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미국의 243번째 독립기념일과 조지 워싱턴 대통령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1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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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4일은 미국의 제243주년 독립기념일이자 건국기념일이었습니다. 1776년 13개주 대표들이 모인 대륙회의가 독립선언문를 발표한 날이 바로7월 4일이었습니다. 이날이 되면 미국 전역에서 화려한 불꽃놀이와 퍼레이드가 펼쳐지는데, 그 중에서도 중심적인 행사는 미국 정치의 중심이자 수도인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기념행사입니다.

미국인들은 독립기념일이 되면 독립의 영웅인 조지 워싱턴을 회상하고 추모합니다. 조지 워싱턴은 1732년 버지니아 주 웨이크필드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측량기사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1752년에 영국군 소속 버지니아 민병대에서 참가하여 나중에 영국 정규군의 중령까지 진급하게 됩니다. 즉, 이때부터 조지 워싱턴은 군인의 길을 걸은 것이며, 프랑스 및 인디언과의 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 정착민들은 영국의 가혹한 식민통치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고, 마침내 1775년에는 13개 주 대표들이 모여 대륙회의를 개최하고 독립민병대를 조직하여 독립전쟁을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이듬해인 1776년에 독립선언문을 발표하는데, 이때 독립민병대 총사령관으로 추대된 것이 조지 워싱턴이었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영국군에 비해 병력, 훈련, 장비, 전술 등 모든 분야에서 열세인 민병대를 이끌고 사라토가 전투, 요크타운 전투 등을 승리로 이끌면서 영국의 항복을 받아냈고, 1783년 파리강화조약으로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독립국가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조지 워싱턴의 지도력은 이 순간부터 더욱 빛을 발하게 됩니다. 독립전쟁 승리 직후 조지 워싱턴은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총사령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인 마운트버넌으로 돌아가 평범한 농부의 길을 택합니다. 하지만 미국 국민이 강력히 그를 원하여 결국 조지 워싱턴은 정계로 들어오게 되고, 1789년 미국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고 4년 후 재임에도 성공했습니다. 두 번의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조지 워싱턴은 청교도 정신에 입각한 건국이념에 따라 민주주의 공화 정치를 정착시켰으며, 널리 인재들을 등용하여 연방주의를 확립하고 법치를 세우는 등 신생국가 미국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그리고는 대통령 퇴임 후 2년만인 1799년 68세의 나이로 서거했습니다.

미국은 250년이 채 안되는 짧은 역사를 가진 나라이지만 오늘날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초석을 닦았던 조지 워싱턴은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입니다. 미국의 도처에는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딴 상징물들이 널려 있습니다. 우선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가 그렇고, 미국의 서북부에는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딴 워싱턴 주(state of Washington)가 있습니다. 10만톤급 핵추진 항공모함인 조지 워싱턴함은 현재 미 해군 7함대의 핵심전력으로서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워싱턴 DC에는 그의 이름을 딴 조지 워싱턴대학이 있으며, 뉴욕에는 맨하탄과 뉴저지의 포트리를 연결하는 거대한 조지 워싱턴 다리가 있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건국 영웅, 전쟁 영웅, 경제개발 영웅 등을 추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사회주의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께인 7월 8일은 북한에서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일성 주석이 별세한지 25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종신 수령으로서 사망시까지 북한을 통치했고, 후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그랬습니다. 쿠바의 카스트로도 사실상 종신 대통령으로 통치했고 중국의 모택동과 등소평 주석도 그랬습니다. 여기에 비하면 조지 워싱턴은 종신 대통령직을 사양함으로써 더욱 추앙받는 지도자가 된 경우입니다. 조지 워싱턴은 미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거인단 전원의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선출되고 재선된 지도자였고, 재선을 마친 후에는 국민이 종신 대통령이 되어 주기를 강력히 희망했지만, 조지 워싱턴은 장기집권이 가져올 반민주적 폐해들을 예상하여 끝내 이를 사양했습니다. 이후 1944년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4선 대통령에 당선되기 이전까지 미국의 모든 대통령들은 8년이상 재임하지 않는 전통을 지켰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 이후에는 3선을 금지하는 헌법개정이 있었지만 워싱턴 대통령 시절에는 그런 법이 없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조지 워싱턴은 원로 자격의 국정에 참여해 달라는 요구조차 거부하고 철저하게 평민으로 살았습니다. 미국 국민들은 그를 민주주의를 위해 스스로 장기집권을 포기하는 ‘절제의 리더십’을 발휘한 대통령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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