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유엔 개혁론과 지구종말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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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국제연합(UN)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1945년 창설된 유엔은 최대의 국제기구로써 평화-안전-인권이 위협받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중재, 제재, 군사행동 등을 통해 문제 해결을 노력해왔습니다. 1950년 북한군의 6·25 남침시 유엔군을 파견하여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준 것도 유엔이었습니다. 그랬던 유엔이 ‘무용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유엔은 지금까지도 각종 지역 분쟁,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 이란의 핵개발 추진 등으로 도전을 받아왔지만,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부터는 유엔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분출하고 있습니다. 큰 그림에서 보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전체주의 나라들(axis of tyrannies)’이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남용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엔은 본부에 총회,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사무국, 경제사회이사회, 국제법재판소(ICJ) 등 5대 기구를 두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 수십 개의 산하기구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5대 기구 중 오직 안보리만이 경제·외교 제재, 군사 행동 등 강제력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에 안보리를 빼고는 유엔을 말할 수 없습니다. 안보리 이사회는 15개 이사국으로 구성되며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국은 무기한의 임기와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이며,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의결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가 1991년 독립시 자국에 잔류되었던 구소련의 핵무기를 반환·폐기하는 조건으로 미·러·영 3국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국경선을 보장했던 1994년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각서’를 어긴 것이었고, 국경선 존중과 국제평화를 지향하는 유엔헌장과도 정면으로 상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침공 다음날인 2월 25일 긴급 소집된 안보리에서 러시아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은 러시아가 ‘셀프 거부권’을 행사하고 중국과 인도가 기권함으로써 부결되었습니다. 9월 30일에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 합병을 규탄하는 결의안이 제출되었지만, 러시아의 거부와 중국의 동조로 부결되었습니다. 또한 중-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추가제재 결의안을 번번이 거부했습니다. 안보리는 2009년 결의 1874호를 통해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북한의 모든 발사’를 금지했고 2017년 11월 29일 북한의 ICBM 발사시에는 결의 2397호를 통해 추후 ICBM 발사시 자동적으로 제재를 추가하기로 합의했지만 이 합의는 무시되었습니다. 이렇듯 중-러는 2017년 이래 십 수 차례의 대북 제재안을 무산시키면서 북한의 핵개발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안보리 개혁을 주창하고 유엔총회가 거부권 제도를 규탄하는 성토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작년의 77차에 이어 금년의 78차 유엔총회에서도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바이든 미 대통령, 기시다 일본 총리 등 많은 정상들이 안보리 개혁을 촉구했습니다.

그럼에도 안보리 개혁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현재 유엔헌장 개정, 특정국의 상임이사국 자격 박탈, 상임이사국 숫자 확대 등의 방안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런 개혁안 자체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즉 러시아와 중국이 스스로 상임이사국 지위를 내려놓지 않는 한, 그리고 북한과 이란 같은 나라들이 핵무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유엔의 개혁은 불가능할 것이며, 유엔 예산 분담률이 2.574%인 한국의 515분의 1인 0.005%에 불과한 북한이 핵을 앞세워 유엔을 흔드는 기이한 현상도 이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유엔 체제가 끝을 향해 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유엔 체제가 붕괴된다면 이후의 세상은 공통의 이해관계로 뭉친 동맹과 다자기구가 우후죽순 만들어지는 가운데 전체적으로는 독재체제를 고수하는 전체주의 진영(axis of tyrannies)의 고립이 깊어지면서 또 다시 ‘철의 장막’이 내려지게 될 것입니다. 북한, 이란, 사우디, 종전 후 우크라이나 등이 핵무력 강화 또는 개발에 나설 것이며, 아시아에서도 한국, 일본, 대만 등이 대응적 핵무장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이런 혼돈 하에서 동유럽, 중동, 대만해협, 한반도 등에서의 무력충돌이 지구 종말을 위협하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나라들의 각성이 필요한 시대이며, 북한도 그중 하나입니다.

** 이칼럼내용은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