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9.19 남북군사합의에 대한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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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사일 광란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년 말 중앙위 전원회의에서는 “한국은 교전중인 적대국이므로 전 영토를 평정할 대사변을 준비하라”고 지시하더니만 ‘졸개, 괴뢰, 충견’ 등의 막말도 쏟아내고 있습니다. 북한은 작년 동안 60여 기의 발사체를 쏘았고, 2024년 들어서도 극초음속 미사일, 핵어뢰, 잠수함 발사 순항미사일 등을 쏘면서 핵무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혹자들은 북한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가 지난해 11월 남북군사합의가 폐기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북한을 제대로 보고 있는 관찰자들이라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이 한국을 ‘주적’으로 부르면서 협박 강도를 높이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내부 사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막대한 국력을 무기 개발에 소진하는데 주민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은 당연히 이치이며, 예나 지금이나 내부 문제를 잠재우는 데에는 외부 긴장 조성이 특효약입니다. 둘째, 그동안 주민들에게 “남조선은 통일 대상인 동족”이라고 가르쳤는데 그 남쪽을 향해 핵공격을 위협한다면 모순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이 모순을 정리하기 위해 한국을 ‘평정해야 할 대상’으로 바꾸어 부르는 것입니다. 셋째, 4월 총선을 앞둔 한국을 최대한 흔들고 분열시키고 싶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9·19 남북군사합의가 있든 없든 북한이 해오던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9·19 군사합의가 과연 어떤 것이었지 다시 한번 회고해 보고자 합니다. 이 합의는 2018년에 남북이 서명한 “지상·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 중지”를 약속한 문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평화보장 장치가 아니었습니다. 합의에 따라 동해·서해 적대행위 금지구역 설정, 휴전선 일대 상공 비행금지구역 설정, 상호 동수 전방 감시초소(GP) 철거 등이 실행되었지만, 내용은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서해에는 북방한계선 기준 북쪽 50km와 남쪽 85km 사이를 적대행위 금지구역으로 설정했는데, 이는 ‘등거리 등면적 원칙’을 어긴 것이며, 북한군 4군단의 전력을 제한하지 않으면서 서북도서에 배치된 한국 해군과 해병대 그리고 한미 연합 공군의 활동은 크게 제약하여 한국 수도권의 측방과 정면을 전략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었습니다. 군사분계선 상공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은 한미군이 질적 우위를 가진 영상정보력과 기계정보력 및 그에 따른 정밀 타격력을 크게 제한했으며, 최전방 북한군의 이상 동향 시 즉각 대처를 위한 무인기 운용도 크게 제약했습니다. 전방에서 서울까지가 50km에 불과한 상황에서 북한군이 나쁜 마음을 먹고 기습공격을 한다면 한국군이 이를 탐지해서 대응하는 시간적·공간적 여유가 크게 줄어든 것이었습니다. 한국군이 북한의 공격에 대비해야 하는 방어자인 반면 북한군은 방어용 감시 정찰이 필요 없는 공격자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문제투성이였습니다. 한국은 무역과 교류를 통해 번영을 누리는 경제강국입니다. 즉 전쟁을 일으킬 이유가 전혀 없고 일으켜서도 안 되는 나라입니다. 이에 반해, 군사력을 키우면서 대남 도발을 일삼아온 북한은 공격자입니다. 그래서 방어용 감시정찰 자산은 사실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군사합의가 서명될 때부터 많은 예비역 장성들과 전문가들이 너무 일방적인 내용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던 것입니다.

남북이 비무장지대의 감시초소를 상호 11개씩 줄이기로 한 것도 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당시 남북은 초소들을 폭파하면서 잠시 평화 분위기를 느꼈지만, 군사합의 이전까지 북한군이 한국군 감시초소(GP) 80여 개의 두 배가 넘는 초소들을 운영하고 있었음을 고려하면 북한군은 22개 이상을 해체했어야 했고, 전방에서 평양까지는 멀고 서울은 가깝다는 사실까지 대입하면 그보다 더 많은 감시초소를 해체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나마 북한은 제대로 철거하지도 않았습니다. 군사합의 폐기 이후 북한은 철거했던 감시초소들을 복원했는데,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지하 시설 위에 신속하게 건물을 만들고 중화기들을 배치했습니다. 즉 눈에 띄는 상부 시설만 철거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9·19 군사합의는 한국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독소 조항들을 담고 있었고 검증 장치도, 위배에 대한 처벌 조항도 없는 문건이었지만 한국은 그래도 이 합의를 지켜보려고 북한이 해안포를 쏘고 무인기를 침투시키는 등 위반을 할 때에도 북한이 준수하는 날을 기다리면서 참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안보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왜 북한에게만 유리한 이런 합의를 붙들고 있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9·19 군사합의도 북한의 미준수로 인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백 건의 남북합의들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국 국민이 기억하는 9·19 남북군사합의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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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