전투에서 중공군 15개 사단이 한국군 4개 사단과 미군을 포위하여 맹공을 퍼부었고, 이에 미8군 사령관은 금성천 남쪽으로 후퇴하라고 명령합니다. 그것이 유명한 금성철수 작전이었습니다. 7월 전투에서만 중공군 2만 8천여 명과 한국군 1만 4천여 명이라는 막심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 전투가 끝난 직후인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됩니다. 이렇듯 6.25 전쟁은 휴전협정 막바지에 엄청난 인명피해를 낸 잔혹한 전쟁이었습니다. 이런 전쟁을 치른 후 평강은 북한의 땅이 되었고 철원과 금화는 한국의 땅이 되었습니다. 화살머리고지는 군사분계선으로 양분되었고, 백마고지와 저격능선은 군사분계선 남쪽의 땅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수많은 전투를 치른 철의 삼각지대에는 수많은 가슴 저미는 얘기들이 역사가 되어 간직되고 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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