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룩셈부르크에서 울려 퍼진 아리랑
2023.05.17
지난 5월 8일 룩셈부르크의 한 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아리랑이 울려 퍼졌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을 열창한 것은 룩셈부르크 한인회장 박미희 씨였고 룩셈부르크 세관이 운영하는 관악단이 반주를 했습니다. 장례식의 주인공은 4월 24일 향년 90세로 별세한 룩셈부르크의 6·25 참전 용사 질베르 호펠스 씨였습니다. 호펠스 씨는 한국전쟁 참전 후 귀국 후에도 서투른 한국말로 아리랑을 즐겨 불렀고 세관은 그가 귀국 후에 다닌 직장이었습니다. 호펠스 씨는 자신이 죽으면 아리랑을 불러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의 가족들은 이 사실을 현지 한인회에 연락하여 아리랑을 불러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리하여 19세였던 1952년 6·25 전쟁에 자원 참전하여 백마고지 등에서 싸웠던 호펠스 씨는 이날 대한민국 국가보훈처가 보내준 추모패 앞에 누워서 아리랑을 추모곡으로 들으면서 영면에 들어간 것입니다.
6·25 전쟁 당시 룩셈부르크는 인구 20만 명에 지나지 않는 소국이었습니다. 그래서 룩셈부르크는 1개 소대 병력인 48명을 파병하여 700명 규모의 벨기에 대대의 A중대에 속한 룩셈부르크 소대로 참전했습니다. 비록 소대 병력에 지나지 않았지만 22개 참전국 중 인구에 비해 가장 많은 군대를 보낸 나라였습니다. 룩셈부르크 소대를 포함한 벨기에 대대는 1951년 1월 31일 부산항에 도착하여 미군 제3사단에 배속되어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1951년 4월 하순 제5차 공세에 나선 중공군은 서부전선의 임진강, 중부전선의 가평, 강원도 화천의 사창리 등을 돌파하는 남진을 시도했습니다. 벨기에 대대는 임진강에서는 영연방 제29여단에 배속되어 중공군의 공세를 받았는데, 임진강 북방 금굴산에서 4월 22~25일 중공군 제188사단의 공격을 저지하고 고지를 고수하여 제29여단의 안전한 철수를 도왔으며, 이후 제29여단은 임진강 남안 파주군 적성면 설마리에서 중공군 제65군을 대파함으로써 중공군의 서울 재점령 기도를 차단했습니다.
학당리 전투는 1951년 10월 11~13일 중부전선에서 미 제3사단이 중공군 제78사단의 공격을 방어하던 시기에 벨기에 대대가 철원과 평강 사이의 학당리 388고지에서 중공군의 집요한 야간 파상공격을 백병전을 통해 격퇴한 방어전투였습니다. 잣골 전투도 1953년 2월 26일부터 4월 21일까지 55일 동안 벨기에 대대가 김화 서북방 5km 지점 잣골에서 중공군 제70사단의 공격을 격퇴한 방어전투였습니다. 이렇듯 룩셈부르크 소대는 벨기에 대대의 일원으로 6·25전쟁에 참전했고 호펠스 씨는 1952년 3월에 부산으로 입항하여, 1953년 1월까지 벨기에 대대 소속 기관총 사수로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그는 1952년 10월 6~15일 한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 3개 사단이 맞붙었던 철원의 백마고지 전투를 일기로 기록했는데, 그의 일기는 룩셈부르크 전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요산 앞에는 벨기에군과 룩셈부르크군의 전공을 기리는 벨기에ㆍ룩셈부르크 참전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호펠스 씨의 조국 룩셈부르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룩셈부르크는 독일, 프랑스 그리고 벨기에 사이에 있는 내륙국으로 제주도보다 조금 더 큰 2,586㎢의 면적에 65만여 명의 인구를 가진 소국입니다. 입헌군주국으로써 형식상으로는 대공이 다스리는 나라이지만 실제로는 의회정치를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국민의 태반이 굶주렸던 룩셈부르크가 이룬 선진화는 실로 많은 나라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룩셈부르크는 자유민주주의의 도입과 함께 국경을 외국에 개방하는 결정을 내렸고, 개방경제로 세계와 소통·교류하면서 철강산업 선진국이자 글로벌 금융허브로 성장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룩셈부르크는 개인소득 13만 5천 달러로 부동의 세계 1위입니다. 물론 한국도 개방경제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에 속합니다. 오늘날 한국의 1인당 소득은 약 4만 5천 달러로 일본과 서유럽 국가들과 함께 세계 30위 내외입니다. 폐쇄경제체제를 가진 북한의 경우는 이와는 정반대인 것 같습니다. 국제통화기금, 유엔, 세계은행 등은 북한을 통계자료가 없는 나라로 분류하면서 콩고, 수단, 니제르, 모잠비크 등 세계 최빈국들의 수준인 1천 달러 미만의 개인소득 국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룩셈부르크의 성공을 본받아 남북한 모두가 함께 잘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태우,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