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 추념식
2019.06.26
6월이 되면 유럽에서는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에서 펼쳐진 사상최대의 상륙작전을 기념합니다. 지난 6월 6일에도 프랑스 서부해안 노르망디 지역의 주노 해안에서 16개국의 20여 명의 정상들이 모여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을 기념했습니다. 기념식에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참전국의 정상들이 참가했는데, 2차 세계대전을 도발했던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나란히 해변에 서서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1943년 5월, 그러니까 나치 독일이 유럽 전역을 점령하고 있던 시절입니다. 연합군은 유럽을 해방시키기 위해 1944년 5월 1일에 대규모 상륙작전을 실시하기로 했고, 8월 퀘벡 회담에서 계획서를 작성하고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장을 연합국 원정군 최고사령부(SHAEF) 사령관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리하여 미군 22개 사단, 영국군 12개 사단, 캐나다군 3개 사단, 폴란드군 1개 사단, 프랑스군 1개 사단 등 연합군 39개 사단 등 백만 명의 병력을 노르망디에 상륙시키기로 결정합니다. 노르망디 지역은 가파른 절벽이 많고 조수간만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독일군이 상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다른 지역에 비해 적은 수비병력을 배치하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D데이가 가까워지면서 독일군도 상륙 계획을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에 연합군은 다양한 기만 작전을 펼쳤습니다. 유럽대륙과 영국이 가장 가까운 곳은 프랑스의 깔레(Calais) 지역인데, 연합군은 이곳이 상륙지역인 것처럼 위장 무전통신을 주고받았으며 근처에서 해군 기동연습을 했습니다. 깔레 지역의 맞은편 영국에 가짜 부대를 편성하고 모형 전차를 집중 배치했습니다. 6월 6일 자정 연합군은 대규모 공중폭격과 함포 사격을 퍼부었고 미군, 영국군, 캐나다군 등으로 구성된 2만 4천 명의 공수부대를 투하했습니다. 독일군의 폰 룬트슈테트 사령관은 이것을 깔레 지역에 주둔한 독일군을 노르망디로 유인하기 위한 위장작전으로 오판하여 독일군 제15군단을 계속 칼레 지역에 묶어 두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연합군 공군이 프랑스 해안에 설치된 독일군 레이더를 파괴했고, 알루미늄 조각들을 살포하여 독일군 레이다를 교란했습니다.
06시 30분, 마침내 상륙이 개시되었습니다. 약 80km의 길이를 가진 노르망디 해안은 유타, 오마하, 골드, 주노, 소드 등 다섯 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상륙에는 전함 6척, 순양함 22척, 구축함 및 프리깃 119척, 지원함 289척, 지뢰제거함 277척, 상륙정 5,000척, 전투기, 대지공격기, 폭격기 등이 동원되었고, D데이 당일 연합군 16만 명이 상륙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피해가 있었고, D데이 하루 동안만 연합군은 1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기록했습니다. 연합군이 상륙한 골드 해변 등은 비교적 수월했으나, 캐나다군이 상륙한 주노 해변과 미군이 상륙한 오마하 해변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이후 후속 상륙이 이어지면서 6월 말까지 약 90만 명의 연합군이 상륙하여 베를린을 향한 진격을 개시했고, 노르망디 상륙 이후 11개월 후에 나치 독일은 패망하게 됩니다. 어쨌든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연합군이 유럽을 해방하고 독일 본토로의 진격을 개시함으로써 2차 대전 승리를 이끌었던 기념비적인 작전이었으며, 참전국 지도자들은 그 때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받아들이면서 미래를 향한 협력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노르망디 75주년 추념행사에서 영국의 메이 총리가 "그들이 목숨을 바친 덕분에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서 더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감격스럽게 메이 총리를 포옹했습니다. 그리고는 연합국 참전 용사들을 향해 "프랑스는 여러분에게 자유를 빚졌습니다. 프랑스를 대표해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전투의 열기 속에서 만들어진 우리의 소중한 동맹은 그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화답했습니다.
북한은 6.25 전쟁을 ‘미 제국주의자들과 남조선 괴뢰군의 침략을 막아낸 전쟁’이라 부릅니다. 정전일인 7월 27일을 ‘미 제국주의자들을 이긴 전승기념일’로 부릅니다. 참으로 당치 않은 말입니다. 6.25 전쟁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나라는 북한뿐입니다. 세계 역사에서 6.25 전쟁은 한반도 공산화를 원했던 북한이 방심하고 있던 남한을 기습 남침하여 단숨에 낙동강까지 진격하여 공산통일을 눈앞에 두었다가 유엔군의 참전으로 적화통일에 실패한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독일 지도자들은 과거 역사를 왜곡하지 않습니다. 독일의 지도자들은 지금도 제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태인을 학살한 것에 대한 사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노르망디 75주년 기념식에서도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내가 이 자리에 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역사의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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