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파리 올림픽의 성화는 꺼지고
2024.08.21
파리 올림픽의 성화가 꺼졌습니다. 7월 26일 개막되어 206개국 선수들이 17일 동안 열전을 벌인 33회 파리 하계올림픽이 8월 12일 폐막식과 함께 막을 내렸습니다. 폐막식이 시작되자 화려한 조명과 함께 오륜링이 등장하면서 화려한 축하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위아 더 챔피언스(We are the Champions)' 노래가 흘러나왔을 때에는 선수와 관중은 합창했습니다. 이어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연설을 했고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한 여성 마라톤 우승자인 네덜란드의 시판 하산에게 금메달을 수여했습니다. 바흐 위원장이 2028년 제34회 올림픽이 열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장에게 올림픽기를 이양하자 성화는 꺼지고 ‘아듀 파리’를 외치면서 위대한 인류의 대축제는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올림픽은 개막 이전부터 많은 관심거리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더운 날씨에 정상적인 대회가 될 수 있을까, 테러가 발생하지 않을까,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메달 경쟁에서 1위를 차지할까, 아시아 국가들이 얼마나 선전할 것인가, MZ 세대 선수들이 얼마나 선전할 것인가 등 흥미로운 화제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한국 국민은 8년 만에 남북이 나란히 참가하는 올림픽에서 어떤 성적을 나올지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은 무탈하게 잘 끝났고, 우려했던 테러 공격도 없었습니다. 전체 메달 숫자에서 미국이 126개로 91개인 중국을 크게 앞서면서 1위를 지켰으며, 그다음은 일본, 호주,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한국, 이탈리아, 독일 등이 10위까지를 차지했습니다.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3개국이 금메달 73개 등 168개의 메달을 획득함으로써 크게 신장한 아시아 파워를 보여주었습니다.
남북 간의 대결은 한국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한국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 등 도합 32개의 메달을 획득하여 과거에 거둔 최다 메달 기록을 갱신하면서 8위를 차지했는데,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래 가장 적은 144명의 선수단을 파견하여 거둔 성과이기에 더욱 빛났습니다. 한국은 몬트리올 올림픽에 50명 선수단을 보냈었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에는 210명, 1988년 서울 올림픽에는 477명의 선수단을 참가시키는 등 통상 200~300명 규모의 선수단을 보내왔습니다. 북한은 2020 도쿄 올림픽 불참 이후 8년 만에 참가하는 파리 올림픽에 16명이라는 미니 선수단을 파견하여 은메달 2개와 동메달 4개 등 6개의 메달을 획득하여 68위를 차지했는데, 선수단 규모에 비하면 결코 나쁜 성적은 아닙니다. 북한은 탁구, 다이빙, 여자 복싱 등에서 선전했습니다.
소수 정예로 ‘파리의 기적’을 만들어낸 한국 선수단은 수많은 화제들을 남겼고, 젊은 MZ 세대 선수들의 선전은 국민을 열광시켰습니다. 한국은 양궁, 사격, 펜싱, 태권도, 여자 역도, 여자 복싱, 탁구, 배드민턴, 유도 등에서 선전했는데, 남자 양궁의 김우진과 여자 양궁의 임시현은 금메달 세 개씩을 수확하여 3관왕이 되었고, 펜싱에서는 오상욱이 2관왕으로 등극했습니다. 탁구의 신유빈, 배드민턴의 안세영, 태권도의 박태준 등은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메달을 획득하여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평생 매월 750달러(100만 원)의 연금을 받고, 은메달은 560달러(75만 원), 동메달은 390달러(52만 원)을 받습니다. 후원사나 소속사에서 주는 1만 달러에서 10만 달러에 이르는 격려금도 받습니다. 고향에 돌아가서도 영웅 대접을 받습니다. 대구체육고 2학년인 반효진 선수는 16세의 나이로 사격 10m 공기소총에서 금메달을 따고 학교로 돌아왔는데, 강당에 모인 전교생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씁쓸함을 남긴 대목들도 없지 않습니다. 개막식 때에 16명의 북한 선수들이 60여 명의 남성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을 본 탈북민들은 선수들의 망명을 막기 위해 동행한 보위 요원들이 많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북한이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을 훼방했던 사실을 기억하는 국민도 많습니다. 당시 북한은 공산권 국가들을 동원하여 한국의 올림픽 유치를 막으려 했고, 올림픽 직전인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 테러는 소름 끼치는 기억입니다. 대한항공 858기는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를 떠나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공항과 태국의 돈므앙 공항을 경유하여 서울로 오는 민항기였습니다. 북한 공작원 김현희와 김승일은 폭발물을 기내에 심어 두고 아부다비에서 내렸고, 비행기는 인도양 상공에서 폭발했습니다.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아부다비에서 검거된 두 공작원은 청산가리로 자살을 시도했지만, 한국에서 파견된 요원들의 저지로 김현희는 자살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압송되었습니다. 김현희는 재판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대한민국은 그녀를 사면했습니다. 김현희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을 경호했던 국정원 직원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고, 지금은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현희는 한국에서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으로 벌어들인 인세 약 64만 달러(8억 5천만 원)을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유족에게 위로금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무서운 테러 훈련을 받고 115명의 국민을 살해했지만 크게 회개하고 반성하는 북한 공작원을 국민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파리 올림픽의 성화는 꺼졌지만, 올림픽이 남긴 좋고 나쁜 기억들은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남북이 하나가 되어 선수단을 꾸린다면 더 좋은 성적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새삼 가슴이 에이는 분단의 아픔이 느껴집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