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백두산함과 최영섭 예비역 해군대령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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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지내면서 대한민국 해군이 발행하는 월간지 '해군' 6월호에백두산함 승전을 기억하자는 제목과 함께 살아계시는 노병 최영섭 예비역 해군대령과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매년 6월이 되면 참혹했던 6·25 전쟁을 회상하면서 그 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추모하지만, 한국군 장병들은 아직도 살아계시는 참전용사들을 찾아서 그때 그시절에 있었던 일들을 청취하면서 국토수호의 의지를 다지기도 합니다.

지금 한국은 세 척의 이지스함을 가진 세계 10위권의 해군국이지만, 6·25 전쟁 발발 당시 백두산함은 대포가 달린 유일한 군함이었습니다. 해군은 1949년에 장병들의 모금에 해군가족들이 뜨개질과 바자를 통해 모은 돈을 더하고 거기에 이승만 대통령의 하사금까지 보태서 만든 1 8천 달러로 미국의 대학교에서 실습선으로 사용되다가 폐선되기 직전인 600톤급 구식 함정을 구입했습니다. 해군은 이 함정에 3인치 포를 장착하여백두산함(PC-701)’이라 명명하고 태극기를 게양했습니다. 1950 4 10월 태극기를 단 백두산함이 태평양을 가로 질러 진해항에 들어왔을 때 해군장병들은 첫 전투함을 가졌다는 감격에 젖어야 했습니다. 장병들이 망치로 두들겨 뻘겋게 쓴 녹을 떼내고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바로 이 백두산함이 두달 후 나라를 구하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북한군이 전면남침을 개시한 1950 6 25일 오후 3시에 백두산함은 긴급 출동명령을 받고 진해항을 출항하여 부산해역을 지나가다가 저녁 8 12분에 미식별 선박을 발견하고 세 시간동안 추적하다가, 북한군 후방침투요원 600명을 싣고 부산으로 가던 북한의 무장수송선임을 알고는 필살의 전투를 벌입니다. 최영섭 대령은 당시 해군 소위로 백두산함의 갑판사겸 항해사·포술사였습니다. 백두산함은 함장 최용남 중령의 지휘아래 12 30분에 전투에 돌입했고, 레이더도 없는 상황에서 칠흑같은 암흑 속에서 한시간 동안 포격전을 전개했습니다. 백두산함이 발사한 포탄들이 적 선박의 함교, 마스트, 기관실 등을 강타했지만, 34발을 발사하고 난 후 더이상 포탄이 발사되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열기로 격발장치가 고장난 것이었습니다. 백두산함은 400m까지 접근하여 12.7mm 중기관총을 발사했고, 북한 선박은 침몰했습니다. 적함에서 발사한 포탄에 백두산함 승조원들도 부상을 당했습니다. 군사전문가들은 당시 백두산함이 북한군의 후방침투를 막지 못했다면 6·25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고 회상합니다. 백두산함에서 최영섭 소위는 함께 싸우다가 중상을 입은 부상자들이 숨을 거두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최영섭 대령은 이후에도 덕적도·영흥도 탈환작전, 인천 상륙작전, 대청도·소청도 탈환작전 등에 참가했고, 전쟁 후에는 한국 최초의 구축함인 충무함(DD-91)의 함장으로 활약했습니다. 최 대령은 1965 3 1일 그가 함장으로서 수행했던 마지막 작전을 잊지 못합니다. 그날 최 함장은 사령관에게 간첩을 잡아오겠다고 말하고 동해로 나가 간첩선을 나포하고 8명의 간첩을 생포했습니다. 이 작전으로 그는 금성충무무공훈장을 받았고, 3년 후인 1968년에 대령으로 전역했습니다.

하지만, 최 대령의 애국 활동은 전역 후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최 대령은 인천 상륙작전에 참가했던 문산호에서 전사한 민간인 선원 11명을 끈질기게 추적하여 69년만인 지난해에 정부로부터 화랑무공훈장을 받게 했으며, 1994년부터는 해양소년단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해군'지의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최영섭 대령은 '대한해협해군전승유공회 백두산함'이라고 적힌 빛바랜 수첩을 보여주었는데, 거기에는 1950 6 26일 밤 백두산함에 승선했던 전우 76명의 이름, 사진, 생사 여부 등이 촘촘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92세 노병은 죽지 않는다이것이 6·25 전쟁 70주년에 '해군'지 기자를 만난, 살아계시는 노병 최영섭 대령이 인터뷰를 마치면서 한 말이었습니다. 92세의 노병 최영섭 예비역 대령이 들려주는 백두산함 이야기는 후세들이 간직해야 할 소중한 역사가 되고 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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