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항미원조 전쟁이 남긴 어두운 그림자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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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문가들 사이에 항미원조(抗美援朝)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23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한국전쟁 참전 70주년 행사에서 6.25 전쟁을 중국이 침략자인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운 정의로운 항미원조 전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후 한국에서는 중국의 6∙25 역사 왜곡이 지나치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6∙25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되었다가 유엔군의 참전으로 북한군이 패색이 짙어지자 중국군이 개입하여 북한을 도운 전쟁이었습니다. 즉, 중국이 침략자를 도운 전쟁이었으며, 그로 인해 중국 스스로는 물론 참전 유엔회원국들에게 많은 피해와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 소식이 전파되자 유엔은 즉각 안보리를 소집했고, 25일 당일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즉각 남침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안보리결의(UNSCR) 제82호를 채택했습니다. 북한군이 남진을 계속하자 이틀 후인 6월 27일 안보리는 안보리결의 제83호를 통해 유엔헌장 제51조에 의거하여 침략자를 격퇴하고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유엔지원을 결의했습니다. 7월 7일에는 안보리결의 제85호를 통해 미군 주도 하에 유엔군을 결성하여 싸우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네덜란드, 뉴질랜드, 프랑스, 필리핀, 터키, 태국, 남아공, 그리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등 16개 나라가 전투부대를 파병했고,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등 5개국이 의료지원을 그리고 35개국이 물자지원을 제공했습니다. 침략국인 북한을 도운 나라는 중국과 소련 뿐이었습니다.

3년 간의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엄청났습니다. 전사, 부상, 실종 등을 합쳐 한국군 62만, 유엔군 16만 등이며,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한 미국은 13만 4천 명의 인명피해를 입었습니다. 남북한을 합쳐 사망하거나 이재민이 된 민간인이 수백만 명이 넘었고, 가족 친지와 헤어진 이산가족이 1천만 명에 달했으며 한반도는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중국이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주장하는 6∙25가 남긴 그림자였습니다.

지금도 생존하고 있는 각국의 참전용사들과 세계 각지에 세워진 6∙25 전쟁 기념관, 기념비들은 그날의  역사를 생생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곳곳에 참전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시설들이 산재해 있음은 물론이고 다른 참전국들도 그렇습니다. 영국군은 3년 간 9만여 명이 참전하여 1천여 명이 전사하고 2,600여 명이 부상했는데, 미군 다음으로 큰 피해였습니다. 현재 2,000명 이상의 참전용사들이 생존해 있으며, 한국 재향군인회 영국지부는 매년 이들을 초청하여 축제를 거행합니다. 프랑스군은 1951년 2월 중공군의 춘계공세를 저지한 지평리 전투를 매년 기념하고 있으며, 영연방 제27여단을 구성하여 싸웠던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은 5배가 넘는 중국군에 맞서 1951년 4월 경기도 가평에서 벌였던 전투를 기념하는 행사를 매년 실시합니다. 호주군은 매년 4월 25일을 ‘가평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으며, 캔버라, 멜버른, 골드코스트 등 여섯 도시에 가평에서 보낸 돌로 제작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캐나다군 참전용사들도 오타와의 전쟁박물관내 한국관을 찾아 그날을 회상합니다. 터키는 중국군과 격돌하여 77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청천강 지역 군우리전투를 기억하는 행사를 거행합니다. 7,400여 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500여 명의 인명피해를 당한 필리핀도 중국군의 공세를 막아낸 경기도 연천 율동전투를 기억하여 매년 경기도 고양시 필리핀군 참전 기념비 앞에서 기념행사를 가집니다. 태국군은 연 1만 5천명이 참전하여 600여 명의 피해를 당했는데, 1952년 11월 폭찹(PORKCHOP) 전투에서 중국군에 대승을 거두어 ‘작은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3,500명의 병력을 보낸 벨기에군도 임진강 일대에서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렀으며 440여 명의 인명피해를 입었습니다.

때문에 한국과 참전국들의 전문가들은 중국이 세계를 향해 6∙25를 ‘침략자에 맞서 싸운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런 역사를 왜곡하고 유엔을 욕보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난 10월 30일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피터 레스쿠이에 주한 벨기에 대사는 “6.25 남침은 시진핑 주석도 바꿀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했고, “6·25가 북침이었다면 어떻게 유엔이 한국을 지원하는 유엔군 파병을 결정했겠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많은 인명피해와 어두운 그림자를 남긴 그 전쟁에서 침략자의 편에 섰던 중국이 ‘정의로운 전쟁’을 주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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