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영화배우 최은희의 타계와 북한 인권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18.04.25

지난 4월 16일 원로 여배우 최은희 씨가 향년 92세로 타계했습니다. 최은희는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열 여섯 살인 1942년부터 ‘연극 ’청춘극장‘ 출연을 통해 연기자의 삶을 살기 시작하여 극단 아랑, 극예술협의회 등에서 연기력을 쌓았습니다. 그러다가 1947년 열 아홉의 나이에 영화 ’새로운 맹서‘에 출연하여 단숨에 주목받는 신예로 부상했습니다. 1954년에는 주한미군 위문공연차 방한한 할리우드 톱스타 마릴린 먼로와 함께 공연했고, 이후 1960년대와 70년대 동안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대한민국의 3대 여배우로 군림했습니다. 최은희는 남편인 신상옥 감독과 함께 1960~70년대 영화계를 이끌면서 13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는데, 그녀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는 '성춘향'(1961), '로맨스 빠빠'(1960), '상록수'(1960),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연산군'(1962), '로맨스 그레이'(1963), '벙어리 삼룡'(1964), '빨간 마후라'(1964) 등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두 번의 납치와 두 번의 이혼이 말해주듯 그녀의 삶은 순탄하지 못했으며, 그녀의 삶 자체가 한 편의 비극이었습니다. 최은희는 첫 출연한 영화를 찍으면서 촬영감독 김학성 씨를 만나 결혼에 이르지만 두 사람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길에서 헤어지고 최은희는 북한군에 의해 청천강까지 끌려갔다가 기적적으로 탈출하게 됩니다. 전쟁 직후에는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1954년 3월 세간의 화제를 모으면서 결혼식을 치르게 되지만 23년 만에 파경을 맞이하고 1976년 이혼하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 최은희-신상옥 커플은 한국 영화계를 이끄는 거목으로 실로 눈부신 활약상을 보였습니다..

그랬던 최은희 씨가 1978년 돌연 사라지게 됩니다. 최 씨는 1967년에 자신이 설립한 안양영화예술학교에 해외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1978년 1월 홍콩에 갔다가 홍콩섬 해변에서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납치된 것입니다. 북한은 그 해 7월에 최은희를 찾기 위해 홍콩에 온 신 감독마저 납치함으로써 결국 최은희-신상옥 커플은 북한의 반인륜적 납치극에 의해 북한에서 재회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뜻에 따라 신필름 영화촬영소를 맡아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 ‘사랑 사랑 내 사랑’(1984) 등 17편의 영화를 제작한 후, 1986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북한 영화인 자격으로 참가했다가 북한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스트리아 비엔나 공항에서 현지 미국 대사관으로 직행함으로써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최은희-신상옥 커플은 미국에서 10년 이상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영구 귀국했으며, 신 감독은 2006년 4월 80세를 일기로 먼저 타계했습니다.

배우 최은희의 기구한 삶을 되돌아 보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북한의 인권문제입니다. 권력자가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남의 나라의 배우와 감독을 납치하고 일본어 강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일본인을 납치하는 것은 북한이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권유린입니다. 6.25 전쟁의 포로에 대한 북한의 인권유린은 잔혹하기 짝이 없습니다. 북한은 전쟁 발발 1주년에 즈음해 전선에 뿌린 선전전단에서 1951년 5월22일까지 8만 5천 명의 국군 및 유엔군 포로가 있다고 밝혔으며 정전협상이 시작되기 직전인 1951년 6월에는 노동신문을 통해 10만 8천 여명의 포로를 억류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다가 정전협상이 시작되고 유엔군 측이 공산군 포로 13만 2천 명의 명단을 북한에 제시하자 북한은 국군 및 유엔군 포로가 1만 1599명 뿐이라고 생떼를 부렸고, 유엔군 측이 북한에 억류된 포로의 숫자가 최소한 6만 2천 명이라는 추정치를 제시하자 북한은 5만 명을 이미 석방했다고 주장하면서 유엔군 측의 요구를 일축했습니다.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적어도 4만 명 이상의 국군포로들은 남쪽으로 송환되지 못한 채 탄광 등에서 일하다가 억울하게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현재 남과 북은 역사적인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습니다. 세계의 이목과 한국국민의 관심은 이 회담이 과연 북한의 핵폐기를 이끌어낼 것인가에 쏠렸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진정 책임을 다하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겠다고 작정한다면 핵포기에 더하여 인권문제와 관련해서도 지금까지의 잘못을 반성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지금도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 국적자 516명과 일본인 12명을 포함한 외국인들 그리고 수십 명 정도로 추정되는 생존 국군포로들을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석방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시네 폴슨(Signe Poulsen) 유엔인권서울사무소장은 이번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이 납북자 석방 문제를 중요 의제로 다룰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반인륜적 납치공작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강요당했던 은막의 여왕 최은희 씨의 명복을 빕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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