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북 신년사와 남북정상회담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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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일 발표된 북한의 신년사는 내외 정세와 경제사정에 대한 북한당국의 평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년사는 ‘정치사상 강국 건설’, ‘혁명무력과 국방력 강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위력’이라는 3대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2014년 동안 북한은 유엔으로부터 인권압박을 받는 가운데 체제생존을 위해 내부통제에 열을 올렸던 한 해였습니다. 소니픽쳐스사가 만든 ‘The Interview’란 영화에 대해 그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만 보더라도 체제생존에 대한 북한의 민감성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무력건설과 관련해서 신년사는 “선군정치와 병진노선을 변함없이 추구한다”고 천명하면서 “비열한 인권소동 때문에 핵억제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2015년에도 중단없이 핵무기 개발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과 관련해서 신년사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경제발전, 국방력 강화, 인민생활 형상에 이바지 할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는데, 이는 핵무기 개발과 경제개발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병진노선을 재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정책과 관련해서는 선동성 구호들을 사용하지 않고 “이미 마련된 자립경제의 토대와 잠재력을 최대로 활용하자”는 온건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원료, 자재, 설비의 국산화’를 강조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의 경제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한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럼에도 이번 신년사는 김정은 위원장이 유훈통치 그늘에서 벗어나 마이웨이를 펼치는 첫해의 신년사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는데, 2012년 신년사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을 지칭하는 ‘수령님’과 ‘장군님’이라는 표현이 65회나 사용된 것에 비해 이번 신년사에서는 6회에 그치고 있어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의 상당부분을 남북관계에 할애하면서 대남 대화공세를 펼친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고위급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분별 회담도 가능하며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라고 천명했습니다.

이에 앞서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도 신년사를 통해 남북대화 재개를 희망했었고 그에 앞서 한국의 통일준비위원회는 2014년 초에 개최되었던 고위급대화를 재개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들은 남북 정상회담을 전망하는 보도를 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남과 북의 최고 지도자들이 한 목소리로 대화의 중요성을 언급했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며, 이를 계기로 대화국면이 활발하게 전개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은 말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남북의 정상이 만나기 위해서는 진정성이 전제되어야 하고, 생산적인 회담이 되도록 하기 위해 쌍방이 합의하는 의제도 마련되어야 합니다. 신년사가 ‘최고위급 회담’을 언급하면서도 ‘한미 연합훈련 중단’ ‘대북전단 살포 중단’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한국이 수용할 수 없는 전제조건들을 내걸고 있다는 점은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핵문제를 남북회담의 의제로 삼지 않겠다는 북한의 태도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북핵 문제가 한국의 최대 안보현안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북한이 남북대화에서 핵문제를 논의하지 않겠다는 것은 한 마디로 어불성설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북한은 현재 심한 고립에 빠져 있습니다.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한 가운데 미국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있으며, 국제사회로부터 인권탄압국으로 낙인 찍힌 상태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한국 대통령이 이런 북한의 젊은 지도자를 만난다면 북한에게 악용 당할 소지가 많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정상회담의 장소도 매우 민감한 문제입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북한 매체들은 “남조선의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와서 김정일 장군님을 알현하였다”라고 보도했었습니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높이고 정권의 기반을 다지는데 악용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때문에 한국에서는 조건과 의제에 합의하더라도 한국 대통령의 평양방문은 곤란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듯 남북 정상회담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북한이 진정 정상회담을 원한다면 우선은 한국이 제안한 고위급회담을 수용하는 것이 순서이며, 모든 것에 앞서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