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천안함 피격 10주기와 서해의 영웅들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2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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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천안함 피격 10주년입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날 남편을 잃은 아내들과 아들을잃은 부모의 슬픔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 1970년대부터 북한의 서해 도발이 시작된 이래 많은 장병들이 서해 바다를 지키다가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특히 1999년 제1차 연평해전 이후 2010년까지 북한은 다섯 번에 걸쳐 대규모 도발을 자행했고, 이로 인해 숨진 56명의 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2016년 대한민국 정부는 매년 3월 넷째주 금요일을 ‘서해 수호의 날’로 지정하고 숨진 영웅들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해군력을 재건하면서 1973년을 시발점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도발을 시작했습니다. 북한 어선이나 경비정의 NLL 침범이 계속되었고, 1992년에는 정전 이후 40년 동안 해상경계선이 되어온 NLL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조선서해해상경계선'이라는 것을 일방적으로 발표합니다. 황해도와 경기도의 경계지점에서 남서쪽으로 비스듬하게 직선을 그어서 해상경계선으로 하고, 한국 선박들에게는 백령도나 연평도를 드나들 수 있는 좁다란 수로를 열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제안은 대한민국에 의해 즉각 거부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북한의 도발은 1999년 6월 15일 제1차 연평해전, 2002년 6월 29일 제2차 연평해전, 2009년 11월 10일 대청해전,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등으로 이어집니다. 북한 경비정의 NLL침범으로 촉발된 제1차 연평해전에서 손으로 작동시키는 구식 함포를 단 북한 함정들은 첨단 사격통제 장치를 장착한 한국 함정들에 대패합니다. 북한의 어뢰정 한척이 침몰되고 경비정 한 척이 대파되었으며, 북한군 20여 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당합니다.

2002년 제2차 연평해전 역시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들이 퇴각을 요구하는 한국 함정들에게 선제 포격을 가함으로써 촉발되었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무력충돌 방치 차원에서 군에게 선제사격을 하지말도록 지시한 상태였습니다. 북한군이 이를 악용하여 선제사격을 가함으로써 한국 해군은 윤영하 소령 등 여섯 명의 장병을 잃었습니다. 대청해전시에는 한국 해군이 북한군의 선제 사격을 예상하고 대비하고 있었기에, 북한군은 8명의 전사자를 내고 반파된 어뢰정을 끌고 북쪽으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대청해전 직후 북한은 북한군 수뇌인 김격식 총참모장을 황해도 지역의 제4군 군단장으로 임명했는데, 이는 보복 도발을 위한 수순이었습니다. 2010년 3월 26일 북한의 130톤 연어급 잠수정은 백령도 후면에 정박 중인던 한국의 천안함에 어뢰를 발사하여 침몰시키고 46명 장병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이후 구조를 위해 잠수 활동을 벌이던 한주호 준위가 사망함에 따라 희생자는 도합 47명이 됩니다. 그럼에도 북한은 도발을 전면 부인하면서 “남한 정부의 특대형 모략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10년 5월 15일 한국 어선이 어뢰의 추진체를 인양했는데, 조사 결과 북한이 제작한 어뢰로 밝혀졌습니다. 북한의 수출홍보용 책자에 소개된 CHT-02D와 동일하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 1척이 3월 24일 남포 기지를 떠났다가 도색을 바꾼 상태로 3월 30일 기지에 복귀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끝내 도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010년 천안함 공격과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북한군의 서해 도발은 잦아들었지만, 서해에 평화가 정착된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후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더 큰 긴장을 불러 일으켰고, 2018년에는 9·19 남북군사분야합의를 통해 서해 평화수역내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상호 금지하기로 했지만, 일단 등면적 원칙부터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평화수역은 NLL로부터 북쪽으로 50km인 반면 남쪽으로는 85km까지로 내려와 있습니다. 게다가 이 수역은 평양으로부터는 먼 바다이지만 한국에게 있어서는 수도권의 옆구리에 해당하는 가까운 바다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적대행위 금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한국에게 더욱 치명적일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불안감이 10년전 아들들을 잃은 부모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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