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붕괴위기에 처한 CT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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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체결하는 조약을 핵군비통제조약이라고 합니다. 특히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 간에 체결된 조약들이 많지만, 핵무기비확산조약(NPT)처럼 핵을 가진 나라들과 가지지 않은 나라들이 함께 참여하여 더 이상의 핵무기 확산을 방지하기로 한 핵군비통제조약도 있습니다. 그런 핵군비통제조약 중의 하나가 1996년 9월 10일 유엔에서 채택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입니다. 핵심 내용은 대기권, 외기권, 수중, 지하 등 모든 곳에서 모든 종류의 핵실험을 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현재 이 조약에는 196개 유엔 회원국 중 8개 나라만 빼고 모두가 가입해 있지만, 법적으로는 아직 발효가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 이유는 조약의 부속서에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거나 원자로를 운용하는 나라들 모두가 서명과 비준을 완료해야 발효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나라들을 모두 합치면 44개국인데, 44개국은 NPT가 인정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개 핵보유국과 NPT를 외면하고 핵을 보유한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 4개국 그리고 원자로를 보유한 35개국을 합친 숫자입니다. 한국은 세 번째 그룹, 즉 원자로를 보유한 나라에 속합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핵실험을 할 능력이 있거나 그런 능력을 가질 가능성을 가진 나라들 모두가 핵실험 금지를 약속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여덟 개 나라들 때문에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이 발효되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요. 8개국 중에 미국, 중국, 이스라엘, 이란, 이집트 5개국은 서명은 했지만 비준을 하지 않은 나라이며, 인도, 파키스탄, 북한 3개국은 아예 서명도 비준도 하지 않은 나라들입니다.

이렇듯 이 조약은 법적으로는 발효되지 않은 상태지만, 오직 한 나라만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잘 지켜왔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서명을 하고 비준은 안했지만 조약 서명시부터 핵실험을 하지 않았으며, 비준을 하지 않은 이유는 불량국가들이 핵질서를 위협하는 경우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996년 CTBT에 서명하고 2000년 비준한 러시아는 미국의 이런 입장을 이해하여 왜 비준을 하지 않느냐고 시비하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CTBT는 발효되지 않았지만 한 나라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서명국이 준수해온 조약이며, 조약 제14조에 따라 1999년부터 매 2년마다 조약의 발효를 기원하는 발효촉진회의를 열고 있습니다. 조약을 집행하는 사무국인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는 전 세계에 설치한 321개의 지진관측소를 통해 핵실험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관측소가 있습니다. 원주에 있는 한국지진관측소(KSRS)가 바로 CTBTO가 지정한 핵실험 모니터링 시설입니다. 그런데, 서명도 비준도 하지 않은 채 CTBT 체제를 외면하고 홀로 핵실험을 계속해온 그 한 나라는 바로 북한입니다. 북한은 2006년부터 여섯 차례나 핵실험을 했으며, 2000년대에 들어와서 핵실험을 한 유일한 나라이자 어떤 핵군비통제조약에도 가입하지 않은 채 독불장군식 핵 행보를 계속하는 나라입니다. 학자들은 이런 나라를 '불량국가(rogue state)'라고 부릅니다.

그랬던 CTBT가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러시아가 수차례에 걸쳐 ‘핵사용’을 위협하면서, 북한이 제7차 핵실험을 할 징후를 풍기고 ‘대남 선제 핵사용’을 위협하면서 그리고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갈등이 악화되고 이란이 개입을 경고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핵 탑재 잠수함들이 분주한 모습을 보이면서 핵전쟁 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CTBT 비준을 철회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하원인 국가두마는 10월 18일 만장일치로 비준 철회안을 통과시켰고 이어서 10월 25일에는 상원도 만장일치로 비준 철회에 찬성함으로써, 이제 푸틴 대통령이 서명만 하면 러시아의 CTBT 비준 철회는 확정됩니다. 푸틴 대통령은 하원 통과에 앞서 핵추진 대륙간순항미사일 ‘부레베스트니크’의 시험발사에 성공했고 조만간 24개의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차세대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 ‘사르마트’도 실전 배치된다고 선언했습니다. 러시아는 상원이 비준 철회안을 채택한 25일에도 대규모 핵전쟁 연습을 실시했습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푸틴 대통령이 최종 서명할 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핵세계가 한층 더 위험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CTBT 체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CTBT 체제가 붕괴되어 너도 나도 핵실험을 재개하게 된다면, 핵확산이 재개되고 지구 환경도 크게 악화될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핵전쟁 발발을 걱정하는 아우성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태로 가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으며, 특히 북한이 핵질서를 흔들고 CTBT 체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핵행보를 중단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우선은 북한이 1985년에 가입했다가 2003년 1월에 탈퇴를 선언했던 NPT에 복귀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이들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