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푸에블로호 나포에 대한 미 법원의 배상판결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21.03.03

지난 2 24일 워싱턴 DC의 미 연방법원이 53년 전에 북한에 의해 나포되었던 미 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와 관련하여 승조원, 가족, 유족 등 171명에게 23억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배상금액이 엄청나게 큰 것도 놀랍지만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배상판결을 내린 이유도 긍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선 푸에블로호 사건을 다시 한번 회상해보겠습니다. 1968 1 23일 푸에블로호는 일본 큐수에서 출발하여 구 소련의 블라디보스톡 방향으로 항해하면서 원산 앞 공해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23일 정오 경 푸에블로호는 북한 초계정으로부터국적을 밝히라는 무전을 받고미국 소속이라고 답했습니다. 북한 초계정은정지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고 위협했고, 푸에블로호는 공해상이라는 이유로 정지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1시간 후 북한의 무장 초계정 3척과 2대의 미그기가 푸에블로호를 포위했고, 이어서 북한군인들이 푸에블로호에 승선하여 선박을 나포했는데, 이 과정에서 미군 3명이 부상당하고 1명이 피살됩니다.

이후 사태는 매우 급박하게 돌아갔는데, 당시는 북한군의 빈번한 대남도발로 긴장감이 매우 높았던 시기였습니다.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직후 미국이 항모전단을 원산 앞바다로 보내고 수백대의 전투기에 출동태세 명령을 내리면서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이후 미국과 북한은 28차례에 걸쳐 비밀협상을 진행했고, 승무원 82명은 북한에 11개월 동안 억류된 끝에 1968 12 23일에 판문점을 거쳐 풀려나게 됩니다.

미국 법원이 50여 년이 지난 지금 배상 판결을 내린 것에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통상 국가는 주권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서 한 나라의 국민이 다른 나라를 상대로 법적인 책임을 묻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푸에블로호의 생존 선원들과 유가족들도 그동안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국제 테러리즘 지원국으로 지정하면서 소송할 길이 열렸고, 그래서 생존 선원들과 유가족 171명이 2018 2월에 집단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당시 푸에블로호가 공해상에서 나포되면서 선원 1명이 사망했고 나머지 선원들도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으므로 북한에게 배상을 요구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미 법원은 2019 10월 의견문을 통해 "원고 측의 청구에 대한 책임이 북한에 있다며 원고 승소 결정을 내렸고, 이후 배상액을 산정한 후에 이번에 최종 판결문을 낸 것입니다. 배상액은 선원들이 355일 억류 기간 동안 입은 피해와 이후 50년간 입은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감안하여 결정된 것입니다. 물론, 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은 무대응으로 일관했으며, 북한이 미국 법원의 배상 명령을 이행할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하지만 가해자인 북한에게 손실을 입힐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이런 판결이 가지는 상징성 또한 작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2016 1월 관광차 북한을 방문했다가 1 5개월 동안 억류된 후 2017 6월 혼수상태로 귀국하여 곧바로 숨진 미국 청년 윔비어의 경우, 부모가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자 2018년 미 법원은 북한이 유족들에게 5113만 달러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자 윔비어의 부모는 불법적인 석탄 운송 혐의로 미 법무부가 압류 중이던 북한 선박와이즈 어니스트’(Wise Honest)’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는데, 그것이 인정되어 선박을 고철로 처분한다면 일정 수준의 배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판결들을 통해 미국은 미국 국민에게 부당한 불이익을 입힌 가해국을 결코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는다는 메시지를 북한에게 전했습니다. 윔비어의 부모는 지금도 미국내 북한 자산을 찾고 있으며, 대북제재로 동결되어 미국 은행들에 예치되어 있는 북한정부의 자산을 일부 찾아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북한 자산을 압류해서 배상금을 받아낸다면 북한의 불법적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실질적 배상을 받아내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가 될 것입니다. 당연히, 푸에블로호의 승조원과 유족들도 이런 방식으로 배상을 받아내는 활동을 개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2 24일자 미 연방법원의 판결은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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