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한국과 튀르키예, 6∙25가 맺어준 형제의 나라
2023.02.22
지난 2월 6일 새벽 리히터 규모 7.8의 강력한 지진과 80여 차례의 여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경지대를 강타했습니다. 이 지진으로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안타키아와 시리아 북부 지역이 폐허로 변하고 3만 5천 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많은 나라들이 원조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만 맨 먼저 튀르키예 돕기에 나선 나라는 대한민국이었습니다.
한국이 튀르키예 돕기에 큰 열성을 보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튀르키예는 북한군의 6·25 남침 나흘 후인 6월 29일 유엔안보리 결의 제83호에 응해 파병을 결정하고 2만여 명의 군대를 보냈습니다. 튀르키예군은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을 뿐 아니라 한국의 고아들을 돌보는 데에도 열과 성의를 다했습니다. 튀르키예군은 미군 제25보병사단에 배속되어 청천강 군우리 전투, 수리산 전투, 용인 151고지 전투, 장승천 전투 등 수 많은 전투에서 8백여 명의 전사자를 포함하여 3천여 명의 인명피해를 내면서 공산군과 싸웠습니다. 군우리 전투는 중공군이 제2차 공세를 통해 청천강 일대로 밀고 내려오던 1950년 11월 말 튀르키예군이 평안남도 덕천 지구에서 막대한 희생을 감내하면서 3일 동안 중공군을 지연시켜 유엔군의 후퇴를 도운 전투입니다. 수리산 전투는 1951년 1월 말 중공군의 제3차 공세로 서울을 내준 유엔군이 썬더볼트 작전을 통해 다시 반격을 시도하던 중 수원 부근의 수리산에서 튀르키예군이 중공군 제149사단을 격파한 전투입니다. 151고지 전투는 비슷한 시기에 튀르키예군이 용인 부근 151 고지에서 중공군을 향해 “알라후 아크바르” 즉 “신은 위대하다”는 구호를 외치면서 착검 돌격전을 벌여 대승을 거둔 전설적인 전투입니다. 장승천 전투는 중공군의 제5차 공세가 한창이던 1951년 4월말 튀르키예군 제1여단 제9중대가 연천 동북방 장승천에서 중공군 제179사단에 포위당했을 때 메흐멧 고넨츠 중위가 “포로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아군의 포격을 맞아 죽겠다”면서 아군 포병본부에 자신들이 있는 지역을 포격하라고 요구하여 적군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던 전투입니다.
물론 튀르키예군이 전투만 한 것이 아닙니다. 경기도 수원시 서둔동에는 ‘앙카라학교 공원’이 있습니다. 이것은 1951년에서 1979년까지 앙카라학교가 있었던 곳이며, 튀르키예군은 앙카라학교를 설립하여 전쟁고아 640여 명을 보육했습니다. 1951년 1·4 후퇴 때 피난길에 부모를 놓치고 고아가 된 후 앙카라학교에서 중고등학교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했던 79세의 오수업 씨는 지진 소식을 듣자마자 1천만 원의 기부금을 내면서 튀르키예군에게 조그마한 보답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2018년에 개봉된 한국∙튀르키예 합작 영화 ‘아일라’의 이야기는 한 편의 감동 드라마입니다. 1950년 11월 청천강 일대에서 후퇴하던 튀르키예군의 술레이만 비르빌레이 하사는 부모를 잃고 추위와 공포에 떨며 울고 있는 네살 짜리 여자 아이를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이를 부대로 데려와 ‘달’을 뜻하는 ‘아일라(Ayla)’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먹이고 재우고 씻기면서 친딸처럼 키웠습니다. 술레이만은 1953년 정전과 함께 귀국하지만 아일라를 잊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57년이 지난 2010년 백발의 노인이 된 술레이만은 튀르키예 한인회 한국전참전용사기념사업회를 찾아 빛바랜 흑백사진을 내보이면서 죽기 전에 이 아이를 만나야 한다고 통사정을 했습니다. 이를 들은 MBC 방송국은 엄마가 되어 인천에 살고 있던 아일라 김은자 씨를 찾아냈고,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튀르키예 참전용사 초청 때 술레이만 씨를 초청하면서 부녀는 눈물의 상봉을 하게 됩니다. 이후 술레이만 씨는 아일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2017년 12월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 이 가족의 사랑은 영화로 만들어 졌고, 85세의 튀르키예인 아버지와 64세의 한국인 딸이 60년 만에 다시 만나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을 본 수많은 사람들은 눈시울을 적셔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과 튀르키예는 6·25 전쟁이 맺어준 형제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한국은 서둘러 구조대를 보냈고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모금한 돈이 이미 수백억 원에 달하고 있습니다. 튀르키예의 페네르바흐체 프로배구단에서 8년 동안 주전으로 뛰었던 배구 여제 김연경은 긴급모금 캠페인을 통해 이미 5억 원 이상을 모았다고 합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10억 원의 성금과 함께 수천 장의 담요와 방한텐트를 모아 보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튀르키예의 지진 현장에서는 한국 구조대가 생존자를 구해낼 때마다 환호성이 터지고 있습니다. 한국 구조대원이 어린 소녀와 아버지를 안고 폐허를 헤치고 나올 때 초조하게 지켜보던 튀르키예인들은 한 목소리로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쳤습니다. 72년 전 용인 151고지와 장승천에서 울려 퍼졌던 ‘알라후 아크바르’가 지금 한국 구조대가 활동하고 있는 튀르키예의 유서깊은 도시 안타키아에서 다시 외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태우,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