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에 내몰리는 북 여성들] ② 국가주도 인신매매 ‘기쁨조’
2021.07.28
앵커: 신체조건과 외모를 바탕으로 당 5과, 이른바 기쁨조로 선발되는 북한 여성들은 애초 기대나 자부심과 달리 북한 당국으로부터 강제 노동과 성 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선발 과정은 물론, 그 이후의 삶도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물건처럼 취급받고 있지만, 북한 내에서도 이같은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점으로 꼽힙니다.
그래서 기쁨조는 은밀히 이뤄지는 국가 주도의 인신매매란 지적도 나오는데요. 세계 인신매매 반대의 날 특집, [벼랑끝에 내몰리는 북 여성들] 오늘은 또 다른 인신매매라 할 수 있는 기쁨조의 실상과 문제점을 노정민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고위 관리 술 접대 이후 혼전임신으로 쫓겨나”
김정은 총비서의 집권 이후인 2013년에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한송이 씨(한송이tv)는 기쁨조에 선발됐다가 불명예 제대한 한 북한 여성을 기억합니다.
[한송이 씨] 제가 살던 동네에 당 6과(5과)에 갔다가 생활 제대를 당해 쫓겨온 여성분이 있었어요. 김 부자 집에서 관리원을 했는데, 중앙당 관리들을 대상으로 하다가 술자리에서 잘못돼 혼전임신을 한 경우가 있었어요. 그 안에서 성적 학대, 성추행 등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거죠.
이 여성은 결국, 가족과 함께 시골로 추방됐는데 북한 당국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씨는 최근 (7월 27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 한 전화 통화에서 기쁨조를 한 마디로 ‘국가 주도의 인신매매’라고 꼬집었습니다. 북한 최고지도자 한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선택받은 뒤 강제 노동과 성 착취의 피해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김정은 정권 들어 5과에서 6과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하는 일은 똑같다는 것이 한 씨의 설명입니다.
탈북민들에 따르면 기쁨조의 선발 과정은 약 13세부터 시작됩니다. 중앙당 군사동원부에서 각 지방의 학교로 내려와 여학생들의 기본적인 신체조건과 얼굴 등을 보고 관리 대상에 포함하는 겁니다.
키는 최소 160cm 이상에 피부와 치아는 하얗고, 계란형 얼굴에 옅은 쌍꺼풀까지 있어야 합격할 만큼 기준이 높은데, 출신 성분이 좋아야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5과에 선발된 친구가 많았다는 탈북민 김혜영 씨(신변 안전을 위한 가명 요청)도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김혜영 씨] 고등중학교(중학교) 3~4학년 때 중앙당에서 간부들이 내려옵니다. 키가 크고, 살결이 하얗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애들, 곱게 생긴 애들을 이때부터 점찍어놓고, 시험 보러 다니는 거죠. 이때 점찍은 애들은 학교에서 중요하게 관리하고, 졸업할 시기가 되면 5과에 뽑혀가는 겁니다.
최종 선발되기까지 어린 여학생들에 대한 신체검사는 계속됩니다. ‘처녀성’ 검사부터 성장 발육상태까지 계속 관리하는 겁니다.
영국 인권단체 ‘징검다리’의 박지현 대표에 따르면 신체검사의 수위가 어린 여학생들이 수치심을 느낄 정도지만,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없다 보니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박지현 대표] 일 년에 한 번씩 신체검사를 하는데, 키는 얼마나 컸고, 건강은 좋은지, 병은 없는지 등을 계속 체크하더라고요. 저희가 생각했던 바는 아이들의 모든 신체적인 것을 다 체크하지 않았겠나. (부모 동반 없이) 아이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인데, 본인 스스로 수치심 같은 것이 있었겠죠. 저도 친한 친구가 5과로 뽑혀서 신체검사를 하고 오게 되면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기분이 가라앉은 것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한송이 씨] 제 친구들이 직접 받았거든요. 남자 선생님들이 나와서 험한 말을 하면서 신체검사를 하는데, 굉장히 치욕스럽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정말 신체검사는 두 번 다시 못할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요. 꼭 5과, 6과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군대에 나가기 전에 하는 신체검사도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다 해당된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만족조’, ‘행복조’... 왕에게 간택 받는 것과 똑같죠”
북한의 기쁨조는 김일성 주석 집권 시기인 1975년에 처음 만들어져 대를 잇고 있는데, 탈북민들에 따르면 기쁨조 안에는 만족조, 행복조, 가무조 등 여러 부서가 있습니다.
악기를 다루고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가무조’, 고위 관리들을 시중들며 기쁨을 준다는 ‘행복조’, 그리고 성적 접대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진 ‘만족조’가 그것입니다.
또 최고지도자의 마음에 따라 관리들에게 기쁨조 여성을 붙여주거나, 결혼 상대자까지 점찍어주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탈북민들의 설명입니다.
