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어느 조종사 부자(父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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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충청북도 청주시 공군사관학교에는 ‘기인동체(機人同體)’라는 글귀가 새겨진 흉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는 박명령 중령과 박인철 소령이 나란히 안장되어 있습니다. 세계 공군 역사상 아버지와 아들인 두 조종사가 나란히 영면하고 있는 곳은 없을 것입니다. 공군사관학교 흉상에 적인 ‘기인동체’란 전투기와 한 몸이 되어 하늘을 날다가 유명을 달리한 조종사들을 추모하는 글귀입니다.

지난 7월 5일 한국의 국방홍보원이 운영하는 국방TV에는 16년 전에 순직한 박인철 소령의 어머니가 아들과 재회하는 모습이 방영되어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남편 박명렬 중령의 아내이자 박인철 소령의 어머니인 이준신 여사가 인공지능(AI)으로 환생한 아들과 재회한 것입니다. 이날 TV는 공군이 남편과 아들을 떠나보내고 슬픔 속에 살아온 한 여인을 위로하기 위해 박인철 소령을 AI로 재구성하여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처럼 어머니와 대화를 하도록 한 것입니다.

남편 박명렬 중령은 공군사관학교를 26기로 졸업한 F-4E 팬텀 전투기의 조종사로서 1984년 3월 14일 한미 연합 팀스피리트 훈련에서 야간 최대출력 비행을 하던 중 추락하여 31세의 나이에 순직했습니다. 이 때 아들 인철은 네 살이었고, 여동생은 두 살이었습니다. 남편을 잃은 이준신 여사는 눈앞이 캄캄했지만 국가가 제공하는 보훈으로 두 남매를 훌륭히 키워냈습니다. 16년 후인 2000년 아들은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면서 공군사관학교 52기로 입학하여 KF-16D 전투기 조종사가 되어 제20전투비행단에서 영공수호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7년 7월 20일 박인철 대위는 서해안 상공에서 야간비행 훈련 중 추락사고로 순직했습니다. 박인철 대위는 결혼을 앞둔 27세의 청년이었습니다. 박 대위의 시신이 바다에 실종된 상태여서 미리 잘라 둔 머리카락을 아버지 앞에 묻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이 여사는 남편을 잃은 지 23년 만에 아들까지 하늘에 바친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랬던 아들이 인공지능으로 부활하여 조종복을 입은 모습으로 눈앞에 다가오자 어머니는 금세 눈시울을 붉혔고 손수건을 꺼내 연신 눈물을 닦았습니다. 아들은 웃는 얼굴로 "엄마 인철이에요. 너무 보고싶었어요"라고 인사하고는 "엄마, 조종사 되는 거 말리셨는데 이렇게 돼서 죄송해요. 저는 원하던 일을 하다 왔으니까 여한이 없어요”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어머니는 애써 눈물을 감추면서 “인철아 보고 싶었다.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너무 행복하고 고마웠단다”라고 하고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박 소령은 이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던 사관학교 동기생 김상훈, 이두원 중령에게도 “우리 야구도 보고 여행도 다니고 참 추억이 많았지”라고 말을 건네자 이들의 눈시울도 금방 붉어졌습니다. 이 눈물겨운 대화는 ‘필승’을 외치면서 거수경례를 하는 아들을 향해 어머니도 거수경례와 함께 “내 아들, 필승!”이라고 외치면서 끝을 맺었고 이 장면을 지켜본 국민들도 함께 울었습니다.

북한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은 800여 대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모두가 40년이 넘는 노후기들인데다 연료부족으로 조종사들의 연평균 비행시간은 12시간 밖에 되지 않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엔진 내구성, 안전성, 성능 등에서 크게 뒤지는 노후기들이라 북한에서도 이런 저런 항공기 사고들이 발생하겠지만 국가가 어떤 보상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대한민국은 비행기의 성능, 순국장병에 대한 보상 등 여러 측면에서 공군 강대국이자 선진국입니다. 2021년 KF-21 보라매의 첫 시제기가 출고되면서 한국은 초음속 전투기를 생산하는 여덟 번째 나라가 되었습니다. 현재 F-16, F-15K, F-35 등 신예기들이 주축인 410여 대의 전투기와 E-737 공중조기경보통제기와 KC-330 공중급유수송기,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등을 늘려나가고 있고, F-4와 F-5를 대체할 120대의 국산 4.5세대 전투기 F-21 보라매를 구매할 계획이며, 조종사들은 매년 170여 시간의 비행훈련을 통해 전투력을 숙련시킵니다. 순국자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인 보훈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호국장학재단, 하늘사랑장학재단, 바다사랑해군장학재단, 해병대의 덕산장학재단, 기업이 설립한 호국재단 등이 유가족을 돕거나 유자녀의 학업을 돕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공군 조종사들은 국가를 믿고 어제도 오늘도 영공 수호를 위해 힘차게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