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핵세계의 이단아들
2023.03.08
2월 21일 연례국정연설을 통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신전략핵무기감축조약(New START) 탈퇴를 선언하여 이미 흔들리고 있는 핵비확산체제에 또 다시 충격파를 가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미∙러 관계 악화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면서 미국이 핵실험을 하면 우리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뉴스타트조약은 2010년 미∙러가 체결한 조약으로 실전배치 전략핵탄두를 1,550개 씩 그리고 미사일, 전략폭격기 등 운반수단을 700개 씩으로 제한한 주요 핵군비통제조약입니다. 이 조약은 2021년 2월 만료되었지만 유효기간을 5년 연장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이 조약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계에는 핵비확산체제라는 것이 작동하여 핵무기가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것을 억제해왔습니다. 핵비확산체제는 핵무기의 숫자, 성능, 배치, 핵실험 등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많은 조약들과 이 조약의 이행을 감시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같은 기구와 장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기권 핵실험을 금지한 1963년 부분핵실험금지조약(PTBT), 핵실험 규모를 150kt 이하로 제한한 1974년 핵실험규모제한조약(TTBT), 바다 밑바닥에 핵 배치를 금지한 1972년 해상조약(SBACT), 사거리 500~5,500km 중거리 핵무기들을 폐기한 1987년 중거리핵폐기조약(INFT), 핵실험을 전면 금지한 1996년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푸틴 대통령이 탈퇴를 선언한 신전략핵감축조약 등 많은 핵군비통제 조약들이 핵무기의 증강과 확산을 제한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1968년 이전에 핵을 보유한 5개국 이외 추가적인 핵보유국 등장을 금지한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은 핵비확산체제의 헌법에 해당하는 조약입니다. 현재 회원국은 191개국이며 모든 비핵 회원국은 핵무기를 만들지 않을 것과 이를 검증하기 위한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북한 같은 나라는 미국은 핵보유가 되고 왜 우리는 안 되느냐고 반발하면서 핵보유를 강행했지만, NPT 회원국들은 핵무기가 확산되는 것이 인류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는데 공감합니다. 그래서 독일, 일본, 대한민국 등과 같은 선진국들도 NPT를 준수하여 핵보유를 포기하고 있으며, 그 대신 미국이 핵우산으로 이들을 보호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특정 국가들에 의해 핵비확산체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미국과 함께 세계 핵무기의 90% 이상을 보유한 핵강국 즉 핵비확산체제를 수호하는데 막중한 책임을 진 나라임에도 중거리핵폐기조약에 위배되는 핵무기들을 만들어 이 조약을 무력화시켰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침공 후 전세가 여의치 않자 핵사용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핵무기 숫자와 성능이 미국과 러시아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이유로 이들과 비슷한 수준이 될 때까지 어떠한 핵군비통제조약에도 가입하지 않겠다면서 아무런 제약 없이 핵무기를 증강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2002년에 NPT를 탈퇴하고 일체의 사찰을 거부한 채 배째라는 식으로 핵무기 고도화와 미사일 개발에 광분하고 있습니다. 이란은 2015년 서방국들과 합의한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통해 향후 15년간 농축도 3.67% 이상의 농축우라늄을 생산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이듬해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15년 이후에는 자유롭게 핵무기를 만들도록 허용한 합의가 아니냐”라면서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이란이 재조정을 거부하면서 합의가 파기되고 이란의 핵행보는 다시 가속화되었는데, 최근 이란의 포르도와 나탄즈에 있는 농축시설에서 8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이 생산된 정황이 밝혀지면서 이란의 핵보유가 임박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작년 8월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10차 NPT 평가회의는 단 한 줄의 합의도 도출하지 못했습니다. NPT 평가회의는 NPT가 발효된 1970년 이후 매 5년마다 핵보유국들과 비핵국들이 한자리에 모여 핵확산을 예방하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방안들을 도출해왔지만, 이번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자포리자 원전 점령 그리고 핵사용 위협, 중국의 무제한적 핵군사력 증강과 영국과 프랑스의 핵감축협상 거부,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생산 등을 둘러싼 책임 공방으로 아무런 합의문도 없이 폐회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지금 세계 핵질서는 신냉전과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분수에 맞지 않는 핵강국을 꿈꾸는 불량국가들로 인하여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현재로써는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 등이 핵질서를 흔드는데 앞장서고 있는 이단아 국가들일 것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태우,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