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국가수호에 큰 공을 세운 후 고위 정부 공직자가 되어 소임을 다하고 있는 한 군인의 훈훈한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지난 1월 18일 국가보훈부 이희완 차관이 지척의 거리에서 북한과 마주보고 있는 서해 연평도를 방문했습니다. 이 차관은 절뚝거리는 다리로 해병대 장병들을 격려하고 위문금을 전달한 후 장병들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는 연평도 주민인 90세 박연선 씨를 찾아가 위문품을 전달했는데, 박연선 할아버지는 6·25 당시 유격대원으로 참전했고 지금은 위암 수술 후 홀로 살고 있는 6·25 참전유공자입니다. 방금 전에 군복을 벗고 공무원이 된 47세 남자가 연평도를 방문한 것이 국민과 언론의 주목을 받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국 국민은 제2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잊지 못합니다. 제2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정과 등산곶 388호정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해군의 고속정 네 척이 교전수칙대로 경고와 차단기동을 실시하는 중에 북한의 684정이 경고사격도 없이 한국 해군의 357 고속정을 향해 선제 사격을 가하는 바람에 357정의 정장 윤영하 대위를 비롯한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한 사건입니다. 북한 측도 684정이 대파되어 북쪽으로 예인되고 13명의 전사자와 25명의 부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습공격을 받은 357정은 기지로 돌아오지 못하고 침몰했으며, 이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전사한 정장을 대신하여 끝까지 전투를 지휘했던 당시 부정장 이희완 중위는 양쪽 다리에 부상을 당했고, 결국 37mm 포탄을 맞은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연평도 포격은 8년 후인 2010년 11월 23일에 발생했습니다. 당시 한국군 해병대는 정기 훈련 중에 포사격 훈련을 실시했는데, 몇 시간 후 황해도 개머리 진지의 북한군이 느닷없이 연평도를 향해 포격을 개시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포를 쏘고 매년 수십 차례씩 잠수정을 보내거나 휴전선 일대에서 도발을 저지르는 북한군이 한국군의 정기훈련을 시비하여 두 차례에 걸쳐 170여 발의 포탄을 연평도를 향해 쏜 것입니다. 한국 해병대도 두 차례에 걸쳐 K-9 자주포로 80여 발의 포탄을 개머리 진지를 향해 쏘았습니다. 한국 공군의 F-16 및 F-15 전투기들도 Slam-ER 등 정밀유도폭탄들을 탑재하고 출격했지만, 북한군이 포격을 멈춤에 따라 더 이상 확전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태로 한국 해병대는 전사자 2명과 부상자 16명을 냈고, 민간인도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으며, 연평도의 민간인 건물 수백 채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북한군이 쏜 포탄의 절반 이상이 바다에 떨어지고 육지에 떨어진 포탄들도 상당수가 불발되어 북한군 해안포의 열악한 상태가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이희완 중위는 제2연평해전에서 세운 공로로 충무무공훈장을 받았고 군생활을 계속해서 대령까지 진급했는데, 2023년 12월 6일 윤석열 대통령은 이희완 대령을 국가보훈부 차관으로 발탁했습니다. 나이에 비해 파격적인 인사였지만, 윤 대통령은 이 대령의 서해수호 공로와 애국심을 높이 평가하여 그와 같은 인사를 단행한 것입니다. 취임식에서 이 차관은 나라를 지키는 장병들과 국가유공자들을 보살피고 필요한 보훈정책들을 펼치는데 정성을 다하겠다면서 취임 소감을 밝혔습니다. 실제로 그는 취임 후 곧바로 중앙보훈병원으로 가서 357 고속정에서 전사한 직속상관이었던 고 윤영하 정장의 아버지 윤두호 씨를 위문했습니다. 81세인 윤두호 씨는 해군사관학교 18기 출신으로 1970년 6월 인천 영흥도 해역에 침투하던 북한의 무장간첩선을 나포해 인헌무공훈장을 받았던 해군 용사였으며, 32년 후인 2002년 같은 바다에서 아들을 잃은 후 뇌경색으로 쓰러져 이 병원에 입원 중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이 차관은 1968년 휴전선 순찰 도중 지뢰 사고로 오른쪽 발을 잃은 76세 장원종 씨 등에게 특별 제작한 로봇 의족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새해가 되자 이번에는 연평도를 찾아 서북도서를 지키는 장병들을 격려하고 평화공원으로 가서 추모의 벽과 위령탑을 찾아 제2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전에서 산화한 전우들의 넋을 기렸습니다.
정부가 이희완 대령의 공로를 인정하여 정부에 발탁한 것도 그렇지만 여기에 보답하기 위해 국가수호에 몸바쳤던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의족에 의지하면서 열심히 안보현장을 다니고 국가보훈 업무를 위해 소임을 다하는 이희완 차관의 모습에서 많은 국민이 훈훈함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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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