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가평지구 전투를 회상한다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2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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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 하순에는 가평 전투를 기념하는 추모행사가 한국과 참전국들에서 동시에 개최됩니다. 작년 4월에는 가평 전투 69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영연방 4개국 대사관과 유엔한국참전국협회가 주관하여 가평읍 대곡리에 있는 영연방 참전비에서 기념행사를 가졌고, 금년에도 지난 4 23일부터 27일까지 호주 시드니에서 현지 한국총영사관과 한국문화원이 가평 전투 70주년 기념전을 열었습니다. 기념전에서는 6·25 한국전쟁 당시 호주군이 격전을 벌였던 가평 전투와 관련한 사진, 당시 지도와 도표, 호주군 참전용사들이 사용했던 물품 등을 선보였습니다.

가평 전투는 1951 4 23일부터 3일간 호주군을 비롯한 영국 연방군이 중공군의 인해전술 공세를 결사적으로 저지한 전투입니다. 이 전투를 치른 영연방군 제27여단은 영국 미들섹스대대, 호주 왕실 3대대, 캐나다 프린세스 패트리샤 2대대, 뉴질랜드 16포병연대 등 4개국 군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 전투에서 세운 전공으로 제27여단은 미국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부대훈장을 받았습니다.

가평 전투는 측면으로부터 서울을 공격하여 재탈환하려던 중공군의 기도를 저지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집니다. 1950 6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되어 한달여 만에 낙동강 이남 경상도를 제외한 전 지역이 북한군의 수중에 떨어졌으나, 1950 9 15일 맥아더 장군의 역사적인 인천 상륙작전을 계기로 유엔군과 한국군이 반격을 개시하여 압록강까지 북진했었습니다. 하지만 그해 10월 중공군의 참전으로 유엔군과 한국군은 후퇴해야 했고, 이듬해인 1951 1 4일 서울을 다시 중공군에게 내주어야 했습니다. 이후 유엔군과 한국군은 평택-원주-삼척을 잇는 방어선을 치고 결사항전을 하면서 3 16일 서울을 재탈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1951 2월 경기도 양평군의 지평리에서 벌어진 지평리 전투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미 제1기병사단 제5기병연대, 프랑스군이 주축이었던 미 보병 2사단 제23연대 등이 중공군 4개 사단의 공세를 막아냄으로써 중부전선을 장악한 후 서부전선의 유엔군을 포위·압박하려던 중공군의 전략은 무산되었고, 유엔군은 1951 3 16일 서울을 재수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서울을 다시 함락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중공군의 춘계공세가 줄기차게 이어졌습니다. 1951 422일 중공군은 제1차 공세를 개시하여 한강 북쪽 서부전선과 중부전선에서 일제히 공세를 취하면서 서울을 압박했습니다. 서부전선에서는 중공군 27만 명과 북한군 35천 명이 서울 북방을 방어하던 한국군 1사단, 영국군 29여단, 미군 3사단, 터키여단 등을 압박했고 중부전선에서는 중공군 제9병단이 인해전술을 앞세우고 공세를 펼쳤습니다. 중부전선의 춘천 지역을 지키던 한국군 제6사단은 가평 지역으로 후퇴해야 했습니다. 서부전선에서 유엔군과 한국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친 중공군은 중부전선의 가평 지역에서 유엔군 전선을 붕괴시켜 춘천과 서울을 잇는 경춘가도를 통해 측방으로부터 서울을 공격하려 했습니다. 그게 성공했더라면 서울은 또 다시 공산군의 수중으로 떨어졌겠지만, 중공군의 이런 기도를 막아낸 것이 바로 가평 전투였습니다. 영연방 27여단은 후퇴하는 한국군 제6사단을 추격하여 남하하던 중공군을 맞아 혈전을 치렀고,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으면서 5배 병력을 가진 중공군을 저지했습니다. 이로서 중공군의 제1차 춘계공세는 좌절되었고 서울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 있는 전쟁기념관에는 가평전투 기념관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호주는 매년 4월에 '가평의 날(Gapyeong Day)'을 기념합니다. 전쟁 후 캐나다군이 귀국하여 위니팩에 주둔했을 때 캐나다 사람들은 이 부대를 ‘Kapyeong Barrack,' 가평부대로 불렀습니다. 가평의 격전지에는 1958년에 건립한 가평지구 전투전적비가 우뚝 서 있습니다. 세월은 흘러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날의 전투를 기억하고 있으며, 전투에서 희생된 용사들을 기리는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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