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성웅 이순신 제독 탄신 474주년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19-05-01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지난 4월 28일이 누구의 탄신일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왜군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구해 낸 이순신 장군의 474주년 탄신일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1591년 영의정 유성룡의 추천으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될 때 까지만 해도 평범하게 공직생활을 해온 무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위국헌신의 무인으로서 자질이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조선의 조정은 당파싸움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었지만, 이순신은 임진왜란 발발 하루 전인 1592년 4월 12일까지도 거북선을 점검하고 화기를 실험한 것으로 난중일기에 적혀 있습니다. 이후 7년간 조선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인해 온통 쑥대밭이 됩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조선에서 치러진 전투는 총 70회가 넘으며 여기에는 30여 회의 해전도 포함됩니다. 이순신은 자신의 지휘 하에 치른 23회의 해전에서 모두 승리함으로써 23전 23승이라는 불후의 신화를 남기는데 이 중에서도 한산도 대첩, 명량 해전 그리고 노량 해전은 이순신의 3대 대첩이라 불립니다. 이 3개의 해전에서 이순신 제독은 적은 수의 함선으로 엄청난 양적 우세를 가진 왜군을 격파했습니다.

1592년 8월 14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한산 대첩에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제독은 학날개 전법을 사용했는데, 이는 수적으로 열세인 아군의 함선들로 학날개 모양의 반타원을 만들어 적들을 그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격파하는 포위 섬멸 전술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전투 때마다 물길의 시간과 때를 파악하여, 적군의 배들이 좁은 해협을 통과하기를 기다렸다가 길목에 배치한 함선으로 공격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후 이순신은 정치적 모함을 받아 1597년 2월 삼도수군통제사 직위를 박탈당하고 죄인의 신분으로 서울로 압송되어 사형위기에까지 몰렸다가 방면되어 백의종군에 처하게 됩니다. 그동안 이순신의 뒤를 이어 제2대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 원균은 정유재란으로 다시 조선을 침공한 왜군과 맞붙어 1597년 7월 칠전량 해전에서 대패하고 전사합니다. 이후 조선 수군에게 남겨진 것은 판옥선 12척뿐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4년동안 구축해 놓은 조선 수군이 와해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조정은 이순신을 다시 수군통제사에 보임했고, 1597년 10월 25일 이순신은 12척의 함선으로 133척의 왜군과 맞서 싸워 승리하는데, 이것이 명량 해전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진도와 화원반도 사이에 있는 좁은 바다로 조류가 매우 빠른 울돌목으로 왜군 함선들을 유인하여 대파하는 기지를 발휘한 것입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죽으려 하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하면 반드시 죽는다”라는 이 말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 대첩을 앞두고 부하들에게 한 훈시였습니다.

이후 1598년 8월 18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함으로 왜군은 철군을 서두르게 되는데,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 함대가 노량 앞바다에서 퇴각하는 왜군과 벌인 마지막 해전이자 조선 수군이 승리한 최대 규모의 해전이 노량 해전이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은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고 맙니다. 이순신 장군은 아군의 동요를 염려하여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1598년 12월 16일부로 생을 마감합니다.

정유재란이 끝난 후 선조 임금은 이순신이 풍전등화의 조선을 구했다고 크게 치하하면서 그에게 사후 우의정직을 내렸고 그리고 6년 후 좌의정 겸 1등 공신으로 책정했으며, 이후 광해군 임금은 영의정직을 내렸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사후 45년에 충무라는 시호를 받았는데, 조선조를 통틀어 이 시호를 받은 사람은 11명뿐이었습니다. 이렇듯 이순신은 무관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54세의 나이로 노량 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 우국충정 명장으로서의 삶을 살았으며, 그의 생애, 리더십, 살신성인, 나라사랑, 멸사봉공, 위국헌신 등은 오늘날에도 후세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진실로, 이순신 장군은 남과 북의 주민 모두가 기억하고 기려야 할 한민족의 영웅입니다. 광화문 광장에 우뚝 선 이순신의 동상은 오늘도 충정어린 눈빛으로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