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핵전쟁으로 비화될까 우려하는 국제사회에 북한이 핵전쟁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북한은 4월 25일 밤에 김일성광장에서 거행된 조선인민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화성-17형 대륙간탄도탄,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화성-8형 극초음속 미사일, 신형 전술유도무기 등을 선보이면서 다시 한번 핵무력을 과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무기가 전쟁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다른 사명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것을 북한이 종래에 강조했던 ‘방어용 및 억제용 핵무력’ 원칙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선제 핵사용 불사’ 전략을 선언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핵전략 이론상 억제용 핵무기와 전투용 핵무기는 상당히 다른 개념을 가집니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이 맨 처음 발전시킨 핵전략은 ‘상호확실파괴(MAD) 전략’으로 불리는 핵억제 전략이었습니다. 이 전략 하에서 핵무기는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무기로 그리고 핵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전쟁으로 전제되었으며, 핵무기는 핵전쟁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보유만 해야 하는 무기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핵전투(nuclear warfighting) 전략’이라는 제2세대 핵전략이 등장했는데, 이 전략은 상대가 어떤 도발을 하느냐에 따라서는 제한적인 핵전쟁도 불가피할 수 있고 핵무기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전략의 발전과 함께 군사목표에 국한하여 사용하는 저위력 전술핵들이 개발된 것이며, 테러세력이나 불량국가들에 의한 핵공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전술핵의 필요성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핵강국들은 핵전쟁 발발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기와 상황에 따라 먼저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핵 선제불사용(NFU) 원칙을 발표해왔으며, 이와 함께 미국은 불량국가들로부터 핵위협을 받는 비핵 동맹국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이 핵공격을 받으면 보호하겠다는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이 한국, 일본, 대만, 서유럽의 동맹국 등에게 핵우산을 약속하고 있는 배경입니다.
그런가 하면, 새로이 핵보유를 꾀하는 신생 핵국들은 국제사회의 견제와 제재를 회피하는 외교수단으로 ‘핵 선제불사용’ 약속을 활용해 왔습니다. 중국은 1964년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이 되기 직전까지 “인류의 평화를 위해 세계의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즉, 겉으로는 비핵 평화를 주장하면서 뒤로는 핵실험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북한도 2006년 첫 핵실험 직후 핵무기를 억제와 방어용으로만 보유한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는 국제사회를 안심시켜 무탈하게 핵보유를 인정받고자 하는 ‘겸손 코스프레’이자 외교적 제스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2013년 ‘자위적 핵보유국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데 대한 법,’ 즉 ‘핵보유법’의 제정을 통해 핵무력을 미국의 핵위협에 대처하는 정당한 방위수단으로 정의했으며, 특히 제5조에서는 “적대적 핵보유국과 야합하여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비핵국에 대해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했습니다. 얼핏 비핵국인 한국에 대해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이는 “남한이 핵보유 동맹국인 미국과 야합하여 우리에게 맞서는 경우 남한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서 사실상 ‘대남 핵사용 불사’를 천명한 것입니다. 때문에 이번 열병식에서 김 위원장이 방어와 억제 이외에 또 다른 핵무기의 사명을 언급한 것은 다시 한번 핵사용 원칙을 재천명한 것이며, ‘겸손 코스프레’ 에서 벗어나 핵강국의 입지를 선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하여 북한 자신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의 식량 사정이 악화되고 있는 시기에 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돕는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을 향해 ‘3차 대전과 핵전쟁’ 가능성을 경고하여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중에 북한까지 나서서 대륙간탄도탄, 극초음속미사일, 변칙기동탄도미사일, 전술핵무기용 단거리 미사일 등을 연달아 쏘고 강화된 핵전략을 선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스럽습니다. 북한의 이러한 공세적인 핵태세는 필연적으로 한국, 미국, 일본 등의 대응을 초래할 것인데, 그것이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인지는 더욱 의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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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