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헥시트(Hexit)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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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시트(Hexit)’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홍콩이라는 지명에 탈퇴한다라는 뜻을 가진 ‘exit’를 합성한 단어입니다. 헥시트는 최근 중국이 홍콩에 대한 일국양제를 거부하고 직접통치의 고삐를 조이면서 불안사태가 확대되고 홍콩에서 외국인과 자금이 대거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사태를 의미합니다.

홍콩은 기구한 역사를 가진 도시입니다. 홍콩은 청나라가 제1차 아편전쟁에서 영국에게 패한 1841년부터 영국의 식민지였으나 태평양 전쟁 중에는 일본제국에 점령당했고, 일본이 전쟁에 패하면서 1945년 다시 영국령이 되었습니다. 영국령으로 지내는 동안 영국식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한 주민들은 스스로를 서방세계 국민으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중국대륙을 지배하게 되었을 때 많은 중국인들이 공산당의 억압을 피해 홍콩으로 이주하기도 했습니다.

홍콩이 금융 허브로 발전하게 된 데에는 서방국가들이 홍콩을 우대한 것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은 홍콩을 무역, 외환 거래, 기술 이전, 비자 발급 등에서 중국 본토와 다르게 우대해 왔고, 이런 특별 대우 덕분에 홍콩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달리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아시아권을 대표하는 금융 허브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다가 1997년 7월 1일부로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었는데, 이때 영국과 중국이 합의한 것이 중국이 외교·국방 주권을 가지되 이후 50년간 홍콩을 상당한 자치권을 갖는 특별행정구로 지정하여 현 체제를 유지하게 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이 합의를 어기고 직접통치의 고삐를 조임에 따라 홍콩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112년 동안 포르투갈이 통치했던 마카오도 홍콩에 이어 1999년 12월 20일 중국에 반환되었는데, 홍콩과 마찬가지로 중국이 통치하되 향후 50년간 1국 2체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마카오와 홍콩은 상당히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중국령 특별행정구가 된 후 마카오는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모범생이었습니다. 마카오에서는 중국 공산당 정부를 비판하거나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표출된 적이 없으며, 2009년 마카오 입법회의는 중국 정부에 요구에 순응하여 중국에 대해 반기를 드는 행동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을 순순히 통과시켰습니다. 마카오 입법회의는 중국 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을 모독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국가법(國歌法)도 제정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이런 마카오의 행보를 흡족하게 생각하여 마카오의 금융, 관광, 카지노 사업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민주주의 국가인 영국의 제도를 답습하면서 살아온 홍콩 주민들의 정치 의식은 많이 달랐습니다. 홍콩 자치정부는 중국 공산당 정부의 요구에 따라 2003년에 마카오 보안법과 유사한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했지만,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면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홍콩에서도 국가법이 논의되었지만 제정되지 못했고, 2019년에는 송환법 때문에 6개월에 걸친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송환법이란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홍콩으로 도주한 범죄인들을 해당 국가로 송환할 수 있는 법을 말하는데, 홍콩 시민들은 이 법이 제정되면 홍콩의 반중(反中)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으로 압송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극렬하게 반대했고, 시위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송환법 제정 철회를 발표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것으로 송환법사태가 종료된 것도 아닙니다. 홍콩의 시위대는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에 대한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하순에 개최된 중국의 전국인민대표회의는 중국에 반대하는 홍콩 주민들을 처벌할 수 있게 하는 홍콩보안법을 찬성 2,878표 반대 1표로 통과시켜 버렸습니다. 홍콩 의회를 뛰어 넘어 직접 보안법을 제정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홍콩의 불안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돈과 인재의 해외 유출, 증시 폭락, 해외 이민 신청자 급증 등의 조짐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미국도 홍콩정책법을 폐기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핵시트는 홍콩의 아시아 금융허브 지위의 상실이나 시장경제 체제의 몰락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홍콩 주민들이 지난 한 세기반 동안 누려온 서구식 민주주의와 인권도 한꺼번에 증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홍콩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착잡하기만 합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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