이 밖에도 신체조건에 따라 주방, 정원관리, 사무직 등에 배치되는데, 5과를 떠날 때까지 해당 업무만 하게 됩니다.
[김혜영 씨] 다 교육을 시켜서 간부들을 섬기고, 도와주고 그런 일을 한다고 해요. 예전 왕궁에서 여자들을 뽑아가 왕과 왕 밑의 신하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과 같은 부류죠. 가서 잔심부름하는 사람도 있고, 간호원을 하기도 하고, 어린 애들을 봐주기도 하고요. 좋게 말해서 당과 수령을 위한 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인신매매죠.
임기가 끝날 때까지 연애도 금지입니다. 김 씨에 따르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사저에서 근무했던 한 친구는 호위총국에 소속된 남성과 몰래 연애를 하다 발각돼 쫓겨나다시피 나왔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 만날 수도 없었고, 친구의 행방도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정작 선발된 여성들이나 가족들이 기쁨조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오히려 남들과 달리 국가의 선택을 받았다는 자부심, 당과 수령을 위해 자식을 바쳤다는 마음이 앞서지만, 선발 이후에는 가족과 모든 연락이 단절될 뿐 아니라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김혜영 씨] 모르고 갔죠. 어린 나이에 그런 것을 어떻게 알겠어요. 가서 교육받기를 ‘당의 특별한 배려로 이런 것을 배워서 당과 수령께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서약서도 쓰고요. ‘이런 것을 절대 밖에서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도 다 쓴대요. 5과에 뽑혀가면 부모, 형제와 전혀 전화도 못 하고, 만날 수도 없습니다. 제대한 뒤에는 만날 수 있겠지만, 그전에는 만날 수도 없고, 부모에게도 이런 것은 다 비밀입니다.
[박지현 대표] 5과로 데려가면 집안의 사진까지 없애고, 군복은 특별 군복을 입거든요. 부모들이 ‘우리가 당을 위해서 자식들을 바친다’며 좋아하는데, 하지만 이 아이들이 한 마디로 북한 정권의 노리개잖아요. 그런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청춘을 국가에 다 바치고, 자유도 없이 살아가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어떤 국가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던 하나의 인권 유린이자 인신매매거든요.
지방에 사는 여성들 가운데 5과에 뽑히면 평양에서 살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성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북한 당국의 선전 선동과 입막음 정책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이기도 합니다.
또 평양 내 고위층 자녀들은 5과 대상에서 제외되고, 지방의 중간 계층 자녀들 사이에서 선발하기 때문에 기쁨조는 북한의 불평등한 계급 사회를 반영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인신매매 반대의 날... 기쁨조의 실상도 국제사회에 알릴 때”
김일성,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 총비서 집권 시기에도 기쁨조의 선발은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기쁨조의 실상을 계속 거론하는 것이 김정은 정권의 치부를 드러냄과 동시에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탈북민들은 말합니다.
[한송이 씨] 당6과(5과) 여성분들이 뽑혀 올라간다고 하지만, 한 마디로 김정은 만족시키기 위한 또 하나의 성 착취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전 세계에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쁨조 외에도 인권 유린을 당하는 북한 여성들이 많기 때문에 북한 인권, 특히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대표도 중국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와 강제북송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듯이 5과 선발과 기쁨조 등이 국가 주도로 이뤄지는 인신매매임을 국제사회에 계속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박지현 대표] 중국에서의 인신매매나 강제북송 등이 처음에는 몰랐던 일들이잖아요.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한 번도 있어 보지 않았던 인신매매, 바로 5과와 기쁨조 등을 알리기 시작해야 하고요. 북한 인권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갈 길은 멀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외부 세계의 시각에서 볼 때 기쁨조는 있어서는 안 될 존재이지만, 그동안 북한 내에서 너무나 당연했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길 만큼 북한의 인권 인식 수준이 너무나 낮았다는 것이 탈북민들의 지적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기쁨조의 실체가 북한 내에도 알려지면서 과거와 달리 자녀를 5과에 보내려는 부모가 적어졌다는 것이 한 씨의 설명입니다.
[한송이 씨] 이전에는 가문의 영광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자식이 당 6과(5과)에 갔더라도 딱히 받는 혜택이 없고, 가서 오히려 안 좋은 일들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부모들이 안 보내려고 합니다.
여성과 아동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되지 않은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를 위해 국민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선전 선동, 알 권리와 정보의 차단으로 주민들의 눈과 귀를 가린 사회 체계 등이 그동안 기쁨조를 유지케 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보편적 인권의 기준에서 볼 때 기쁨조의 실체가 얼마나 비인권적인지 바로 알리고, 더는 국가 주도의 인신매매와 성 착취가 발생하지 않기를 탈북민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