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북핵 문제와 리처드 넌-루거 프로그램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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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8일 미국의 전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리처드 루거(Richard Lugar) 씨가 향년 87세로 별세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2월의 하노이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미국과 지루한 신경전을 벌이다가 5월 4일과 5월 9일 돌연 두 차례에 걸쳐 방사포와 미사일을 발사하는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북한 핵문제가 다시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을 목도하면서 세계 핵문제 해결을 위해 투신했던 루거 의원의 발자취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리차드 루거 의원은 1932년 미국 인디아나주에서 출생하여 옥스포드 대학을 나왔고, 해군에서 복무한 후 1968년부터 1976년까지 인디아나폴리스의 시장으로 재직했습니다. 1976년부터는 공화당 소속으로 상원의원에 당선되어 연방의회에 진출했는데 이후 2006년까지 연거푸 당선되면서 최장수 상원의원 중 한 사람이 됩니다. 그의 임기중 특히 돋보이는 것은 상원 외교위원회 의장을 역임했던 1985년부터 2007년까지 핵문제와 관련한 그의 업적이며, 특히 구 소련이 와해되던 1991년을 전후한 그의 핵비확산활동은 세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었습니다.

루거 의원은 소련연방 해체와 함께 구 소련의 핵무기들을 가진 채 독립한 신생국들의 핵무기를 폐기하거나 러시아에 반납하게 함으로서 핵보유국의 숫자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데 골몰했습니다. 그래서 민주당의 샘 넌(Sam Nunn) 상원의원과 함께 유명한 ‘넌-루거법’을 발의하게 됩니다. 이 법은 소련의 붕괴로 비자발적으로 핵을 보유하게 된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 신생국들에게 미국이 경제지원을 제공하는 대가로 핵무기, 화학무기, 운반체계 등을 폐기하도록 유도하는 ‘협력적 위협감소 프로그램(Cooperative Threat Reduction Program)’을 실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일명 ‘넌-루거 프로그램’이라고도 불립니다. 미국은 이 프로그램에 따라 4년 동안 총 16억 달러 규모의 예산을 마련하여 해당 국가들을 지원하고 이들이 보유한 핵무기들을 전량 폐기하거나 러시아로 반납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넌-루거 프로그램’에 따라 이들 신생독립국들에 배치되어 있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한 7천여 개의 핵탄두, ICBM 격납고 500여 개, 폭격기 130여 대, 핵잠수함 27척, 핵실험 터널 194곳 등이 폐기 또는 회수되었으며, 핵개발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에게는 새로운 직장이 알선되었습니다. ‘넌-루거 프로그램’은 특히 우크라이나에서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미국은 1994년에 미-러-우크라이나 간 3자합의(Trilateral Agreement)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핵포기 합의를 받아내고 그 대가로 1999년까지 약 5억 7천만 달러의 지원금을 제공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과 함께 보유하게 되었던 SS-19, SS-24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2,000개의 핵탄두를 폐기하거나 러시아에 반납했으며, 모든 미사일 사일로들을 해체하게 됩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핵무기 대신 원자력의 첨단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NATO와의 협력을 통해 서방세계에 편입되는 과정을 보였습니다.

이렇듯 루거 의원은 핵비확산과 관련하여 역사적인 업적을 남긴 정치인이었으며, 북핵 문제에도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2006년에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해체와 미북 관계 정상화를 골자로 하는 '북핵 해법 로드맵' 입법화를 추진한 적이 있으며, 세계 핵평화에 대한 그의 관심은 정계를 떠난 후에도 이어져서 2018년 4월 워싱턴포스트지(WP) 기고를 통해 넌-루거법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북한이 넌-루거 방식을 받아들였다면 북핵 문제는 진작에 해결되었을 것입니다만, 북한에게는 활발한 경제개발과 대외개방 자체가 북한의 폐쇄적 체제와 정권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북한 만의 ‘체제 딜레마’가 있습니다. 게다가 핵 지렛대를 이용하여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이루어 내겠다는 불변의 대남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쉽사리 이런 방식의 핵 해결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답답합니다.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북핵 문제를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리처드 루거 의원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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